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립어
학창 시절 누구나 봤을 법한 싯구.
정지용의 '향수'. 기교없이, 한없이 정직한 저 문구에 마음을 뺏긴 열일곱 어린 소녀의 마음이란 이제 와 이해하기 어렵지만 나는 어쩐 일인지 흙, 땅, 시골 같은 어휘들을 떠올리면 어김없이 저 싯구도 함께 생각이 나고 만다.
어릴 적 초등학교 저학년을 시골에서 보냈다. 아주 깡촌까진 아니었지만 반 친구들 중 한 둘은 아버지의 경운기를 타고 등교를 할 정도의 시골이었다. 부모님이 벼농사를 짓거나 밭을 일구신 건 아니었지만 자연스레 그런 환경에 노출이 되었고 자라고 나서도 흙이랄까, 그런 환경이랄까. 내게 고향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막연하긴 했지만 언제나 꿈꾸곤 했다. 나이가 들어 시골에서 작은 텃밭을 일구고 멋쟁이 진돗개 두어마리 쯤 키우며 사는 촌부의 노년을.
말 그대로 막연했다.
도시여자인 엄마, 늘 바쁜 아빠. 시골에서 살아도 농사는 누가 지으며 그걸 과연 생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살림하며 텃밭이나 가꾸는 팔자 좋은 여자의 인생은 내 삶이 아닌듯한데 나는 과연 어디에서 그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저런 고민들. 로또 당첨이 되면 시골에 천 평 쯤 땅을 사서 살아야겠다, 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내게 농사를 짓는다는 건 먼 미래라는 말론 모자란, 평행우주 그 너머 어딘가를 그리는 일처럼 다른 차원의 이야기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엄마가 말했다. 차를 타고 오는 길에 횡단보도를 앞에 두고 신호를 받고 서 있는데 교차로의 건너로 한 현수막이 보이더란다. 어쩐 일인지 눈이 가 읽어보았더니 텃밭 분양에 관한 내용이었단다. 머리 속으로 뭔가가 핑- 하고 지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끊기는 것 같기도 하고. 엄마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속사포처럼 궁금증을 늘어놓았다. 땅은 어디에 있냐고 분양가는 얼마며 계약기간은 또 어떻게 되는지. 엄마는 쏟아지는 말들에 잠깐을 벙쪄있더니 핸드폰을 꺼냈다. 못 외울게 뻔하니 현수막을 사진으로 찍어왔다고 했다.
역시 우리 엄마다.
이렇게 나의 작은 텃밭 이야기는 시작된다.
언젠가 촌부로 노년을 살게 될 내 말년의 예고편이랄까.
누구에게나 완벽한 처음이란 없으니까. 부딪혀 보는거다.
이 책엔 여느 농사책처럼 이론적인 농법이라던가 여느 요리책처럼 디테일한 레시피가 적혀져 있진 않다.
다만 누군가는 꿈꿀 도시 농부의 삶, 시골에서의 노년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위해 내가 겪은 사소하고 중요한 시행착오라는 이름의 경험들이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반 년간 이루어진 나의 엉망진창 텃밭도전기엔 아주 작은 농사팁이 하나 둘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농사를 짓고 싶다면, 밭을 가꾸고 싶다면, 내 손으로 키워 내 손으로 만들어 먹는 일에 관심이 있다면 부디 지금 당장 시작하길.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보다 중요한 일이 얼마나 될까?
그 일을 당신도 이룰 수 있다면 좋겠다.
작게나마 하나에서 시작해서 전부를 이룰 수 있기를.
그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흙에서 자란 내 마음, 영혼과 경험이 자라는 과정.
그리고 그 마음으로 배불리 살찌는 뱃살 이야기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