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509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오백 구번째
운명을 믿는 사람도 있고 안 믿는 사람도 있다. 또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오늘 모임에서도 운명과 관련된 주제가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어봤다. 사주팔자,타로, 관상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생각보다 사주팔자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느끼고 또 예전에는 그게 과학이라고 까지 말했던 사람도 있어 세상이 참 다양하다고 느껴졌다.
내가 여기에 대고 하고 싶은 말을 공자가 명확하게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귀신"그리고 "죽음"에 대해 물었더니 공자가 말하길 "사람도 못 대하면서 무슨 귀신을 대하려하는가?" 그리고 "삶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죽음은 어찌 알겠는가?". 오늘날 자로같이 운명과 미지의 영역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스승인 공자는 마치 자로에게 정신차리란 이야기로 교훈을 주는 것 같았다.
현재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나 직시하라". 오늘 말했던 운명도 마찬가지인 느낌이였다. 백날 내 운명, 니 운명이 어떻고 앞으로 대운 어쩌고저쩌고 이야기해봤자 손만 쪽쪽 빨고 있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설령 그것을 명확히 안다 해도 그것은 나의 통제불가능한 변수에 불과하다. 어쩌면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다. 답답한 마음이 이해가 가고 팍팍한 세상에 사주팔자가 요즘들어 인기가 많아지고 있다지만 내게 공자가 했던 말만큼 시원한게 없다.
한마디로 "있는 거나 잘해라". 심지어 조선시대는 숭유억불이라 해서 괴력난신인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아, 명목상 배척했던 불교. 불교의 석가모니조차도 사람이 죽어가는 데 독화살을 뽑을 일이지 "화살 촉이 어떻고 모양이 어떻고 따질 문제냐"라는 식으로 교훈을 남긴 바 있다.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면 일만 더 커지고 해결은 되지 않는다. 직시하지 않고 다른 것에만 기웃거리면 결코 풀리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운명에 가까운 그 무언가란 통제 불가능한 여러 변수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무슨 신비로운 힘이 작동해서 짜라란! 하고 이끌고 온다해도 관심 없다. 그리고 애초에 통제 불가능하기 때문에 신경쓸 여력도 없다. 운명의 노예로 살지말고 운명의 주인으로 사는 자주적인 태도들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고 취미로만 여기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