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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생님과 칼국수

[나를 살게 하는 맛-1]

by 최담

지역에는 칼국수 집이 많다. 예식장 주메뉴도 칼국수다. 다양한 칼국수집은 저마다의 비법으로 손님들을 유혹한다. 독특한 국물과 특색 있는 면의 조화는 개성 있는 칼국수 맛을 만들어 낸다. 옛날 칼국수, 들깨 칼국수, 능이 칼국수, 닭칼국수, 얼큰 칼국수, 바지락칼국수, 김치 칼국수, 매생이 칼국수, 메밀 칼국수, 멸치 칼국수 등등. 많은 칼국수집이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팥 칼국수 집은 없다.

곳곳의 칼국수집들은 모두 손님들로 붐빈다. 지역 특성 때문인지 칼국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


가끔 만나 점심을 함께 먹는 이 선생님의 메뉴는 무조건 칼국수다. 칼국수 중에도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는 옛날 칼국수 만을 고집하신다. 칼국수는 매일 먹어도 좋다며 함박웃음을 지으신다.

이 선생님에게 칼국수는 밥이요,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가난한 어린 시절 칼국수는 온 가족의 생존을 책임지는 먹거리였다. 운명처럼 만난 칼국수는 살기 위해 먹는 음식이었다. 맛은 사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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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재배한 밀을 디딜방아로 찧어 채로 걸러냈다. 밀가루 반죽을 쟁반 위에서 홍두깨로 밀어 칼국수를 만들어 먹던 시절이 어제인 듯 생생하다. 같은 양의 재료로 많은 식구를 먹이기 위해선 밀가루 반죽을 최대한 얕고 넓게 밀어서 가늘게 자르는 게 중요했다. 칼국수를 만드는 어머니의 솜씨는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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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두깨(좌)와 디딜방아(우)

저녁마다 먹었던 칼국수에 들어간 재료는 소박했다. 끓인 물에 호박을 넣고 간장으로 간을 맞추며 칼국수 사리를 넣으면 완성. 지금도 최소한의 재료만 들어간 칼국수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래 반죽하고 치대면 쫄깃쫄깃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칼국수를 일할 때는 새참으로 박 바가지에 두세 그릇을 먹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칼국수를 먹으려 할 때 느닷없이 손님이 찾아오면 끓여 놓은 솥에 물 한 바가지 더 부으면 됐다. 칼국수는 그 자체로 마음의 표현이며 환대였다. 어떤 경우에도 칼국수는 맛있었다. 칼국수가 남으면 장독에 올려놓았다. 다음날 아침, 떡이 돼 있는 이것도 최고의 맛이었다.


한 끼 한 끼 생존의 기로에서 식구들의 끼니를 칼국수로 채워 줄 수 있다는 것으로 어머니는 한숨 돌리셨다. 칼국수엔 가족을 향한 어머니의 고단하고 애틋한 삶의 여정이 가득 담겨있다. 어머니의 마음과 손맛이 버무려져 만들어 낸 최고의 칼국수를 이 선생님은 여든을 넘어선 지금도 찾고 계신다.

이 선생님에게 칼국수는 여전한 그리움이요, 애증이다. 애증의 음식은 애정의 음식보다 더 깊고 진한 맛으로 오랜 시간 질리지 않고 함께한다.


이 선생님께 전화를 건다. "선생님, 칼국수 한 그릇 드실까요?" 선생님의 대답은 늘 똑같다. "나야 최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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