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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May 06. 2024

비 오는 날의 상념

어제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농촌에서 3일 동안의 비 예보는 많은 변화를 요구한다. 일찌감치 기상예보를 

보며 계획을 세웠지만 자연의 변덕과 심술은 촌부의 일상을 무력하게 뒤흔든다.


속절없이 내리는 봄비는 무심하다. 애써 피어난 꽃들이 비에 젖어 처량하다. 꽃들을 생각하면 내리는 비가 야속하다. 아직은 화려한 날들을 뽐내고 싶지만 빗줄기는 가냘픈 꽃잎들을 매몰차게 후려친다. 

꽃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정도만 내리길 바란다. 그칠 줄 모르는 비는 지붕 없는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 어미 새들에게도 가혹한 일이다. 온기가 사그라들까 봐  전전긍긍 마음 졸이는 모습이 애처롭다. 


몇 년 사이에 많은 비로 안타까운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퍼붓는 비는 인간의 오만과 무지를 비웃듯 가혹했다. 비가 부리는 예측불허의 심술은 오롯이 사람이 키워 놓은 변고였다. 

대처할 수 없는 재해 앞에 혼란과 분노와 슬픔과 상처는 사람의 몫이었다.


농부가 되고 나서 비는 단순함의 대상이 아니었다. 사람과 작물과 온갖 생명에 비는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생존을 좌우하는 힘을 지니고 있어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럴수록 비는 점점 예측하기 힘들어졌다. 

비의 영역은 확대되고 가치는 높아졌다. 비는 간절한 기다림의 대상이면서 두려움이기도 했다. 요즘은 모내기를 위한 준비로 논에 물을 대고 있다. 벼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지금 내리는 비는 단비다. 


비가 오면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친구 두 명과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와 한 친구는 우산을 함께 쓰고 갔다.   다른 친구는 혼자 비를 맞고 걸었다. 셋이 함께 쓸 수 없다면 차라리 우산을 접고 같이 비를 맞으며 가야 되는 길임을 몰랐다. 철부지였다. 그 친구가 느꼈을 소외와 빗방울의 차가움이 어떠했을지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아리다.

비 오는 어느 날, 그 친구를 다시 만나면 그날을 이야기하며 함께 비를 맞으며 걷고 싶다.


비는 낭만의 이름으로도 찾아온다. 커피 한 잔의 온기를 마치며 옛 추억과 그리운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파전에 막걸리를 부르고 따뜻한 칼국수도 한 그릇 후루룩 먹고 싶어진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한가로움을 누리고 싶을 때도 있다. 비에 젖은 흙 내음은 구수하다.


지역에 따라 폭우가 내렸다는 예보다. 내일도 종일 비 예보다. 내리는 비로 누군가의 마음이 젖지 않았다면 다행이다. 가림 없이 내리더라도 쓸모없는 비가 아니면 된다. 예정된 일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당분간은 비 소식이 없기를 기원하는 비 내리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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