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색하고 탐문하고 탐사하기
귀농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어디로 갈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막연하게 충청도 어디쯤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탐색 중이었다.
열심히 귀농교육을 받고 있던 어느 날, 전 직장 동료이자 친구가 물어볼 게 있다며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귀농을 준비중이라 말했더니 친구는 반색하며 이것저것 묻고는 어디로 갈 건지 궁금해했다.
아직 정해진 곳은 없고 충청도 어디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말했더니 대뜸, 충북 보은에 형이 사놓은 땅이 있는 데 마을사람에게 임대를 주고 있다며 한번 가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귀가 번쩍 뜨였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바로 다음날 함께 내려갔다.
속리산과 법주사로 유명한 보은은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갔던 곳이었다. 귀농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찾아간 보은의 모습은 낯설었지만 주변 풍광과 분위기는 포근하고 정겨웠다. 친구가 말한 땅은 읍내에서 멀지 않은 마을의 조금은 숨겨진 듯하면서도 아늑한 정 남향의 매력 있는 곳이었다. 한눈에 쏙 들었다.
들뜬 마음을 안고 마을 쪽으로 내려오는 데 운명처럼 빈집이 보였다. 문이 열려 있어 조심스레 들어갔다. 둘러보니 몇 년은 비어 있던 집이었다. 곧바로 마을 이장님을 찾아뵙고 여쭤 봤다. 집의 내막과 집주인의 사연에 대해 친절하게 말씀해 주시고 연락처까지 알려 주셨다. 행운이었다.
귀농 후 무엇을 하며 먹고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해결했지만 정작 어디로 갈 것인지는 정하지 못하고 있었는 데 뜻하지 않게 최고의 귀농지를 소개받은 것이다. 며칠 후 아내와 함께 다시 보은으로 내려가 땅과 집을 둘러봤다. 아내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갈 곳과 살 곳이 정해지자 귀농 실행은 일사천리였다. 지역을 충청도로 염두에 둔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귀농 후 체험농장을 운영할 계획이었는 데 남한의 중간쯤이면 전국 어디서든 어렵지 않게 찾아올 수 있을 거란 조금은 부푼 생각에서였다.
내려오기 2년 전만 해도 보은은 첩첩산중 오지였다. 인근 청주나 상주, 대전으로 나갈 때는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가야만 했다. 2007년, 청원 상주 간 고소도로가 개통이 되면서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귀농하는 우리 가족을 위해 시원스레 고속도로까지 뚫어 주었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보은은 확실하게 남한의 중심이다. 목포나 부산, 강릉과 김포 어디를 가도 두세 시간이면 거뜬하다.
귀농지를 선택할 때, 일단 고향 쪽으로는 가지 않기로 했다. 고향엔 부모님이 살고 계신다. 남도의 정겨운 산과 들과 냇가는 어릴 적 추억의 순간순간마다 등장하는 소중한 곳이다. 평생을 터 잡고 계시는 인정 많고 소탈한 마을 어르신들과 형, 동생들도 애틋하다. 고향엔 농사 지을 수 있는 논과 밭과 산이 있다.
고향으로 가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마을 분들의 눈과 귀와 입으로 퍼져 나가는, 들리면서도 들리지 않고 알 면서도 알 수 없고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묘한 분위기와 무수한 뒷말과 살펴야 하는 눈치와 무도한 간섭이었다. 서울로 유학 갔던 멀쩡한 자식이 느닷없이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짓고 있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부모님의 마음도 헤아렸다.
최고의 귀농지로 정해진 곳은 없다. 도시를 떠나서 무엇을 할 것인가? 란 물음 속에 맞는 지역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모든 지역이 자신들만의 특산품을 지정해서 지원, 육성하고 있다. 관심 있는 작물이 있다면 해당 지자체를 귀농 1순위 지역으로 선택하는 게 좋다.
보은은 대추의 고장이다. '생대추는 과일이다'란 기치아래 전략적으로 육성하며 특산품으로 자리매김했다. 귀농인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작물이다. 작물에 대한 교육과 지원, 마케팅과 상호 정보교류, 판매까지 여러모로 도움을 받고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다.
거기가 어디든 언젠가 도시를 떠나고 싶다면 평소 여행을 다니면서 여러 지역을 둘러보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된다면 자치단체의 귀농 귀촌 지원센터나 담당 부서를 방문해 귀농인에 대한 정책이나 지역의 특산품, 문화와 전통 및 역사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수집하는 게 좋다.
방문한 지자체의 담당 직원이나 주민들이 불 친절하고 귀찮은 기색이 역력하다면 그 또한 좋은 징조다. 그런 지역으로는 절대 가면 안 된다는 걸 스스로 일깨워 주는.
심각한 출산율 저하와 함께 지역인구 감소는 자연스레 지역 소멸로 이어져 자치단체마다 비상이 걸렸다. 모든 지자체의 최대 역점사업이 인구 늘리기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 사람, 한 가족의 유입이 절실할 때 제 발로 찾아온 예비 귀농인을 푸대접하는 곳이라면 군 행정은 물론 지역의 인심 또한 불 보듯 뻔하다. 그렇게 옥석을 가려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전통과 관습을 잘 알아보고 분석하는 것은 정착 후 사업체의 상호를 정할 때나 특징을 설명할 때 유용한 자료가 된다. 스토리텔링을 곁들여 살고 있는 지역과 사업체가 소재하고 있는 곳, 생산되는 품목을 소개하고 알리는 것도 효율적인 마케팅이다.
인구 늘리기에 사활을 건 자치단체들이 파격적인 조건으로 귀농인을 유치하고 있다. 자신의 조건과 방향에 맞는 곳을 직접 발로 뛰며 찾아보는 것이 최선이다. 중요한 건 지자체의 좋은 지원조건이 정착단계에서 조금은 수월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선택이 될 수 있을 뿐, 성공을 위한 충분조건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마을사업으로 50억의 예산이 내려와도 제대로 운영되고 유지, 발전되는 곳을 거의 보지 못했다. 성공적 귀농을 위한 조건과 변수들은 곳곳에 널려 있다.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지역을 살피며 가벼운 마음으로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보면 마음이 가는 살고 싶은 곳이 눈에 보인다. 그렇게 발견한 곳이라면 더 자주 내려와 탐문해 보고 탐사해 봐야 한다. 귀농의 성패를 좌우하는 데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는 것이 없지만 터전을 잡고 살아갈 최적의 지역을 찾는 것은 그 첫 번째 조건이 될 것이다. 거기가 어디냐는 새로운 전환점, 도전의 시작과 끝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