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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May 22. 2024

제2의 라벨링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280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이백 팔십 번째




마트에 가서 카트를 뽑는다. 도난 방지대를 넘어 들어가면 천장이나 벽에, 어떤 품목들이 놓여있는지 알려주는 표지판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라면, 과자, 음료 등등. 아마 급하게 장 보러 온 사람은 표지판에 보여있는 단어를 보고, 사야 될 품목의 구역으로 돌진할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물건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야 할 것 만 사고 빨리 돌아가야 할 테니까.




평상시에 가장 신경을 쓰지 않거나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것이 이름이다. 이미 스쳐 지나가듯이 바라보며 이름 자체에 대해 어떤 감정 혹은 생각이 들지 않고 부른다. 가리키거나 떠오를 때 혹은 부를 때 모두.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 그리고 물건의 이름을 부르는 것 등등 일상에서 365일 사용하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이름이라는 것에 평가와 판단의 기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마케팅에선 라벨링이라고 부르고 사회학에선 낙인찍기라고 부르는 그것, 그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부르는 사람이 어떻게 지각하고 있는지, 또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관건이다. 흔해 빠진 이름에 식상함을 느끼며 일반적으로 사람 혹은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에는 어떠한 평가나 가치가 들어있지 않겠지만 이름을 넘어 제2의 이름이라고 부를만한 단어의 의미에서 평가를 체감하기 쉽다.


"철수는 저런 사람이야", "영희는 어떤 사람이야"에서부터 "저 물건은 어떤 물건이다, " "저런 생각은 저런 뜻을 가지고 있다"까지 단어에서 주는 의미의 확장은 해석의 중요성을 가르쳐주고 있다. 단어와 언어의 해석은 민감한 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 자체도 "민감한"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름때문에 어떤 가치판단을 내린다고 해서 그 단어 자체에 대해 조심하며, 다시 재고하고 아예 언어를 순화하자라는 1984적인 마인드는 차라리 이런 이야기를 안 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해 어떤 라벨링을 하고 있는지 묻노라면 스스로 생각지 못했던 단어나 문장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의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동안 너무너무 무뎌져 이제는 아예 없는 것과 같은 정의들이 어느새 머리에 깊이 박혀 있다.


그것을 편견이라 할 수도 있으며 신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은 무뎌져 너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정의에 대해 그것을 사실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살았으니 당연하거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아무렇지도 않은데 들쑤신다 생각하는 경우가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불편하긴 한데 너무 당연해서 걸림돌인데도 불구하고 걸림돌인지 조차 모르는 경우 들쑤셔서 가끔은 들춰낼 필요도 있다.


과거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착각하고 있는 수많은 당연한 생각과 정의들에 대해 어떻게 꼬리표를 붙이고 있는가? 한정된 지갑사정으로 필요한 것만 사야 되는 경우 다른 건 살펴보지 않고 그쪽 품목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처럼, 어느새 내려버린 정의에 대해 또 다른 것은 보지 않고 그렇게 지내왔더라면 다시 분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생각한다. 지금 보면 말도 안 된 생각들이 과거의 물결에 휩쓸려 가버렸지만 그때 당시에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라면" 3번 코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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