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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주닝요 Sep 15. 2023

4. 브라질은 무섭지만 참 따뜻해

달콤살범했던 브라질에서의 첫 외출

한국에서 일상 속 내 주말은 사무실에서 보내거나 혹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이불 속에서 벗어나지 않기 일쑤였다. 하지만 브라질에서 맞이하는 첫 주말은 아직 일상인지 혹은 여행인지 구별되지 않는 그 어느 중간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기에 이른 아침 자연스레 내 눈꺼풀이 가벼워졌다.


햇살이 잔뜩 들어오던 숙소


집주인 페르난도가 안내해 준 대로 커피를 내려 마시며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맞아봤다. 브라질 원두로 내려먹는 커피도, 햇살도 괜스레 특별하게 느껴졌다. 마치 어느 커피 광고의 한 장면 같은 그림이 완성된 것 같아 만족스럽게 한참 주접을 떨어본다. 한국에서라고 햇살을 맞는 일이 어려운 일이겠냐마는 내가 언제 이렇게 햇살을 맞아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바빴길래 햇살과 함께 커피 한잔하는 삶에 감탄하고 있는 걸까?'


매일 출근을 하는 것은 동일하기에 내 삶에 바뀐 것이라고는 내 몸이 다른 나라에 있다는 것뿐인데도, 환경이 바뀌었다는 것만으로 이런 여유를 느낀다는 것이 한편으로 씁쓸하게 다가왔다.




햇살과 함께 한참 궁상을 떨다 브라질에서의 첫 주말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며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나는 지금껏 매일 카메라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것들을 카메라로 담아내는 일을 해왔다. 카메라로 어떤 피사체를 담아내는 것은 나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었지만, 그 카메라로 내 일상을 담아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일상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촬영하는 사람이 그 피사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굉장히 다르게 나온다고 생각하기에 항상 내가 담는 피사체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한 노력들을 해왔다. 하지만 정작 내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한 노력들은 해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완전한 일상은 아니지만 변화된 환경을 빌미로 내 일상을 담는 연습을 해보고자 했다.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고 무서운 동네이지만 찍을 때만 카메라를 꺼내고 얼른 집어넣어야지라는 나름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나섰다. 화창한 날씨 덕인지 낯선 곳에서의 설렘 덕인지 긴장보다는 가볍고 행복한 발걸음으로 집을 나올 수 있었다.

브라질의 흔한 표지판 모습

P의 여정답게 정해진 목적지 없이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이동하며 이것저것 카메라에 담아봤다. 여행을 온 것도, 이곳이 유명한 관광지인 것도 아니었지만 표지판, 횡단보도, 건물 등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일상의 요소들이 낯선 곳에만 오면 왜 그렇게 신선한 피사체들이 되어주는지 마치 놀이동산에 처음 온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이 신기했다.


열심히 셔터를 누르며 동네를 돌아다녔지만 한편으로 마냥 신기해하고 즐거워할 수만은 없었던 것은 이곳이 무시무시한 브라질이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행지도 아닌 평범하디 평범한 브라질 주거 지역에서 동양인이 카메라를 들고 이것저것 찍고 있는 장면은 그리 흔한 것은 아니었을 테고 아니나 다를까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 위화감이 들었다. 그렇게 길을 걷는 도중 노부부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상대가 노부부인 여부와 관계없이 낯선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건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바짝 긴장되었다. 짧게 몇 마디를 건네는데 역시나 나는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기에 이해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남편 분께서는 카메라를 가리키며 아주 짧게 한 마디를 건냈다.


"Be careful(조심해)"


이후로도 한 시간가량을 더 걸으며 2~3명의 브라질 사람들이 카메라를 조심하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현지 사람들이 이렇게 주의하라고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보면 실제로 치안이 좋지 않다는 방증이겠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나는 그들의 조심하라는 한 마디에 큰 위로를 느꼈다. 그 한 마디 이외에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없었으나 그들의 말투와 표정에서 따뜻함이 묻어 나오며 비로소 사람 사는 곳은 결국 어디든 크게 다르지 않구나 느꼈기 때문이다. 여전히 치안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변함없었지만 역시나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되며 안정감이 느껴졌다.


브라질의 길거리 모습


간단한 산책을 마치고 집 근처 현지 분위기가 가장 잘 느껴지는 듯한 식당으로 이동했다. 일요일 오후 느지막한 시간에 간단한 식사와 함께 맥주를 마시는 현지 아저씨들이 붐비는 식당이었다. 햄버거조차 시키기 어려웠던 과오를 만회하고자 기본적인 음식 이름을 외워갔기에 이번에는 실수 없이 주문하리라 다짐해 보지만 메뉴판을 보자마자 잠시 PTSD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내 멘탈을 부여잡고 아주 열심히 익혀둔 쉬운 단어 하나를 찾아 주문했다.


브라질 흔한 동네 식당


"Frango, Por favor(치킨 주세요!)"


이제 포르투갈어 메뉴판에서 Frango 정도는 인지할 수 있게 되어 무작정 메뉴판에 Frango가 적혀있는 메뉴를 가리키며 주문했다. Frango라고 적혀 있는 여러 가지 메뉴 중에 하나를 가리켰으니 무슨 닭 요리가 나오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다행히도 이번엔 종업원이 잘 알아먹은 듯했다.


드디어 주문에 성공한 브라질 현지식. 브라질 현지식은 항상 콩요리가 함께 나온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라답게 대부분의 아저씨들의 시선은 축구 경기가 틀어져있는 TV로 향해있었다. 나는 누가 봐도 관광객이자 외부인인 것이 티 나게 이리저리 두리번거렸고, 그런 날 보고 흥미가 생겼는지 한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도대체 브라질 사람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포르투갈어로 왜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건지 이미 나는 산책을 하며 몇 번이나 말을 걸어오는 브라질 사람들에게 '포르투갈어 못해요.'라는 말과 함께 겸연쩍은 미소만 반복했던 참이었다. 그 아저씨에게도 동일하게 포르투갈어를 하지 못한다는 말을 전했는데 그 아저씨는 이해할 수 없는 말 몇 마디를 하더니 맥주병을 가리키며 한 잔 마시라고 권했다. 아저씨는 내 잔에 맥주를 따르며 외쳤다.


싸우지(Saude, 건배)


단번에 이 표현이 건배를 의미하는 것쯤은 예상할 수 있었기에 무작정 따라 했다. (나중에 뜻을 찾아보니 '건강을 위하여'라는 건배의 표현이었다.) 타지에서 낯선 사람이 건네는 음료나 음식은 주의해야 한다는 것쯤은 인지하고 있으나, 사람 좋은 미소로 껄껄 웃으며 권하는 그 아저씨의 순수한 표정을 봤다면 누군들 거절할 수 없으리라 느껴졌다.


이쯤 되니 브라질 사람들은 참 오지랖이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꼭 카메라를 조심하라고 한 마디씩 건네질 않나, 식당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맥주를 권하질 않나. 하지만 나는 왠지 이 오지랖이 불편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되려 따뜻하게 느껴졌다. 모든 브라질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 그날 동네에서 만난 사람들은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그런 느낌이었다.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에서 치안이 가장 좋은 국가 중 하나인 우리나라에서는 따스한 햇살을 느끼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져본 적도, 내 일상을 담으려 카메라를 들고 산책을 나가 본 적도 없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눈길 한 번 준 적 없고 오롯이 내 인생만 바라보고 내 삶을 걱정했다. 나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판에 다른 사람 인생에 오지랖 부릴 여유 따윈 없었을뿐더러 그 오지랖의 수준에 따라 상대방이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기에 신경 끄고 사는 것이 제일 현명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전 세계에서 치안이 가장 좋지 않기로 소문난 나라 브라질에 와선 따스한 햇살에 눈을 뜨고, 카메라를 들고나와 일상을 담아보겠다 하질 않나, 오지랖 넘치는 브라질 사람들의 따뜻한 말과 시선을 느끼며 안정감을 느끼질 않나...이 얼마나 청개구리 심보인가.


하지만 이 청개구리 심보에도 확실한 것은 오늘 처음으로 시도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기'는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처음 겪어보는 일상이었기에 할 수 있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으나 왠지 시간이 더 지나더라도, 또 익숙해지더라도 이 일상을 전보다는 좀 더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살 때도 고여버린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을 갖고 살아왔다. 나도 저런 시선과 생각을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움의 대상이자 멘토가 돼준 사람들이다.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으나 유명인 가운데 하나 뽑자면 아티스트 '악동뮤지션'이다. 나는 악동뮤지션이 2016년에 발매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라는 노래를 들었을 때 들었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신기해
팔다리가 앞뒤로 막 움 움 움 움직이는 게
숨 크게 들이쉬면 갈비뼈
모양이 드러나는 것도
내쉬면 앞사람이 인상 팍
쓰며 코를 쥐어 막는 것도
놀라와 놀라와 놀라와


(악동뮤지션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가사 중 일부 발췌)


이 곡을 작사한 '이찬혁'군은 어떻게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봤을까? 너무나도 당연하고 익숙한 것들에 물음표를 제시하고 그 이후 노래를 듣는 대중에게 각자 나름대로의 느낌표를 짓게 하는 이 노래가 너무나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도 이런 시선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들을 해오곤 했지만 생각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제대로 내 당연한 일상에, 익숙한 것들에 물음표를 제시하며 살지 못했던 것 같다. '이찬혁'군은 항상 일상을 옮겨 다니며 유목민처럼 생활을 하기에 익숙한 것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일까? 아마 그것은 아닐 것 같다.


물론 넘치게 할 일이 많은 바쁜 세상 속에 당연한 것들에 대해 모두 물음표를 제시하고, 의구심을 제기한다면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하는 바이다. 그렇기에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당시 꽉 막혀 답답하게만 내 삶에 필요했던 것은 고여버린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기 위해 물음표를 제시하는 일이었고, 그 차원에서 처음으로 시도해본 달콤살벌했던 브라질에서의 첫 외출은 나름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질은 무서웠지만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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