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가 만난 사람들-12]
농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각각의 사연을 안고 입구로 들어선다. 맞이하는 마음은 늘 새롭다.
찾아오는 모든 이들은 무조건 좋은 기억과 행복한 마음으로 머물다 가야 한다. 아내와 나는 그들의 일생과 함께 하고 있음을 안다.
조금 멀리서 특수반 친구들이 찾아왔다. 유치원부터 고등학생까지 3일에 걸쳐 프로그램을 함께 했다. 휠체어를 타고 온 친구를 위해 걸림 없이 넘을 수 있도록 출입문에 경사로를 설치했다. 그들은 맑고 밝았다. 순수하고 적극적이었다. 얼굴에 피어난 웃음꽃이 시들 줄 몰랐다.
'추억의 도시락' 체험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도시락을 세 번 먹고 달걀 프라이를 다섯 개나 먹은 친구도 있었다. 초등 1학년 친구에게 체험 소감을 물었다.
"제 일생에 가장 맛있는 밥을 먹었습니다"라고 말해 모두 웃었다.
8살 인생은 그렇게 맛있는 추억을 가득 담아 갔다. 그 친구가 가끔 생각난다. 함께 했던 그들의 앞날에 사회의 편견과 이웃의 혐오가 없는 그저 평범한 세상이 펼쳐지길 바란다.
겪지 말아야 할 일을 겪으며 하루하루를 버텨 내는 분들이 오셨다. 서른을 넘긴 청년부터 여든의 어르신까지 연령, 성별, 사연도 다양했다. 처음 그분들이 오신다고 했을 때 마음이 무거웠다. 감당하기 힘든 아픔과 한을 가슴에 품고 계신 분들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표정은? 말투는? 혹여 사소한 언행이 또 다른 상처를 안기지는 않을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많은 자료를 보며 공부했다.
햇살 고운 날 버스가 농장 입구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차례로 내리는 데 저절로 웃음이 번졌다. 모두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 오셨다. 손을 맞잡고 잘 오셨다며 큰 소리로 맞이했다. 체험을 하는 동안에도 분위기는 어색함 없이 자연스러웠다. 그렇다. 그분들은 위로나 동정을 받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었다. 머무는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과 몰입으로 몸과 마음의 자연스러운 치유를 위해 먼 길을 찾아오셨다.
"오늘 이곳에 와서 웃음을 찾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어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의 기억으로 다시 힘을 내서 보란 듯이 살아 내겠습니다."라는 소감을 남겨 주셨다.
세상에 자랑이던 큰아들을 먼저 보내고 몸져누운 아내를 보살피며 힘겨운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계셨던 어르신의 안부가 궁금하다.
지난달에는 치매 어르신들과 보호자들이 오셨다. 3년째 방문이다. 한 번 오실 때마다 8회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3년 연속 오신 분들도 많다. 노부부가 대부분이시다. 한 분이 치매를 앓고 계시고 배우자분이 도우미가 되신다. 시작하기 전 치매 예방 체조를 한다. 모두가 힘차게 따라 하신다. 벌써 표정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난다. 특별히 준비한 박수 게임을 한다. 한 분도 틀리지 않고 바로 통과다. 분위기는 고조됐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며 인내하는 마음이 뭉클한 감동으로 밀려온다.
아저씨를 모시고 온 아주머니께 조용히 물었다.
“10여 년을 돌보고 계시는데 힘들지 않으세요?”
아주머니는 활짝 웃으며 말씀하셨다.
“젊고 좋은 날을 함께 지나왔는데 늙어 병들었다고 나 몰라라 하면 안 되는 거죠."
“이렇게라도 옆에 있어 주니 고맙죠.”
나는 오늘도 사람 속에서 삶을 배워 나간다. 많이 배우고 공부한 사람에게서 나온 철학은 학문이고 많이 경험하고 사유하는 사람에게서 나온 철학은 삶의 교훈이 됨을 깨닫는 시간들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입원 중에도 외출하고 오신 어르신, 아침부터 농장에 가자고 조르신다는 어르신,
활동이 끝나는 게 아쉬워 눈물 글썽이는 어르신 모두가 치유농장 운영의 보람과 의미를 찾게 해 주신 분들이다. 길지 않은 시간, 급하지 않은 먼 길을 훌쩍 떠난 분들의 소식이 들려온다. 삶과 인연은 바람과 같다.
매주 토요일, 12명의 초등학교 친구들이 교육청 온 마을 배움터 프로그램인 "가람뫼로 떠나는 생태 예술여행"에 함께한다. 올해는 모집공고에서 오픈런이 일어났다. 단, 1분 만에 신청 완료! 한정된 인원으로 진행하다 보니 함께 하지 못한 친구들이 많다. 미안하고 아쉽다. 닭과 달걀, 한지, 나무, 흙, 자연 등을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농장의 자연 자원과 농업 자원, 인적자원을 최대한 활용한다.
4학년 때부터 참여한 친구는 3년을 함께하고 중학교에 갔다. 2학년 친구는 앞으로 스무 살 때까지 올 거라며 약속하자고 한다. 일주일 중 가람뫼 가는 날을 가장 기다린다고 하는 친구들이 고맙고 대견하다.
늘 새롭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할 이유다. 농장에서의 시간과 경험이 소중한 추억의 한편에 자리 잡아 감성과 사색, 풍요로운 마음공부의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한다.
앞으로도 다양한 사연과 인연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들을 만나는 일은 일상의 설렘이요, 기쁨이다. 머무는 순간이 모두에게 위로와 행복의 기억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도록 가꾸고 다듬고 채워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