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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

대학원생의 성장일기 30

by 포텐조

벽돌 시리즈 삼십 번째

나는 사상이나 종교적 교리, 철학 등을 흥미 있어해서 그걸 찾아 읽어보는 것이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개신교인이지만 불교철학을 좋아하고, 심리학의 계보를 올라가면 결국엔 인간의 생각을 다루는 철학까지 올라가니 무관하지 않다. 여하튼 성경 스토리 중 예수는 자기가 붙잡혀 가기 전에 제자들과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베드로에게는 자기가 잡혀 끌려갈 때, 사람들에게 예수를 따른 것을 부정할 것임을 세 번이나 반복할 것이라 예언한다. 하지만 베드로는 결코 아니라며 그 당시는 신앙심 대폭발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가 유다의 배신으로 재판장으로 끌려갈 사람들 사이에서 베드로는 결국 예언처럼 "나는 그를 모른다"며 세 번 부정한다.

문득 이 이야기가 삶의 문제에도 적용되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심리치료 중의 주 기법 중 하나인 것이 바로 공포의 대상, 기피했던 대상을 점점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작업인 점진적 둔감화 기법이 있다. 거미를 무서워하는 내담자에게 처음에는 거미 그림에서 시작해서 거미 사진, 거미 장난감등으로 발전해서 점차적으로 그 실체에 다가가 직접적으로 마주시키며 극복시키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홍수법이라고 아예 처음부터 대상이 사방팔방 있는 방이나 장소에 노출시켜 대상자가 편견을 가지거나 침소봉대하던 것을 이번 경험으로 극복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둘 중의 뭐가 됐든 여하튼 키워드는 "직면"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내담자들은 심리적 문제나 현 상황의 어려움을 거부하거나 외면하려 한다. 그렇게 될 경우 일시적으론 마음이 편하거나 괜찮을지 모르나 결국엔 일은 더 커지고 해결되지가 않는다.


문제해결을 위해선 아무리 힘들더라도 작금의 현 상황을 바라봐야 조금씩이라도 나아가지, 계속 다른 곳 방황만 하면 스스로 부담감과 정신건강에만 무리가 갈 뿐이다. 나도 우울증을 앓고 있을 때 스스로 활동을 안 했던 것은 결국엔 시간만 날린 셈이고, 시간만 길어지니 괜히 협소한 내 생각만 확증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계속 우울했고 무기력했다. 직면하는 것은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뒤에야 먹힐 순 있다. 하지만 어느 때까지고 미루고 외면한다면 해결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부딪히고 깨지고 겪어봐야 아는 걸 심리학에서도 말하고 있다. 책상에서 아무리 머리 굴려봤자 해결되는 것은 없다.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 굳이 온몸으로 맞을 필욘 없다. 몸 안에 에어백 가득 넣고 거미그림 보듯이 조금씩 직면할 수 있다면 최고의 시나리오다. 용기라는 개념을 상상하면 군인이 돌격하는 장면, 누군가 대중들 사이에서 직접 나서서 하는 것이 떠오르지만, 용기도 별거 없다.


개개인이 지금까지 생각해오지 못했던 불편한 점에 대해 직면하는 것만으로도 용기인 것이다. 케네디인가 누가 말했듯 "두려움이 있음에도 나아가는 것이 용기"라고 하듯. 직면하는 작업은 완벽한 타이밍이나 최상의 조건이 갖춰진 상태에서 시작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상담장면에서 애초에 문제를 가지고 제삼자에게 찾아와 도움을 구한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용기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나의 아픔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용기다. 본인의 심리상태가 많이 어렵다면 뭔가 포기하지 않으려는 나만의 고집이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다루자니 불편한 것이고 직면하기가 싫은 것이다. 그리고 고집을 다루게 되면 괜스레 내가 틀렸을까 봐, 내가 안 좋은 사람이 될까 봐 그러는데 그런 고집이 과연 스스로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붙잡을 필요도 없고 저번글에서처럼 사람은 하루에도 수천 가지 생각을 하는 동물이다. 정말 반대되는 생각도 하거나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생각을 해보며 스스로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게 정상인 것이다. 목적에 부합한 고집이 있다면 상관없겠지만은 대부분의 고집은 외면으로 다져진 고통에 불과하다.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경의 맥락상 불완전한 12 사도들 중 그런 행보를 보이고 죽었다면 아마 베드로는 지금의 자리보다 좀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순교자가 됐을 것이고 압도적인 12 사도 중의 완벽한 예수의 제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뭐 상상하면 뭔들 못하랴 하지만.


직면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결국 예수가 부활 후 나중에서야 베드로는 다시 사도로써 정신을 차리지만, 베드로는 앞서 예수를 인정하자 천국열쇠를 받았다. 어쩌면 우리는 대부분의 문제를 부인하지 않고 받아들이려 한다면 천국은 아니지만 적어도 극복열쇠는 스스로에게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 현재 30개까지 작성해서 브런치북으로 한번 엮었습니다. 각각 글의 주제가 뭔가 다를 순 있겠지만 일상의 생각과 극복의 시점으로 보자면 연결되어 있다 생각하기에 만들어 보았습니다. 100일 성장일기라 계속 쓸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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