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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May 23. 2024

과학과 종교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281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이백 팔십 일 번째




요즘 식당에 가면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음식을 배달해주는 로봇이 보인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수준인 챗 GPT도 일상화되어있다. 어제 독서회를 하면서 과학과 종교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가끔 인터넷에도 AI나 양자물리 같은 최첨단 과학 때문에 종교는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이야기를 나누는 현장에서도 과학의 눈부신 발전은 종교의 몰락을 예고하는 듯 보였다.




그로부터 대략 300년이 지났다. 신은 몰락하고 인간의 이성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계몽주의가 유럽전역에 확산했던 18세기에도 그랬다. 프랑스혁명 때나 미국독립 때 기독교의 신을 부정하며 새로운 신을 믿어 보이는 건국의 아버지들이나 혁명가들이 앞장서 파격적인 주장을 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때랑 지금이랑 별반 다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종교라는 현상에 과학이 온전히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에도 회의적이다.


오히려 과학이 종교화가 될 가능성이 훨씬 현실적으로 보인다. 이미 SF장르에서 우주의 초월적 존재들이나 인간의 지능을 너머 만들어진 초인공지능을 섬기거나 따르는 창작설정이 많이 보인다.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이 외치듯 혹은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주장했지만 그들의 주장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만약 포괄적인 개념이 아닌 기성종교의 몰락을 예고한다면 그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종교라는 현상은 인간이 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원시시대 때부터 인간은 믿기 위해 살아왔고 살기 위해 믿어왔다. 혹자는 믿는 행위 혹은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정신이 나약한 행위라고 평가하지만 도리어 종교를 가진 자들이 말도 안 되는 행위를 저지르거나 누가 뭐라 해도 주관적 행복감이 높다는 연구결과는 이를 반박하기에 딱 좋은 결과이기도 하다. 분류화하기 쉽게 종교라는 개념을 딱 떼어놓고 보고자 한다면 믿음으로 대표될만한 일련의 현상들이 굉장히 맹목적이고 과학의 관점으로 우스워 보이지만 이미 인간 자체는 믿음의 동물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종교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자는 것이 아닌 현상 그 자체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 무신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강력히 의견을 피력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신이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증명 불가능한 신의 존재를 증명 가능한 현시대의 과학의 결과물로 하나하나 철저히 논박하고 있는 그들은 신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개인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신론자들이 기성종교랑 싸우는 건지 종교 자체와 싸우는 건지도 결이 조금 다르긴 한데 그렇지만 이미 역사에선 종교를 부정하고자 하는 수많은 선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프랑스가 그래왔고, 중국이 그래왔고 러시아도 그랬었다. 믿음의 공백은 재빨리 다른 무언가를 믿으려고 하는 인간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종교를 탄압한 소련은 모두가 능력만큼 일하고 고루고루 잘 사는 세상을 믿었다. 그리고 그들의 지도자를 믿었다.


지금도 다를 바 없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이론이 맞길 희망하며 연구에 전념한다. 이 또한 믿음이 필요한 행위다. 현재에 주어져 있는 상황으로 발명이나 아이디어 혹은 동떨어져 보이는 순수 자연과학에서도 어떤 이론에 대해 맞다고 여기는 모든 일련의 사고방식은 결국 믿음의 범주에 속한다. 내가 성공하리라는 것을 믿는다, 우린 당신의 신용도가 이만큼 있음을 알기에 대출을 허락한다는 등 어쩌면 인간 만사가 믿음의 범주에 다 들어있다고 생각해 본다. 과거 사람들이 골고다에 있던 십자가를 마음에 품듯, 현대인들은 각자만의 신들을 모시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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