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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농부가 만난 사람들-11]

by 최담

험난한 시절이었다. 주저앉아 울었다. 하늘 보며 소리 질렀다.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쳤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헤매이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렇지만 멈추지 않았다. 포기마저 사치였다. 신앙과 믿음으로 일어섰다. 지금은 그 시간들을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다.


직장 생활을 하다 조금 늦게 군에 입대했다. 전투경찰로 차출됐다. 격렬한 시위를 막고 대기하는 날들의 반복. 힘든 생활을 버티게 해 준 건 누군가의 편지와 '샘터'라는 조그만 월간 잡지였다. 위로와 힘이 되어준 그녀와 군 생활 중 약혼했다.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연인이었다. 제대 후 바로 결혼했다. 복직했지만 박봉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며 가정을 꾸려 나가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가전 대리점을 시작했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돈을 끌어와 제품을 사들였다. 사업은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야심 차게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IMF라는 폭탄을 맞았다. 가게가 있는 건물이 경매로 넘어갔다. 장사를 할 수 없었다. 한순간에 모든 걸 잃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꼼짝없이 길거리로 나앉았다.


뭔가를 다시 시작하려고 해도 무일푼이었다. 어느 날, 집에서 피자를 만들어 먹었는데 놀랄 만큼 맛있었다. 집에 반죽기를 놓고 계속 연구했다. 이 정도면 돈을 받고 팔아도 충분히 통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넘치는 자신감으로 근처에 조그만 피자가게를 열었다.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있었지만 틈새를 파고들어 승부했다. 반응이 좋았다. 인근 대단지 아파트에 분점을 열었다. 시장분석에 미흡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브랜드 피자만을 찾았다. 매출이 오르지 않았다. 부채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늘어났다. 스트레스로 건강마저 잃었다. 다시 절망의 순간, 두 분은 포기하지 않았다. 간절한 기도로 버텼다. 다시 시작을 위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방향은 아내의 고향인 보은이었다.


아파트 지하상가에 조그만 가게를 낙찰받았다. 막상 가게를 구했지만 아는 사람도 없고 돈도 없었다. 집과 가게를 오가며 손수 인테리어 작업을 했다. 모든 게 어설펐지만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공간에서 그 시작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두 분의 기도는 늘 힘들고 막막한 현실을 견디며 살아가게 해주는 빛이었다. 기도에 응답하듯 도움의 손길이 찾아왔다. 근처에서 공사를 하던 건축회사 사장님은 일이 끝나면 가게로 와 작업을 도와주셨다. 조건 없이 일손을 보태는 청년도 만났다. 밥을 제공해 주시는 분도 있었다. 매일 감사 기도를 올렸다.


각고의 노력 끝에 피자와 돈가스를 주메뉴로 하는 가게를 오픈했다. 도시와 달리 이미 형성된 저렴한 가격에 맞춰 영업을 시작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두 분은 지역에 있는 교회를 다녔다. 초기에 자리 잡기까지 교인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다. 자리를 잡기 위해 더 힘차게 뛰었다. 거래처와의 신뢰도 쌓아갔다. 한편으론, 모든 일이 순탄하게만 펼쳐지지 않음을 절감한 상황과 마주했다. 잘 운영해 가고 있는 데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가게 주인이 바뀌었다.' '문을 닫았다.'는 근거 없는 말들이 곳곳을 맴돌았다. 힘들수록 기도는 간절했다. 간절함으로 단골손님이 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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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 소스 개발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악착같이 열심히 뛰었다. 건강 이상으로 금방 지치고 급격한 허기를 느끼는 날들이 반복됐다. 빵을 사 먹으며 버텼다. 그 빵이 독이 됐다. 건강이 더 악화돼 빵을 끊었다. 문득 빵 사 먹은 돈을 모으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모은 돈이 종잣돈이 되어 뜻하지 않은 목돈으로 돌아왔다. '티끌 모아 태산'이 진리임을 확인했다. 감당하기 힘들었던 빚을 갚아 나가기 시작했다. 가족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으로 큰 도움을 주신 분들도 계셨다. 정직과 신뢰가 쌓이고 쌓여 주어진 선물이었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할 동력은 곳곳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가족들은 가게 뒤 난방도 안 되는 방에서 오랜 시간 거주했다. 어려운 형편에 딸과 아들도 힘든 날들이었다. 학원 한 번 보내지 못했다. 어둡고 차가운 방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기도하며 견디고 이겨냈다. 자녀들은 부모를 거울로 삼아 자란다는 말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제대로 해준 건 없지만 지나온 시간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되뇌고 되뇌며 강조하는 주문이 있다. '욕심부리지 말자.' 남과 경쟁하지 말자.' 작은 것에 감사하자.' 고맙게도 이 주문을 딸과 아들은 생활 속에서 잘 실천하고 있다. 딸은 매장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전공을 살려 맛있는 소스와 메뉴 개발에 핵심이다. 아들은 얼마 전 건축사 시험에 합격하며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오로지 빚을 갚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앞만 보고 달렸다. 옆에는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손잡고 다독여준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다.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되었다. 빚을 갚은 후, 마련해 놓은 땅에 아들과 디자인한 멋진 건물을 세웠다. 1층은 매장, 2층은 주거공간. 건물을 지으면서도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손님들은 잊지 않고 찾아와 주셨다. 생각해 보면 늘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두 분은 진실한 믿음으로 기도하고 봉사하며 실천하는 진정한 신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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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시간이 아득하다. 이제는 몸과 마음을 돌보는 시간도 많이 가지려 한다. 오래전부터 꿈꾸어 왔던 '작은 음악회'를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연다. 손님들과 감동을 나누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이다.

힘내라는 말보다는 조용히 다가와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베풀어 주신 모든 분들을 위한 기도다.

정 집사님과 사모님이 함께 걸어온 시간은 흔들리고 무너져 내리는 많은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희망의 증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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