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담 Mar 25. 2024

지금 걷고 있는 그 길은
누구의 길인가?

어디쯤 걷고 있는지...

걷고 또 걷는다. 좁은 길을 걷기도 하고 넓은 길을 달리기도 한다. 평탄한 길도 있고 울퉁불퉁 거친 길도 있다. 곧게 뻗은 길을 만나 거침없이 걷고, 구불구불 휘어진 길을 따라 천천히 걷기도 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서 모든 길은 만난다. 어떤 길이든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다. 길은 삶이 되고 역사가 된다. 가다 보니 알게 됐다.


삶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자아가 형성되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부터 걷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정해진 길이었다. 가라는 대로, 끌어 주는 대로 망설임 없이 걸어갔다. 왜 가야 하는지 묻지 않았다. 물으면 안 되는 줄 알았고 당연히 그렇게 가야 하는 길임을 믿었다.


앞에 보이는 길은 명확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선명하게 안내하고 있었다. 뒤돌아 보지 말고 열심히 가야만 도달할 수 있는 길이라며 모두가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무작정 갔다. 쉬었다 가거나 돌아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맹목적으로 가야만 해서 가는 길은 행복하거나 즐거운 여정이 아니었다. 편안한 길이나 반듯한 길을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은 길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어느 길에서 나는 멈춰 섰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가고 있는 길의 끝은 명확했으나 무수한 의문과 고뇌의 시간들이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 앞에 왜 가는지에 대한  해답은 무의미해졌다. 가장 열심히 가야 할  순간에 멈춰 선 고통은 컸다. 많은 사람을 실망시켰다. 길은 더욱 보이지 않았다. 계속 걸어갔지만 원하는 길은 아니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에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다. 그냥 갔다. 그 길에서도 새로운 인연들과의 만남은 소중했다. 그 길 위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것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자양분이 되었다. 울퉁불퉁 굴곡진 길은 스스로를 더 단단하고 흔들림이 단련시켰다. 예정에 없던 길은 그렇게 또 하나의 뚜렷한 길을 새겨 놓았다.


그때부터였다. 정해진 길로 가지 않았다. 누군가 길이라고 알려주는 길은 거부했다. 가야만 된다고 하는 길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그냥 나만의 길을 가고 싶었다. 많은 사람이 정처 없이 휩쓸려 가는 길을 가고 싶지 않은 삐딱한 마음도 강해졌다. 가보지 못한 길, 가려고 하지 않는 길, 갈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길을 겁 없이 찾아 나섰다. 마음 가는 대로 길을 떠났다. 길이란 가야만 길이 된다는 믿음으로 갔다. 길 위에 한참을 서있던 것도 계속 길을 가기 위함이었다. 길은 험하고 안갯 속이었다. 생각보다 어둡고 좁은 길이었다. 뒤돌아 갈 수 없기에 가고 또 갔다. 가끔씩 비쳐주는 햇살과 짧지만 불쑥불쑥 나타나는 평탄하고 넓은 길이 계속 길을 가게 했다. 후회 없는 길이 펼쳐졌다.


가시덤불 헤치고 가는 길이라도 거침없이 나서야 한다. 험난한 바윗길을 만나면 굳은 의지와 지치지 않는 끈기로 넘어야 한다. 언제 도달할지 모를 길 없는 길에 놓여 있어도 가고 또 가야 한다. 잠시 쉬었다 가더라도 멈춰 선 안된다. 아무리 무거운 짐이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덜어내고 내려놓을 때가 오리라는 믿음으로 기어이 길을 가야 한다.


모든 길은 무수한 사연과 시간을 담고 있다. 길은 그 길을 걷는 사람으로 인해 길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다. 누군가 포장해 놓은 길이 나에겐 맞지 않는 길임을 한참을 가고 나서야 알 수 있다.


누가 떠밀지 않았다. 오롯이 자신의 길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 지나온 길도 아득하고 가야 할 길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그래도 갈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길이란 그런 것이다. 길은 평등하고 무심하다. 길은 편견 없이 놓여있다. 

어느 날 누군가 길을 묻거든 가야 할 길을 알려주기보다는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명확하게 일러주는 안내자가 되고 싶다.


나는 오늘도 길을 간다. 함께 가는 사람이 있어 거뜬하고 먼저 간 사람이 있어 든든하다. 길은 나에게 인생의 깊이를 알게 했고 삶의 무게와 눈물도 안겨 주었다. 내게 주어진 길을 아주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갈 수 있을 때, 나는 길의 마지막 종착지에서 홀가분하게 웃으며 뒤돌아설 것이다.

그리고 지나온 모든 길들이여 안녕!












이전 15화 비 오는 날의 상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