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모른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다. 산과 들에서 마주한 모든 것들이 놀잇감이요, 이야깃거리였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에 편견 없이 다가갔다. 세월이 흐르며 그 시절들과 마주하는 시간이 늘고 있다. 추억의 보따리들이 가득 담겨 있어 때때로 풀어놓는다.
지나고 보니 충만한 시간들이었다. 도시에서 20여 년의 시간을 꺾이지 않고 열심히 살아낸 힘은 시골에서의 시간이 만들어 준 경험과 인연 덕분이다.
다시 농촌으로 내려와 15년의 시간이 흘렀다. 몸에 밴 시골 생활의 정서는 낯선 타향살이의 두려움과 어색함도 사라지게 했다. 빠르게 적응하고 스며들어 익숙해졌다.
모든 게 친숙하고 반갑고 새로운데 여전히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게 몇 가지 있다.
생김새로 어떤 대상을 판단하는 건 금물이지만 그냥 외모부터가 가까이하기엔 너무 멀다.
어느 날 아침, 농장 가는 길에 우연히 그와 마주쳤다. 동시에 멈칫했다. 본능적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잽싸게 외면했다. 찰나의 소름 돋는 시간이 흘렀다. 자꾸 뒤를 돌아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살아오면서 그 존재는 특별하게 해를 끼치거나 어떤 불이익을 준 적도 없다.
어릴 적부터의 경험과 인식 속에 불행히도 그는 더없이 불편하고 마주하기 싫은 존재로 각인됐다.
농장 주변의 무성한 수풀은 꼬꼬들의 소중한 간식이다. 낫으로 베어 넣어 주는 분주한 발걸음에 그의 출몰은 오싹하다. 어느 곳에, 어떤 모습으로 숨죽이며 쳐다보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두렵다. 항상 막대기 하나를 들고서 쉬잇 쉬잇 소리를 내며 여기저기 찔러보고 나서야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땅에 바짝 엎드린 그의 눈에 사람은 거대한 벽이겠지만 그 벽은 단단하거나 두껍지 않다. 가을이 깊어 가면 그들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긴 휴면의 아쉬움 때문인지 자주 출몰한다. 긴장의 강도가 높아진다. 서로의 마음을 알리 없으니 존재하는 한 우리의 관계는 평행선이다. 억울하겠지만 그는 뱀이다.
또 다른 그 역시 언뜻 보면 겉모양은 나쁘지 않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흉측하다. 마주하면 도망가지 않고 무조건 비벼 되는 꼴이 얄밉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때나 다가와 끝없이 귀찮게 한다. 싫어하는데 제 앞길 모르고 끊임없이 달려드는 모양새로는 최고의 경지다.
온갖 지저분한 모습은 다 보여 주면서 뭐가 그리 좋다고 달라붙는지... 그중에도 날파리는 작은 몸뚱이로 이상한 소리까지 내면서 악착같이 덤벼들어 신경이 곤두선다. 뭔가 목적을 두고 노골적으로 접근하기에 가까이 오길 기다렸다 순간 손바닥으로 짝! 괜히 파리 목숨일까. 이들 역시 쌀쌀한 날씨와 함께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추었다.
시골엔 사람과 더불어 쥐가 산다. 도시에도 쥐가 없는 건 아니지만, 시골의 쥐는 더 약삭빠르고 얄밉다. 아무 곳에나 출몰한다. 사람이 먹는 건 다 먹고 사람이 못 먹는 것도 다 먹어 치운다. 쇠만 빼고 다 먹는 듯하다. 어둠을 틈타 음습하게 움직이는 이들을 소탕하기는 쉽지 않다. 농장에는 다행히 그들의 천적 '가을'이란 이름의 고양이가 있다. 가을이는 그들을 무자비하게 다룬다. 난 그 흔적만 없애면 된다. 12 지신 중 첫 번째가 쥐일 수밖에 없음을 그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먹을게 부족하던 시절 식량을 축내던 공공의 적은 쥐였다. 쥐 잡기는 범 국민적 운동이었다. 학교에 쥐꼬리를 가져가 검사를 맡아야 했다. 오징어 다리를 문질러 쥐꼬리로 속여 냈던 전설 같은 이야기도 사실이었다.
고려 때 문장가 이규보는 ‘주서문(쥐를 저주하는 글)’을 지어 쥐를 꾸짖었다. 파리와 모기도 싫어 조물주에게 항의하는 글까지 썼다. 시대를 초월한 그들의 일관성에 경의를 표한다.
호불호는 갈리지만 어쩔 수 없다. 마주하면 불편하고 귀찮다. 타협은 없다.
귀농 후 불편한 자리와 만남은 사절이다. 사람 중에도 뱀과 같고 파리와 같으며 쥐 같은 행동을 하는 부류들이 있다. 그들도 멀리한다. 모두를 포용하고 감싸 안을 아량과 덕이 부족하지만 채울 생각은 없다. 단, 그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게 무시로 다짐하고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