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ebobusang
Apr 28. 2024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류시화 시인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 나오는 이 구절은 네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가난한 종갓집 장손으로 아버지도 없이 태어나 홀어머니와 험한 세상을 살아내야 해서일까? 네 아버지는 지독하리만치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다. 살가운 말 한마디가 어려운 사람이지만, 속정이 많아 주위에 따르는 사람도 많았다.
회사에 다닐 때는 시골에서 올라와 기숙사 생활을 하던 어린 근로자들이‘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자주 집에 놀러 왔다. 네 엄마도 “나한테 보다 홀로 나를 키운 어머니한테 잘해주면 좋겠다.”는 네 아버지 말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자식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네 아버지가 40대 때 무릎 관절염으로 관절에 물이 생겨 다리가 고무풍선처럼 퉁퉁 부풀어 올랐다. 그러면 관절에 생긴 물을 빼고 붕대로 다리를 칭칭 감고서 절룩거리면서도 하루 결근하는 날이 없었다.
의사가 술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하면 볶은 콩을 씹으며 그 자리에서 술과 담배를 끊었다. 몇십 년간 애주가 애연가로 살아왔으면서도 말이다. 안면 마비 현상의 하나인 구안와사가 왔을 때도 네 엄마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한의원을 오가며 당신 본인의 지독한 노력으로 완치했다.
그렇게 자신에게 철저했던 네 아버지였지만, 딸에게는 유달리 마음이 여렸다.
너는 방학이 되면 으레 외갓집에 갔는데 딸이 눈에 밟혀 안 되겠다는 아버지 손을 잡고 이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야 했다. 너는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네 아버지를 따라 도시로 옷을 사러 다녔다. 집 근처 작은 시골장에서는 당신의 딸이 입을 만한 옷이 없다는 이유다.
어느 비 오는 날, 딸이 잊고 온 숙제장을 들고 비에 흠뻑 젖어 교실 문 앞에 서 있었던 사람도 네 아버지였다. 실직을 한 날조차 당신의 딸이 즐겨 먹던 과자 봉지를 손에 쥐고 터덜터덜 집으로 오셨던 분이다.
형제라고는 사촌밖에 없는 네 아버지는 가족 의식이 뼛속까지 박혀 있는 사람이다. 요즘처럼 험한 세상에 가족만이 서로 힘이 되어줄 수 있다고 믿는 분이다. 그래서 삼 형제가 커서도 흩어지지 말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너는 중학교 시절 자주 밤샘하며 공부했지만, 성적은 상위권에 들지 못했다. 그때 네 아버지는 네게 “너는 지금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으면 분명 바보가 됐을 거다.”라고 했다. 네 친구들은 아버지가 돼서 어린 자식에게 할 소리가 아니라고 아우성쳤다. 하지만, 이 말은 네 인생의 좌우명이 되어 꾸준함을 무기로 끝까지 해내는 끈기를 배웠다.
너의 형제 그 누구도 말하지 않지만, 너희는 안다.
네 아버지는 지금도 네 가족 뒤에 버티고 서 있는 산 같은 존재라는 걸.
네가 삶이 힘겨울 때면 허공 중에 나직이 불러 보는 그 이름, “아버지.”
네 아버지는 평생, 이 험한 세상이 아닌 당신 자신의 날개를 믿으며 굴복하지 않고 살아왔다.
"네 삶이 때로는 힘겨울지라도 두려워 말고 세상으로 나아가거라. 너 혼자 가는 길은 없다. 네 아버지가 늘 너와 함께 걷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