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담 Nov 11. 2024

일상에서 맛보는 설렘의 순간들

설렘으로 하루를 산다면

원숙한 가을이다. 늦게까지 이어진 더위로 가을마저 그리 길지 않은 계절이 되었다. 아침이면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날씨다. 몸은 오히려 가볍다. 땀이 흐르지 않아 좋다. 겨울을 좋아 한다. 매섭게 바람부는 차가운 날들이 오면 몸은 깨어나고 마음도 설렌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설레는 마음은 곱절이 된다.


바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밤인데도 사방이 환하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휘영청 밝은 달이 두둥실 떠있다. 보기 드물게 크고 환한 보름달이다. 어두운 밤하늘도 맑고 깊다.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온다. 덩달아 마음에 무언가가 가득 차오른다. 텅 비면서도 맑은 기운으로 붕 뜨는 마음. 이런 기분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맛본다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요즘은 날씨 탓인지 유독 바이크 타는 사람들이 많다. 바이크를 타고 싶은 꿈은 오래 전부터 움트고 있다. 바이크에 몸을 싣고 스쳐가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이곳저곳의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누비는 상상만으로도 설렘은 차오른다.  여러 이유로 실행을 못하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늘 두두둥 둥둥 말발굽 같은 엔진 소리가 울린다. 몇 해전 지역 동문 모임에 바이크를 타고 온 후배가 있었다. 모임 회원은 아니지만 동문 자격으로 참석하여 처음 본 후배였다. 바이크에 관한 이야기로 금세 마음이 통했다. 자리가 끝나고 헤어질 때 후배가 차고 온 허리띠를 풀어 "형님, 이거 가지세요"라며 선뜻 건네주었다. 버클에 'H'사의 멋진 엠블럼이 박힌 가죽 허리띠였다. 지금도 잘 보관 중이다. 가끔 꺼내 쳐다만 봐도 좋다.

도로 위를 달리는 바이크만 봐도 늘 마음이 설렌다. 바이크를 타는 사람들은 지나갈 때 상대방에게 손을 들어 인사한다. 모르는 사이지만 바이크라는 매개체로 하나가 되는 공감 행위다. 운전하고 가면서 지나가는 바이크를 보면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낸다. 절로 웃음이 난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아내도 그 모습을 보면서 크게 웃는다.


얼마 전, 열흘간의 지역 축제가 끝났다. 이곳은 대추가 특산품이다. 10월이면 대추로 온 지역이 들썩인다. 대추를 파는 농부들, 대추를 사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농산물들이 길게 펼쳐진 공간에서는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체험 부스를 운영하는 아내를 도와 시간 나는 대로 참여했다. 축제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냥 스쳐가는 인연도 있고 가끔 만나는 얼굴들도 있다. 축제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비가 내리고 돌풍이 불어 썰렁한 날들이 많았지만 설렘의 순간들은 곳곳에서 찾아왔다. 축제의 꽃은 사람이다.


응원하는 야구팀이 올 시즌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40여 년을 한결같이 응원하던 팀이다. 시골에 살면서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딸과 함께 지방으로 직관을 다녀오기도 했다. 멋진 홈구장을 가지고 있는 팀이 오랜 시간이 흘러 그곳에서 우승의 축배를 들었다. 그 팀과 함께한 수개월의 시간이 설렘이고 행복이었다. 딸은 지금 살고 있는 곳을 연고로 하는 팀을 응원한다. 딸도 조만간 아빠와 같은 기분을 만끽하길 응원하다. 제발!


농촌교육농장 프로그램 경진대회에 충북 대표로 뽑혔다. 전국에서 8개 팀이 본선에 올랐다. 곧 본선 심사를 앞두고 있다. 프레젠테이션 10분과 질의응답 10분이다. 아내의 편집, 디자인 실력에 자신감을 얹어 발표자료를 준비했다. 멋지게 PT를 해서 좋은 결과를 얻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결전의 그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농장엔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유치원생부터 팔순의 어르신까지 점점 그 대상과 폭이 넓어지고 있다. 교육, 치유 농장을 운영하면서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농장 입구, 약간 기울어진 조그만 건물 벽에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의 일부인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를 써 놓았다. 아침마다 농장으로 가는 길에 바라보며 마음에 새긴다. 찾아오는 누구도 그냥 오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온다고 생각하면 마음 깊은 곳이 숙연해진다. 머무는 순간마다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들로 채워지길 바란다.

오늘 아침에도 한 사람의 일생이 오고 있다. 농장으로 찾아오는 학생들과 부모님들을 기다린다. 어떤 표정, 어떤 마음으로 다가오는지 가늠해 본다. 맞이할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는 시간은 설렘이다. 아이들을 태운 노란 버스가 골목을 돌아 모습을 드러낸다.


농장 입구 기울어진 벽에 쓰여진 시의 일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