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내일이다. 23년도가 한 달 남았고 24년도도 한 달 후다. 영하의 날씨, 새벽에 알람이 생각보다 너무 일찍 울리는가 싶었더니 지진 났다고 재난문자가 오더라. 비몽사몽 몸을 뒤적이며 다시 신나게 잠을 자버렸는데 무탈 없이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모임이 점점 덩치가 커져만 가는데 인간 누구누구는 여전히 집콕방콕 최적화된 모습으로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일어나 보니 배는 허기지고 그래서 아점을 챙겨 먹으니 공동체사업 연말정산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실수로 강사비를 다른 세목으로 설정하는 바람에 수정해야 했고 어찌저찌 넘기려고 하다가 모두를 위한 워라밸로 업무가 마감되어 사이트 접속도 닫혔다. 얼마 전에 결혼한 그 형이 내게 감동이라고 하더니 감동은 감동이고 날 배 아프게 하는 신혼여행을 갈 예정이다. 칸쿤인가? 어디라던데 찾아보니 멕시코에 있었다.
이처럼 오늘도 무탈 없이 지내고 있다. 어제의 걱정이 오늘의 늦잠이 되고 오늘의 편안함이 내일의 충격이 될 롤러코스터 속 삶 속에서 누군가는 나의 일상에 대해 평가를 내리게 되면 무탈함에 대해 부러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내가 부정적인 사건들이나 안 좋은 감정이 휘몰아치면 지나가는 표정 밝은 사람의 모습을 보면 부러웠고, 커플을 보노라면 배가 아파 급히 약국에 들어가고 싶었다(?).
행복이 비교할 수도 있는 그 무언가도 되어서 나보다 못한 상대를 보고 안도감 혹은 우월감을 느끼는 게 사람이다. 누군가는 이런 행복이 거짓행복이라 하지만, 그런 감정이 자연스레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 역시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행복감일지도 모른다. 난민이나 하루 한 끼도 못 먹는 저개발국 사람들의 모습을 빗대어 우리는 큰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듯이, 거짓행복이라 말할 수 있는 점이라도 우리는 감사함을 견지해야 하지 않나 싶다.
감사함이나 겸손함이 그다지 쉽게 와닿지 않는 감정이다. 의도적으로 하려 하면 뭔가 안 맞고 어쩌다 보니 가지는 감정 같은데 가끔 행복에 대한 기준을 낮춰야 행복해진다는 말처럼 나는 개인적으로 불편한 옷과 신발일지라도 일부러 그러려고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싶다. 뭐 그러다가 이내 질려버려 영 딴 길로 새어버리면 할 말은 없지만 감사일기라도 쓰는 요즘 사람들처럼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
좋은 일 혹은 소소하게 안정적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기분이 만족스럽고 스트레스받거나 자책하거나 열받는 일이 없을 경우 감사함을 느끼려고 한다. 아니 감사함보다는 만족감에 더 가까울 수 있는 감정이겠지만 이번 연도 들어와서 체감한 것 중 하나가 만족이나 감사함을 알다 보면 저절로 고개도 숙여질 줄 아는 것 같다. 즉 겸손함이든 기본적인 소양도 이런 만족감에 따른 여유로움에서 할애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게 된다.
예전에도 썼지만 형식적인 것 인위적인 것에 대한 시선을 잠시 내려놓고 그거라도 하는 게 어디냐라는 생각을 접근하다 보면 일단 숙제를 마감한 그 타이밍에 일어나는 감정인 "개운함"은 기본적으로 들 수 있다. 다들 계획 세워봐서 아시듯이 하루에 과업을 끝내다 보면 그 개운함 혹은 다행스럽게 마감함을 당연하게 혹은 일시적으로 겪고나서 그 이상의 진전을 바라는데 나도 그 길목에서 맨날 막혀 답답했던 것 같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선순환과 악순환. 될 놈은 되고 안될 놈은 안된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 하면 만족감을 얻고자 먼 길을 돌아왔던 나에게 묻는다면 "그게 어디야"라는 이번 연도에 생긴 좌우명인데 한마디로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점이다.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차속에서 부모님께 해드렸더니 매우 인상 깊어하시면서 "우리는 평생 나이 먹고 이제야 조금씩 알려고 하는데 너는 엄청 빨리 알아챈 것 같다"라는 극찬을 해주셨다.
내 일기장에 자주 쓰는 문장 중 하나가 있다. "사소하지만 단 1분이라도 안 하는 것들. 작은 것조차 못하면서 무슨 큰 것을 하려고 하냐" 마찬가지다.
12월에 내 좌우명에 대해 못을 박고 24년도를 시작할 것이다. "그게 어디야" 란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