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428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사백 이십 팔 번째
들어오는 데이터가 많아지면 비교하기가 굉장히 용이해진다.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거나 개선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단순 비교를 넘어 생각보다 사람의 모든 영역에 걸쳐 존재하는 비교는 항상 우리 눈 앞에 어른거린다. 비교를 하면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비교를 통해 고통받는 경우가 상당수라 비교를 하고 싶지 않아도 어느새 계속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오죽하면 석가모니는 나와 상대방을 분별하는 순간 고통이 시작된다고 말을 했겠나? 즉 나와 타인이 다른 존재라고 인식하면 그때부터 비교를 통해 온갖 감정이 야기되는 것을 느낀다. 질투와 증오 그리고 복수, 열등감까지 다양한 감정에 사로잡혀 일을 크게 그르치는 경우도 있거나 스스로를 갉아먹는 경우가 생긴다. 처음에는 분별이 고통을 야기한다는 뜻이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눈곱만큼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이 이런 비교와의 전쟁에서 시달리고 있다. "누구는 어디 붙었다더라"의 흔한 클리셰부터 "이 제품보다 저 제품이 좋은 것 같아"라는 마음속 독백까지 여러 군데에서 비교를 당하고 비교를 하는 나 자신을 마주한다. 경쟁을 통한 성장이라는 미명아래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적극적으로 비교를 촉진하고 소비자의 선택에 좋든 나쁘든 폭을 넓게 하는 장단점을 마련하고 있다.
비교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비교를 통해 우리는 성장한다. 비교를 통해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알고 보니 이 제품이 다른 제품보다 질이 떨어진 것이라면 그건 어떤 또 다른 기준이 나타나서 우리의 지각을 확장시킨 결과일 것이다. 이렇듯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내가 어떤 정보를 알게 된다면 비교를 통해 다시 평가하고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비교의 예는 한도 끝도 없지만 내 생각에는 비교에서 자유로울 순 없으니 비교를 해도 유익한 방향으로 비교를 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과의 비교는 멈출 수 없다. 내가 어떤 이의 능력이나 기준치를 넘어섰다 하면 대단한 우월감에 빠질 수는 있겠으나 세상에는 그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층층마다 쌓여있고 널려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비교는 결코 멈출 수가 없다.
비교의 타깃을 나로 한정 짓고자 한다면 보다 이롭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교과서적인 멘트겠지만 과거의 나와 비교하는 것이 가장 이롭다는 생각. 생각보다 과거의 나는 잘 짚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짚는다고 해도 그 과거의 나란 실수투성이 혹은 결점만 가득 보이는 나 자신을 반추하는 경우만 많다. 과거의 나와 비교해 본다면 그때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떤 활동 혹은 어떤 능력을 발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나를 비교의 대상으로 놓는다면 보다 건강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과거의 나보다 뒤떨어진 현재를 인식하면 이 역시 비교의 역기능에 빠질 수는 있겠다. 이 또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며 다소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거나 타인과의 비교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애매모호한 비교 맞짱(?)을 뜨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과거를 통해 배우고 과거로부터 경험이 쌓였다면 그것부터가 이미 현재에서 내가 보다 성장했음을 느끼는 포인트를 하나 얻고 가는 것이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