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가 따로 없네
학교 그만 다니는 게 어때? <1>
시골로 오기 전, 아파트에서 이웃들과 어울리면 빠지지 않는 주제가 아이들 교육에 관한 이야기였다. 자주 만나는 그들과 서로 교육관이 다르다 보니 아내가 힘들어했다. 퇴근하면 그날 나눴던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열린 대화를 통해 우리만의 생각들을 정립했다. 자녀교육에 관한 한 모두가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절대 우리의 생각과 주관이 옳다고 주장하거나 강요하지 말자. 누가 뭐라든 우리 아이들은 우리 방식대로 키운다.
거의 모든 부모는 자녀가 공부를 잘해서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가 된다. 일찍부터 앞서 나가길 원한다. 조금이라도 자질이 보이면 부모는 환희에 젖는다. 우리 아이가 남보다 더 뛰어나고 잘 났다는 확신에 온 신경을 곤두 세운다. 아이의 가방은 무거워지고 시간은 점점 잘게 쪼개진다. 일찍 경쟁에 뛰어들어 함께 뛴다. 뒤를 돌아보는 건 금물이다. 옆을 봐서도 안된다. 앞만 보며 달려가야 한다. 그래야 앞서가고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문제는 무엇이 성공인지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적 잣대와 기준으로 재단된 성공을 위해서, 이미 설정해 놓은 부모의 욕망과 대리 만족을 위해서 전력으로 달린다.
아이들이 어릴 때 틈만 나면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다녔다. 무조건 많이 보고 경험하고 느낄 수 있게 했다. 어린 시절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부딪치며 마음에 담아 둔 것들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큰 자산이 되는지 알고 있었다.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교육은 제도권속에 있지 않았다. 어디를 보낸다고 채워지는 게 아니었다. 무엇을 배우게 한다고 터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부모와 함께 다니는 여행 속에 길이 있고, 가볍게 산책하는 시간에도 교육은 있었다. 조잘조잘 말문이 트인 아이의 말속에 꿈이 담겨 있고 재미가 숨어 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드러나 이해가 높아진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모험심이 강하고 호기심이 넘쳤다. 지칠 줄 모르고 움직였다. 잠시 한 눈 팔면 어디든 올라가 있거나 매달려 있었다. 뭐든 만들기를 좋아했고 응용하길 잘했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집요하게 매달리기도 했다. 자동차의 일부만 보고도 차들의 이름을 모두 알아맞혔다.
딸은 조용했지만 야무 졌다.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욕심도 있었고 뭐든 잘하고 싶어 했다. 책을 읽어 주면 집중해서 끝까지 들으며 읽고 또 읽어 달라고 했다. 한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는 데 어느 순간 글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늘 가까이 했다.
부모의 눈에 아들과 딸은 거의 영재였다.
결혼 전부터 자녀 교육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면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마음껏 도전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 나갈 때 든든한 지원군이 돼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규정했다.
아빠, 엄마와 어디를 갈 때만 빼고 아들은 유치원을 잘 다녔다. 딸은 가고 싶을 때 가고, 가기 싫을 땐 언제든 쉬면서 놀았다.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정말 갖고 싶은 게 있다며 먼저 조건을 내걸었다. 시험에서 전 과목 백점을 받으면 꼭 현미경을 사달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약속했다. 아들은 수험생처럼 공부했다. 놀랐다. 집중해서 스스로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고 결과와 관계없이 현미경을 사주리라 마음먹었다. 어느 날, 집에 데리고 오기 위해 학교 앞으로 마중을 나갔다. 멀리서 아빠를 부르며 허겁지겁 뛰어 오더니 한 과목만 하나 틀리고 모두 백점을 받았다며 많이 아쉬워했다. 대견했다. 정말 잘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안아 주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했다며 바로 현미경을 사주었다. 그 시기 아들의 모습은 오랫동안 아들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딸은 똘똘하고 집중력이 좋았다. 유치원에서도 뭐든 잘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특별히 챙겨 주거나 간섭할 일도 없었다. 농촌에서의 삶을 꿈꾸고 있었기에 '전원생활'이란 잡지를 구독하고 있었는 데 딸은 수시로 잡지를 보며 우리도 시골에 살면 안 되냐고 묻곤 했다.
아이들은 자유롭고 맑고 순수했다.
계획 보다 일찍 귀농을 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아이들의 교육이었다. 어렸을 때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며 꿈을 펼쳐 나가게 해주고 싶었다. 시골에서 자라 마음에 담아 둔 어릴 적 추억의 시간들이 살아가면서 새록새록 솟아나 스스로를 살찌우는 자양분이 됨을 알고 있었다.
아들, 딸이 초등학교 4학년, 2학년을 마무리하던 겨울 방학 때 시골로 내려왔다. 내려온 다음 날부터 둘은 산과 들로 사방팔방, 천방지축 뛰어다녔다. 보름뒤 둘 다 2박 3일을 밥도 먹지 않고,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누워 잠만 잤다. 너무 심하게 놀아 몸살이 났다. 그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러웠고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