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228

by 포텐조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이백이십 팔 번째



충청뉴스 기사 이미지 [충남도 농업기술원 “복숭아나무 겨울 전정 주의할 것] 2023.12.21


멤버들과 밥을 먹고 헤어진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복숭아나무가 보였다. 복숭아나무의 가지들이 나무 중앙에 세워진 기둥에서 나온 와이어에 묶여 처지지 않게 온전하게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처진 나뭇가지는 복숭아 열매를 뭉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에서 아래로 뻗은 우산 같은 모습으로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의 모습이 마치 누군가 이야기하는 낙수효과를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 봤다.




매달릴 나뭇가지가 있기에 기둥이 있고 와이어의 존재의의가 있다는 것을. 바텀업이나 탑다운식의 문제 해결방법이 있듯이 위와 아래는 연결되어 있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객체라는 것으로 분리하는 순간 고통이 시작된다는 말이 있듯이 위가 있기에 아래가 있고 아래가 있기에 위가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잘났다고 이야기를 한다. 물론 나도 그렇다 입이 간질간질해서 말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전해지려고 하면 그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감사함을 모른다. 들어주면 자기가 더 잘난 줄 아는 경우가 있다. 흔히 그런 실수들을 저지르면서 나중에 왜 아무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느냐는 한탄은 오만한 것이다. 들어주는 것은 그것 자체로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리고 힘들다. 상담사를 치료해 줄 상담사도 필요하다.


듣는 자의 역할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면 말하는 자의 발언은 아무 효력이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들을 귀가 있어야 배울 점이 생긴다. 말하는 자의 발언을 나댄다고라며 침묵이 마치 모든 것을 대변하고 해결해 주는 것처럼 군다면 아무런 발전 또한 없다. 겸손하지 않는 자의 길은 가다가 부러지는 것 밖에 없다. 유연하지 못하면 결대로 잘려나가듯이 자기의 입장을 내려놓고 말하는 자에게 배울 점도 찾아야 하는 것 같다.




가끔 상담사들이 처한 환경에 대해서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이리치이고 저리 치이는 샌드위치 같은 느낌이 든다. 내담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또 이도저도 아닌 보건복지 제도의 틀 안에서 자기 권리를 내세우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하지 못한 채 또 다른 감정을 낭비하고 있고 탈진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상담사가 단순히 듣는 자로써 그냥 돈을 가져간다는 생각을 가진 편견은 단 몇 분이라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철저히 감정이입을 한다면 생각은 달라질 것이다.


"돈을 왜 내냐? 그런 소리 들으라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에 대해 상담사로서의 입장과 한 개인의 입장으로서 분리해서 본다면 이 발언은 문제가 있다.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는 것은 어디까지나 고객에게 서비스 범주 내에서의 감정이입을 이야기하지, 한 개인으로서 혹은 같은 인간으로서 받아주는 것은 내담자의 문제뿐만 아니라 상담자의 사생활에 개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하루종일 들으면 지루해지고 더 이상 헤드셋을 벗어던지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상담현장에서는 싫은 소리를 하루종일 아니 어쩌면 계속 들어야 한다. 그리고 내담자를 위해 묵묵히 견뎌내야 한다.


그래서 상담자와 내담자는 상호 협력적 관계라는 말은 정확하다. 아무리 나중에 상담사가 이야기 한 대로 자기가 얻고자 하는 바를 실천하지 않고 마법처럼 이루지 못했다고 탓하는 것은 내담자의 책임이 클 것이고 허울뿐인 상담으로 문제해결에 앞장서지 못하는 것은 상담자의 책임이 크다. 현실에서 그런 책임론을 말하는 것은 추상적일 수 있다. 하지만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고 아래가 있으면 위가 있듯이 한쪽이 무너지는 순간 다른 한쪽도 무너지는 복숭아나무는 안 봐도 비디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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