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의 직원' -행복한 닭의 비밀-
미명의 시간, 새벽은 멀리 있는 데 힘찬 울음소리가 점점 크게 다가온다. 아득한 시간으로부터 들려오는 신비의 소리가 대지를 깨운다. 어느 생명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부지런함은 마냥 여유 부리며 느긋한 농부를 자극한다.
15년 전, 농촌에서의 삶을 선택한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닭과의 인연은 예사롭지 않았다. 자연과 사람과 동물이 어우러져 공존하는 삶을 꿈꾸며 찾아든 시간 속에서 자연 양계 방식으로 닭을 키우는 농장을 보게 된 건 행운이었다. 불문율처럼 여겨지던 대량생산의 공장식 축산 형태에서 벗어나 환경친화적으로 건강하게 닭을 키우는 농부의 철학과 일상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바로 귀농을 실행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농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고 설렌다. 싱그런 햇살과 푸르른 나무와 새들의 지저귐이 함께 한다. 닭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로 밤새 안부를 가늠한다. 닭들도 말을 한다. 배가 많이 고플 때, 물이 부족하여 목이 마를 때, 들짐승이나 새들의 간섭으로 불안할 때, 무리 중에 몸이 아프거나 따돌림을 당하여 쫓기고 있을 때 들려오는 그들의 울음소리는 상황마다 분명히 다르다. 닭들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때 제대로 닭을 키우는 진짜 농부가 된다.
평온한 하루는 늘 농부의 관심으로 시작된다. 가장 먼저 모이를 준다. 10여 가지 자재를 배합·발효 후 만들어 놓은 최고의 영양식이다. 전국에서 올라온 검증된 재료들만으로 모이를 만든다. 멀리 남도 구례의 밀밭 향기 가득 담긴 밀기울, 신안의 바다에서 해풍과 태양, 사람의 땀방울로 영글어진 천일염, 수 천년의 세월을 흐르고 흘러 켜켜이 쌓인 김제 들판의 붉은 황토, 청주의 돌 광산 석회석이 들어간다.
지역의 논과 밭에서 생산된 들깻묵과 참깻묵, 왕겨, 쌀겨, 청치, 현미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재료들이다.
지금은 정립이 되었지만, 달걀을 낳는 닭에게 직접 만든 모이를 준다는 생각 자체가 무모하고 어리석은 도전이었다. 공장에서 정확한 비율과 성분 함량으로 생산된 배합사료를 먹이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진리다. 시도된 적 없는 야심 찬 도전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시간과 자본과 노동의 간극은 어긋난 방향으로 흘렀다. 닭의 상태와 결과물인 달걀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자가 사료를 위한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다. 닭과 함께 한 시간의 변함없는 수고와 노력은 내가 먹는 것이 내 몸이 되듯, 닭이 먹는 것이 달걀이 된다는 오직 하나의 믿음 때문이었다.
모든 농장이 자동으로 모이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였지만 여전히 모이통에 직접 넣어 준다. 끼니를 준비하고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모습으로 가족의 건강과 마음 상태를 살피는 어머니의 마음과 같다. 몸에 이상이 있거나 상태가 안 좋은 닭은 멀리서 멀뚱멀뚱 거릴 뿐 모이통으로 성큼 다가서지 않는다. 조심스레 이곳저곳을 살피고, 온갖 애벌레와 산야초가 우거진 곳에서 휴식과 안정을 취하게 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회복이 되어 분주하게 땅을 파헤치고 사방팔방 뛰어다닌다.
처음 시작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마릿수는 변동이 없다. 최적의 노동과 인력으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공존의 삶을 위해서다. 천여 마리의 닭이 울타리와 지붕이 있는 편안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생활한다. 사계절 지하 암반수가 흐르고 바닥은 뽀송뽀송 언제든 흙 목욕이 가능하다. 닭들은 무리하지 않는다. 몸 상태에 따라 자연스레 알을 낳는다. 알을 낳는 곳은 공간 중에 가장 편안하고 아늑한 곳이다. 닭들이 생활하고 나갈 때 남겨 놓은 계분은 최고의 거름이 되어 농가의 작물 생산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닭은 머리가 나쁘지 않다. 감각은 고도로 발달되어 있고 눈치 또한 빠르다. 주인이 어떤 의도로 접근하는지 동작만으로 알아챈다. 먹을 것이 있어도 한꺼번에 다 먹지 않는다. 배가 부르면 남겨뒀다가 허기지면 그만큼만 먹는다. 암탉과 수탉이 어우러져 생활한다. 보통 수탉 한 마리에 암탉 열두 마리 정도가 한 가족을 이룬다. 여러 가족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는 철저한 서열과 역할 분담으로 나름의 질서를 형성한다.
닭들이 있는 공간엔 어떤 냉, 난방 장치나 조명도 없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거뜬히 견뎌낸다.
춥거나 더워서 죽은 닭은 단 한 마리도 없다. 아파서 죽은 닭도 손에 꼽을 정도다.
해가 지면 횃대에 올라 잠을 잔다. 냄새가 전혀 없고 오, 폐수도 나오지 않는다. 농장엔 예쁜 정원이 두 군데 있다. 가축을 키우는 가장 아름다운 농장을 만들려는 노력은 늘 현재 진행형이다.
행복한 닭이 낳은 안전하고 영양 많은 달걀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된다. 늘 좋은 달걀을 먹게 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는 농부의 하루하루를 보람과 자부심으로 가득 채운다.
어느덧 하루해는 저물고 닭들은 고요하다. 농부는 매일 닭의 일상을 직접 관찰하고 기록해 나간다. 아득한 날부터 들려오던 닭 울음소리와 함께 다시 농부의 하루는 시작되고 당당한 작은 농장의 발걸음은 계속된다.
사람과 자연과 동물의 공존을 위한 삶 속에 건강하고 행복한 닭의 비밀이 있다.
모든 농부는 자신 만의 작물을 직원으로 둔 CEO다.
훌륭한 CEO는 날마다 직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표정과 상태를 살펴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다.
현명한 CEO는 자기 몫의 최선을 다하며 직원들이 알아서 일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유능한 CEO는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함께 가는 사람이다.
오늘도 CEO는 직원의 잘못을 탓하거나 혼내지 않는다.
발생한 문제의 모든 책임은 온전히 CEO에게 있다.
농부는 고독한 직업이다.
자신의 일터에서 고독과 자유를 즐길 수 있을 때 풍성한 결실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