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다툼할 시간도 없고, 후회할 시간도 없다. 그리고 아무도 그 사람을 미워할 만큼 나를 비천하게 만들지 못한다.”
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 중에 나오는 말이다.
너는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너에게 10억을 준다면 지금 이것을 포기할 것인가?”
그때 그날도 그랬다. 다니던 직장에서 운영하던 회사 매점을 개인에게 공개 입찰하던 날이었다.
구미 공업단지에 당시 중견 섬유 업체였던 동국무역이 있었다. 이 회사를 중심으로 10여 개의 작은 기업체가 모여 동국 단지가 형성되었다. 이 동국단지에서는 공동으로 이용하는 것이 많았다. 단지 입구의 관리소, 새마을금고, 매점도 모두 하나씩만 두고 공동으로 이용했다. 10여 개의 기업체 직원들이 한 매점을 이용하다 보니 손님은 늘 끊이지 않았다.
당시에는 젊은 노동자들이 거의 타지역에서 친척들의 소개로 아름아름 왔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야간 학교 지원과 기숙사 제공이 기본 조건이었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배달 앱이 없어 자장면 배달이 유일했고,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사람도 흔치 않았다. 그러 다 보니 기숙사 거주자들은 당연히 이 매점을 이용하게 된다.
하루 매출이 어느 정도는 보장된다는 것을 알고 있던 너는 불현듯 우리 부모가 운영을 하면 어떨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너는 퇴근해서 집에 가자마자 네 아버지한테 우리도 입찰해 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청년 시절 떠돌아다니며 장사를 해 본 경험이 있었던 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당장 “해 보자.”라는 말을 했다.
회사 상사에게 너도 입찰한다고 알리고, 너는 난생처음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너와 절친하게 지내던 사감 선생님도 있었고, 다른 회사의 간부들도 있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이 소식을 익히 들은 사람들이 한 곳에서 공개 입찰을 시작했다. 입찰금은 한 달 낼 수 있는 임대료를 쓰고 최고가가 낙찰 되는 것이다.
어떤 일은 운명처럼 다가온다.
네 부모는 하루 12시간을 일하는 노동자였고, 다섯 식구가 겨우 무허가 집에 터전을 잡고 있었을 때다. 그래도 너는 평범함에 행복했고 더 큰 꿈을 이뤄야겠다는 야망조차 없었던 시절이다.
입찰 결과는 너의 승리였다. 너와 비슷한 금액을 쓴 사람과는 1,000원 차이였다.
그때부터 ‘얌전하다’, ‘착하다’, ‘성실하다’라는 너를 따라다니던 20년간의 수식어는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비난으로 바뀌었다. 이유는 “얌전하게 생겨서 장사란 장자도 모를 것 같은 애가 왜 갑자기 입찰에 참여했느냐”다.
그보다 더 큰 비난이 쏟아진 것은 회사에서 미리 입찰금을 알려줬거나 특혜가 있었으리라는 거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입찰자들이 얼마를 쓸 줄 누가 알고 회사에서 네가 얼마 쓰면 된다고 알려 주었을 것이며, 입찰금을 쓴 용지는 공개 석상에서 바로 열어 본 것이다.
네 주위에 많은 적이 생기기도 했지만, 부모님이 무엇보다 기뻐해서 뿌듯한 마음도 들었던 때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본 적 없는 네가 그때의 어색함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너는 일언반구도 없이 그냥 묵묵히 네가 하던 일을 계속했을 뿐이다. 인사를 해도 본체만체 지나치는 사감 선생님, 여기저기 들려오는 겉과 속이 다른 무서운 아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너는 참 담담했지. 아마도 너 자신이 부끄러운 일은 없었다는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속에서 너의 가족은 같은 삶 그리고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가족이 가장 치열한 삶을 보낸 시간이 아닌가 싶다. 네 엄마만 직장을 그만두고 매점에서 금전출납기 사용법을 배워 일을 도맡아 했다. 새벽에는 김밥을 말고, 어묵 국물을 우려내 새벽 6시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네 아버지는 아예 매점에 딸린 1평 남짓한 방에서 상주하며 출근 전까지 매점 안팎 청소를 다 하고 물건 진열까지 마친 후 출근을 했고, 퇴근은 늘 매점으로 해서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
네 엄마 외에는 그 누구도 원래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남는 시간에 매점 일을 도왔다.
네 가족 모두 참 치열한 시간이었지만, 가장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다.
다시 데일 카네기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부당한 비판이란 종종 변형된 칭찬이라는 점을 기억하라. 그것은 대개 여러분이 부러움과 질시를 불러일으켰음을 의미한다. 죽은 개는 아무도 걷어차지 않는 법이다.”
“가슴으로 옳다고 믿는 것을 하는 것”
그것이 가장 후회하지 않고 사는 법이라는 걸 너는 그때부터 배웠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