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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 Oct 22. 2023

나의 친애하는 노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올려다본다. 오늘의 하늘은 어떤 빛일까. 아침이면 베란다로 나가 하늘을 보고 날씨를 가늠한다. 출근길에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하늘이 예쁘면 좋고, 파란 하늘이면 더 좋다. 높은 건물로 가득한 도시에 살아서일까. 알프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한 영화 <여덟 개의 산>에서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하늘을 보지, 시골에서는 하늘을 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늘 바라보는 것이 모두 하늘이므로.


특히 해질 무렵의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나의 하루 일과 중 하나다. 해가 떨어지기 전후의 짧은 시간. 하루 중 이토록 집착하는 시간이 또 있을까. 그 시간만 되면 나는 그리운 이를 만나러 갈 때처럼 달뜬다. 매일 지나는 시간인데도 그 시간만 되면 혹여 놓치는 건 아닐까 조바심치고, 날씨가 흐려 보지 못할까 아쉬워한다. 그 시간에 기차라도 타는 날이면 늘 서쪽 방향을 생각해 자리를 잡는다.


무엇이 그리도 아쉬운 건지, 무엇이 그렇게 그리운 건지. 또 하릴없이 지나가는 하루를 가장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라 아쉬운 걸까. 아니면 매일 봐도 또 보고 싶은 풍경이어서 그리운 걸까.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다시 보고 싶은 그리움. 어쩌면 아쉬움과 그리움은 하나의 얼굴인지도 모른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 뒤로는 주로 서쪽에서 살았다. 그것도 한강 근처 서쪽. 그래서인지 어디서나 노을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집에 있을 땐 해 질 무렵이면 오늘의 일몰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하며 서편 하늘이 보이는 작은 베란다로 가보곤 한다. 정말 근사한 노을이 지나갔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붉게 물든 하늘이 쏟아질 듯 창으로 들어오는 날이면, 집 안에서 너무 쉽게 만나는 황홀한 풍경에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바라보기도 한다. 이렇듯 아름다운 절경을 매일 볼 수 있다니…. 해가 질 무렵은 특별한 여행지에 가지 않고도 여행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날마다 조금씩 다른 자연의 드라마틱한 모습을 일상 속에서 매일 볼 수 있다는 건 커다란 축복일 것이다.


어떤 곳이라도 해가 질 때가 되면 그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왠지 부끄러워 얼굴이 붉게 변하는 것처럼 서먹서먹한 모습으로 서 있다가 이내 지금이 생의 마지막인 듯 달아올랐다가 어느 순간 푸르스름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세상의 저편으로 밀려나며 검게 변해버린다. 사실 그 순간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시시각각 변하는 그 모습은 창조주의 섭리 같은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동안 하늘은 얼마나 많은 노을을 품었을까.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억겁의 시간 동안 어느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었다는 것. 얼마나 신비로운가. 



일몰, 해넘이, 해거름, 석양, 낙조, 노을. 

나를 설레게 하는 단어들이다.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그 오묘하고 황홀한 자연의 신비가 떠오른다. 여기서는 그중 발음이 순하고 글자도 어여쁜 '노을'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쓸 것이다.(물론 하늘을 붉게 물드는 현상을 말하는 노을은 일출 때 생기는 아침노을도 있지만) 


오래전부터 노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노을이 아름다운 곳들에 대한 이야기, 노을을 보기 위해 찾아 다닌 이야기, 노을을 바라보며 느낀 서정과 감상. 매일 만나는 노을에서 무언가를 얻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멋진 노을을 보러 떠나고, 길을 가다 근사한 노을을 만나면 우뚝 멈춰서기도 한다. 노을이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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