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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Jun 27. 2024

나잇값을 하고 싶다

점점 늘어나는 나잇값의 무게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마음은 여전한데 몸뚱이가 따라 주지 못한다. 세월이 가고 있을 뿐 약해진 몸은 아무 잘못이 없다. 시간은 야금야금 근육과 뼈의 기능을 저하시키고 정신도 살짝 갸웃하게 만든다. 야속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내게도 순응의 시간이 찾아왔다.


속절없이 나이를 먹고 있다. 앞뒤를 보니 적지 않은 나이다. 지나 온 자국마다 새겨진 삶의 흔적들은 마디마디 끊어진 필름으로 되살아 난다. 조각조각 이어 붙여 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시간의 경계는 나이를 자각하게 했다. 경계와 경계 사이의 간극을 메우며 나이가 들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세월을 먹는다는 의미다. 하루 세끼를 먹듯 시간의 조각들을 야금야금 먹어 치웠다. 그 세월이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다.  어릴 적 까마득해 보이던 그 나이를 훌쩍 넘어섰다. 문득 두려움이 앞선다. 왠지 모를 부담이 늘어난다. 결국, '나잇값을 하고 있는가?'라는 물음 앞에 말문이 막힌다.


일을 하거나 움직일 때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무거운 걸 들어 올릴 때는 주저해야 한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 때도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어딘가로 향할 때도 망설여야 한다. 말할 때도 곱씹어야 한다. 그래야 탈이 없다. 별 탈이 없어야 일상을 자연스레 이어갈 수 있다. 잔잔한 일상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이 헛 먹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나잇값을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누구를 만나든 먼저 나이를 묻지 않으리라. 나이가 많고 적다는 이유로 어떤 편견이나 선입관을 가져선 안된다. 나이는 만남과 관계에서 장벽일 뿐이다. 나이가 많다고 세상을 현명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나이가 드니 욕심은 내려놓기 힘들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더 커진다. 더 깊은 고뇌와 성찰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방심하면 주책없고 고집만 센 어른으로 남는다. 


나이로 권위를 세우려는 짓도 하지 말자. 논리와 지혜와 철학의 빈곤을 나이로 덮으려는 어리석음은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어느 자리에서든 나이를 앞세우는 건 하찮은 일이다. 나잇값도 못하면서 나이대접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 나이를 잊고 머무는 곳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면 된다.


어느 누구와도 힘겨루기 하지 않는다. 섣부른 부추김에 넘어가선 안 된다. 자제하고 자제해야 한다. 괜한 경쟁심에 무리하게 덤벼들다 애꿎은 몸만 상한다. 다친 몸은 회복이 더디다. 멀쩡한 정신이 있어 그 시간은 더 힘들다. 매 순간 진중하고 시간 앞에 겸손해야 한다. 낮추고 멈춰야 오래간다.


지금까지 나는 가고 싶은 길을 길을 걸어왔을 뿐, 누군가에게 길잡이가 되거나 교훈이 되는 삶을 살지 못했다. 살아내기 바빴고 제 갈 길 가기에만 주저함이 없었다.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듯 좌충우돌하다 여기까지 왔다. 어느덧 세월의 무게가 짙게 느껴지는 시간을 맞이했다.


나잇값을 해야 하는 이유는 먼저 살았던 사람의 의무다. 나잇값은 여러 경로와 다양한 형태로 할 수 있다.

나에게 맞는 나잇값은 스스로를 낮추고 드러내지 않을 때 가능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더디기만 하다. 괜한 욕심은 사치다. 늘어나는 건 시기와 질투, 분노와 비난이 아닌지 묻고 또 묻는다. 망설임 없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스스로를 옭아매는 일상들로부터 초연해지고 싶다. 앞으로의 시간들은 알량한 지식과 허울뿐인 지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지혜와 겸손의 소양으로 채워가고 싶다느림에 순응하고 기다림에 익숙하며 담담하게 물들어 가고 싶다.


나잇값은 의지와 상관없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더 많아지기 전에 제값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밀려드는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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