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427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사백 이십 칠 번째
막걸리에 파전이 아니라 창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비가 정말 무지하게 많이 쏟아지고 있다. 10월에도 계속되는 애매모호한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주는 것 같았다. 까-피를 타먹는다. 나는 365일 아이스파라서 지금은 얼음을 넣지 않았지만 찬물로 커피 믹스를 타먹는다. 정신이 반짝 든 채 멍 때려본다. 금요일 밤의 기분 좋은 성찰은 언제나 맘에 든다. 왜냐? 오늘은 일요일이 아니거든요?
한 가지 생각이 반짝 뜨였다. 자. 인문학하면 뭐가 떠오르냐 묻는다면 다들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인문학? 그거 철학 아님?", "국어국문학과? 소설?"이라 대답하기 쉬울 것이다. 대표적인 인식 중 하나가 인문학의 대표주자라고 할 만한 것이 철학인데 주변 사람들의 말 만 들어도 철학은 굶어 죽기 딱 좋은 학과라는 이미지가 아주 팩트처럼 새겨져 있는 것 같다. 안타깝지만 철학으로 지금 당장 가시적인 것과 결과를 중시하는 직업환경 특성상 학과에서 커리어로 직결되는 문제에서 쉽지 않은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우연히 철학에 대한 비판을 읽어보면서 상당 부분 와닿은 점이 있었다. 그 비판점은 바로 철학의 "전문화". 모든 학문이 각자 만의 자부심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가장 앞장서고 있다 여길 수 있겠지만은 인문학이 마치 도태되어 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철학의 심화 혹은 철학의 상향 평준화에 따른 폐쇄성에 기인하다는 생각에 맞장구를 쳤다. 분명 누군가는 배울 생각들을 안 하는데 무슨 말이야 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철학이라 하면 단편적인 지식으로 최대한도로 끌어본다 한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이라던지 하버마스 등 한참 학생 때 겉핡기로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20세기의 철학이라서 나로 돌아보건대 데탕트(냉전완화시기) 1980년대에서 소련 붕괴기까지의 정치, 사회적 철학까지만 머릿속에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럼 20세기 후반부와 21세기의 최신의 뜨끈뜨끈한 철학들은 어데로 갔나? 하고 묻는다면 상당히 난이도가 올라가게 되어 언급하기가 어려워진다. 논리철학이나 언어철학, 과학철학 등등 여러 방면으로 작은 이론들로 나뉘어 목적에 따라 심화하고 전문화되고 있다. 그래서 최근의 철학을 펼쳐본다 하면 갑자기 GPT를 돌려야 할 것 같은 수식 문제나 통계에서만 잠깐 보던 것 같은 아찔한 방정식 같은 것들이 쏟아진다(아 현기증 나려 그래).
좋게 말하면 철학이 굉장히 디테일 해지고 인류 사회에 기여하고자 정밀해지고 있다 볼 수 있지만 앞서 말했듯 너무 전문화되다 보니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전에 만났던 철학과 학생이 말했듯 "뭐가 뭔지 모르겠다"라는 말이 겸손의 뜻에서 말하는 게 아니라 진짜 몰라서 그런 거다라는 것에 동의한다. 자기들만의 리그로 심화 문제에서 더더욱 알 수 없는 심화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전교꼴등인 내가 대치동 수능반에 들어간 느낌이랄까?
인문학 혹은 사회과학 같은 경우 말 그대로 사람과 관련된 모든 현상과 개념들을 연구하고 설명하고 응용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철학이 배부른 사람들이 현실성 없이 떠드는 이야기라고 오해하기 쉽겠지만 철학만큼 실용적인 학문은 또 없다. 하지만 오히려 철학이 대중들이 느끼기에 대단히 어려워진 점은 철학의 전문화 그리고 알게 모르게 심화되다 보니(한국은 특히 철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다 보니 더더욱) 대중과의 교류가 끊어져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많은 양질의 인문학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고 가끔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콘텐츠들도 보이지만 현대철학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은 것은 여전하다. 철알못인 내가 겉핥기로만 알고 있어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인문학 전반의 대중의 관심은 당연히 필요하며, 마냥 내버려두고 왜 철학을 싫어하냐라고 하소연하는 소리를 하는 것도 학계에서 어느 정도 태도의 자정능력이 필요해 보인다는 개인적인 뇌피셜이 들었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