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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Jul 25. 2024

스마트폰 밖의 풍경-“아이들에겐 제발~”

그대 손 안의 마법

스마트폰은 빠른 변화와 무한한 가치로 거침없이 우리들 삶 속에 파고들었다. 모두가 그 작은 기기의 눈부신 변신과 유혹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었다. 스마트폰 속에는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마법의 세계가 끝없이 펼쳐진다. 시공을 초월하며 무한 경계를 넘나들고 삶의 구석구석을 파고든다. 어느 순간 한시도 떼놓을 수 없는 분신이 되었다.


아날로그 인간인 나는 스마트폰과 첨단 기기들의 위력 앞에 힘없이 끌려다닌다. 현란한 손놀림으로 무한한 쓰임새에 거침없이 적응하는 신 인류들 속에서 컴맹인 데다 레트로 감성에 젖어 있는 나는 다른 세상 사람이다.

다행인 건 뒤처지거나 부적응으로 인한 문제와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나는 더 뒤로 가려 궁리하고 노력한다. 최적화된 기능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것에 충분한 만족을 느낀다.


스마트폰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 곳곳에 펼쳐진 풍경들은 여전히 낯설고 관계는 건조하며 존재는 비틀거린다.

   

테이크 아웃을 위해 카페에 들렀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카페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 한곳에 젊은 부부 세 쌍이 환하게 웃으며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는 5세 이하로 보이는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다. 일곱 명이다. 각자 스마트폰을 들고 게임과 동영상 시청에 몰두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조그만 화면 속 세계가 태어나 누릴 수 있는 세상의 전부인 듯했다. 화려하고 신비한 스마트폰의 마력은 끝이 없다. 덕분에 옆자리의 부모들은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온전히 자기들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부모들의 편안한 수다를 위해 아이들은 가상 세계 속으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다. 아이들은 더 많은 시간, 더 눈부시고 자극적인 영상을 찾아 끊임없이 떠돈다. 많은 부모들은 어린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에 관대하다. 그 관대함이 자녀에게 미칠 다른 영역의 부작용과 일상 활동에서의 부적응까지 포용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서울에서 생활할 때 지하철을 기다리며 이동하는 시간이 마냥 좋았다.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서울 여행길에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게 되었다.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하철 안에서도 대부분 같은 모습이었다.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게 만드는 신비한 기계 앞에 도시인의 모습은 일체 되었다. 그 공간 안에서 사색에 잠기거나 종이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삭막한 모습에 메마른 공간이었다.


연인들로 보이는 한 쌍이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서로가 말이 없다. 그들 사이에 대화는 없어도 웃고 떠들게 만드는 매개체가 있다. 각자의 손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손가락 사이로 그들의 말과 생각은 전달된다. 마음에 담긴 생각을 머리로 되새기고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며 울림 있게 전달하는 모습은 진풍경이 되었다. 요즘 청춘들은 이별도 SNS로 한다. 쉬운 만남, 쉬운 이별 속에 애틋한 추억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온 가족이 외식을 나왔다. 어른과 아이들의 자리가 자연스레 나뉜다. 음식이 나오기 전 아이들의 손에는 모두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음식이 나오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음식을 떠먹여 준다. 입만 벙긋하고 받아먹는 아이들의 눈과 손은 그들을 잡아 끄는 작은 기기 속에 붙들리고 매달린다. 어른들의 식사에 아이들은 방해가 되는 듯, 오직 디지털의 세계 속에 가둬 놓는다. 오히려 조그만 손과 앙다문 입술로 능숙하게 조작하는 모습을 보며 대견해한다. 어른들 모두가 흐뭇한 모습으로 바라본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더욱 그렇다. 요즘 시대에 밥상머리 교육은  엄두도 못 내지만, 3대가 가끔 모이는 자리마저도 스마트폰이 점령했다. 손자, 손녀들에게 공경의 대상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니라 스마트폰이다.


가족이 모두 모이는 저녁, 그 공간에 하루의 일상을 나누고 다독이며 공감하는 시간은 사라졌다. 각자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자기만의 관심사에 빠져든다. 그 속에는 멈출 수 없는 속도로 재미와 관심과 상상의 세계가 쏟아지고 펼쳐지며 넘쳐난다. 잠시도 나를 놓아두지 말라는 몸부림이 의식을 지배하며 끌어들인다. 오직 나만을 바라보라며 자극하고 유혹한다. 대화와 교감이 없는 그 집에도 가족은 보이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세상에 내놓은 스티브 잡스는 정작 자신의 아이들에겐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쓰지 못하게 했다. 자녀들과의 저녁식사는 책과 역사에 대한 토론의 시간이었다. 주제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세상을 변화시킨 혁신의 아이콘은 아이들이 스마트 기기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빠져들었을 때 겪게 될 중독성과 폐해, 해악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었다.

첨단 IT 기술의 산실인 실리콘밸리의 기업가들도 자녀들의 스마트폰, 패드, 컴퓨터 등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구글의 최고 경영자는 자녀를 위해 TV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은 머리를 쓰지 않고, 발로 뛰지 않으며 손과 눈으로만 세상을 탐험한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는 마냥 귀찮다. 해답을 찾으려 노력하지도 않는다. 오래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는 외면한다. 단편적이고 즉흥적이며 자극적인 것만을 추구한다. 스마트폰은 우리 뇌의 기억과 계산, 언어와 관계의 많은 영역을 대신한다. 우리의 머리는 그렇게 길들여지고 퇴색해 간다. 인간관계는 단편적이고 형식적이며 가벼워진다. 안타깝고 불안한 미래를 보는 마음이 무겁다. 덩달아 AI는 더 빠르고 무섭게 인간 세상으로 파고든다.

인간과 기계의 싸움은 인간의 많은 기능과 역할을 빼앗아가고 있는 스마트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스마트폰과 디지털 기기로부터 멀어질수록 우리 모두의 시간은 더 풍족해지고 공간은 넉넉해지며 관계는 따듯해질 것이다. 스마트폰은 순기능만 있다. 역기능은 사람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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