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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 Sep 04. 2023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4회 말


축구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는 말일지도 모르겠으나 축구의 경우 볼이 라인을 벗어나지 않는 한 선수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공을 주고받는다. 심판이 경기에 개입하는 경우는 반칙이 일어났을 때뿐이다. 대표적인 반칙으로는 오프사이드 반칙과 핸드볼 반칙이 있고 상대 선수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반칙이 일어난다. 많은 단체 구기종목에서 심판의 역할이 축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반면 야구는 플레이 하나하나에 심판의 판단이 개입된다. 투수가 던진 공이 볼인지 스트라이크인지 판단하는 것이 주심의 주된 역할이며 타자가 친 공이 파울볼인지 페어볼인지, 그라운드로 날아간 공이 안타인지 플라이 아웃인지 판단하는 것도 심판의 몫이다. 베이스 하나를 심판 한 명이 맡아 태그 아웃을 포함한 세이프와 아웃 판정을 내리기도 한다. 심판은 수비방해와 타격방해, 주루방해 등 각종 방해 행위들을 가려내며 하다못해 투수의 투구 폼까지 관찰하고 보크 여부를 판단한다. 이 외에도 심판이 적용하고 판단해야 할 자잘한 규칙은 무척 많다.


그래서일까. 야구 심판은 사사건건 선수들과 부딪힌다. 얼마 전의 일이다. 루킹 삼진을 당한 타자가 갑자기 배트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더니 홈플레이트를 힘껏 내리쳤다. 심판을 포함해 그라운드에 있던 모든 선수들이 순간적으로 얼음이 된 듯 움직임을 멈췄는데 이것이 심판 판정에 대한 항의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한국시리즈의 마지막 7차전 경기. 양 팀이 3승 3패로 맞선 상태에서 한 점 차로 뒤지고 있는 후공팀의 9회 말 공격. 투 아웃에 주자는 2, 3루. 볼카운트 3볼, 2스트라이크. 투수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한참 벗어난 채 홈플레이트를 통과하는데 주심은 삼진 아웃을 선언한다, 라는 상황 정도가 아니면 이해불가한 행동이라 생각된다.


배트 난동 사건의 당사자에게 주의 정도는 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심판은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선수의 돌발행동을 심판이 쿨하게 봐주고 넘어갔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사회인야구 리그의 운영 원리는 간단하다. 구장을 보유하거나 임대한 리그 운영자가 사회인야구팀에 구장을 대여해 수익을 얻는 것이다. 구장 대여가 한 게임 한 게임 이뤄지는 것은 아니고 보통 일 년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눠 리그에 참여할 팀을 모집한다. 리그 참가비는 열한 경기 게임 배정 기준으로 삼백 만원을 웃돈다. 리그 운영자는 구장을 대여하면서 각 게임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게임볼과 같은 소소한 물품 외에 두 명의 심판과 한 명의 기록원을 투입한다. 리그 운영자가 사장이라면 선수는 고객, 심판은 종업원으로 명확한 갑을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회인야구 주심은 특히 이런 종류의 갑질에 경기 내내 노출된다. 투수가 던진 공을 스트라이크로 판정하면 타자가 항의를 하고 볼로 판정을 하면 포수가 항의한다. 투수가 볼넷을 내주는 것은 제구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며 타자가 삼진을 당하는 것은 공을 제대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삼진이든 볼넷이든 결국 운동능력 결핍에 주의력 결핍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인데 이것을 심판 탓으로 돌리는 갑질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선수 입장에서는 갑질이 아니라 잘못된 판정에 대한 정당한 어필이었다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까지 심판과 리그 운영자에게 항의를 하고 해당 심판을 자기 팀 경기에서 배제해 달라고 요구해 그것을 결국 관철시키는 행위마저 정당한 어필이라 말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야규 규칙에 어필 플레이라는 것이 있다. 특정한 상황에서 주자의 몸 또는 베이스를 태그 한 후 심판에게 어필을 해야만 아웃이 인정되는 룰이 야구에는 존재한다. 예를 들어 플라이 볼이 잡히는 것을 보고 귀루하려던 주자를 태그 하거나 베이스를 태그 한 후에 심판에게 글러브를 들어 보이며 자신이 태그를 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이런 규칙을 모르고 야구를 보던 시절에는 선수들이 왜 그렇게 심판에게 달려가며 호들갑을 떠는지 이해하지 못했었지만 이제는 알겠다. 어쨌거나 야구에서 특히 사회인야구에서의 어필은 이런 정도의 어필이면 족하다.


배트 난동 사건의 주범. 심판 블랙리스트를 만든 감독. 심판에게 상습적으로 인상을 쓰는 당신. 심판을 감정노동자 반열에 올려준 당신들에게 김수영의 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바친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 옹졸하게 욕을 하고 // 한번 정정당당하게 /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 이십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 (중략)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 이발쟁이에게 /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 야경꾼에게 이십원 때문에 십원 때문에 일원 때문에 / 우습지 않느냐 일원 때문에 //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 정말 얼마큼 적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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