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성장일기 60
벽돌시리즈 육십 번째
요 며칠 동안 컴퓨터와 프린터와 싸우고 있는 중이다. 컴퓨터는 렉이 걸려 게임을 도저히 못할 지경이고, 프린터는 잉크를 채우고 카트리지를 닦아내도 교체하란 메시지만 뜬다. 처음에는 성가시다. 그리고 점차 짜증이 나고 답답하다. 이제는 해탈이라 해야 할지 모를 감정이다. 나는 길치를 넘어 기계치이기도 하다. 비약하면 지극히 문과적인 학생이라 그런지 기계를 모르기도 하고 어렵고 신기하다.
처음엔 컴퓨터가 이상하면 본체를 손으로 탁탁 쳐본다. 갑자기 컴퓨터가 타악기가 되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요동친다. 기계는 말 안 들면 쳐보라는 이야기가 민간(?)에 널리 퍼져서인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북을 치듯 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과정이 모든 것이고 여기에 사활이 걸리듯 정성스레 본체를 친다. 이내 제정상으로 컴퓨터가 돌아오면 다행인 거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절망에 빠진 채 때린 위치가 잘못되었는지 위치를 교묘히 수정해 본다.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수리법이다.
전원을 껐다 켜보기도 하고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무수한 선들이 꽂힌 본체로 들어가 전원과 연결된 선을 뽑았다가 다시 꽂아보고 인터넷선도 다시 꽂아본다. 스피커랑 마우스 선까지 다시 뽑았다 다시 꽂아본다. 마치 그러면 너란 사람을 다시 되찾을 것처럼(?). 민간요법이 이내 실패로 끝나면 실망하지만, 다행히 나는 나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형이 있어 부르면 찾아와서 마법의 손으로 몇 번 본체를 만지면 본체는 부활의 체험을 한다. "오 어떻게 했어? 신기해!"
아무것도 모르는, 또 관심도 없는 이에게 문득 다른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쉬운 일도 미지의 영역이기에 정말 어렵고 혼란하다는 것을 컴퓨터를 통해 새삼 느껴본다.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본인에게 닥치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해결점을 찾는데 상당히 어렵거나 고통을 받는다. 성가시거나 이렇게 하면 당연히 될 것처럼 했다가 더 꼬이는 경우를 보면 열을 받다가 얼마 되지 않은 과거의 정상적인 모습이었던 시간에 대해 추억한다. 문득 오승근 아저씨의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트로트 노래가 떠오른다.
누군가 조언을 해주면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게 말이 쉽지 그렇게 될지 않을 것만 같다. 그리고 누군가 개입해서 도와주면 고맙기도 하지만 너무나 쉽게 풀어나가는 모습에 내 모습이 처량하거나 허탈하다. 남들 앞이면 창피하기도 하다. 솔직히 사람은 모든 것을 알 수도 없고 완벽한, 완전한 존재도 아니기에 본인이 살아온 역사 속에 장단점, 아는 것과 무지한 것이 다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득 닥쳐오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본인 역량을 넘은 어려움도 있을 수밖에 없다.
서비스센터에서 수리를 맡기든,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처럼 사람은 기꺼이 도움을 청해야 한다. 만일 손길이 필요할 정도로 간절하지 않다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데 이 또한 하기 싫거나 어려움을 간직하는데 익숙해있다면 사실 본인은 손을 놓아버리고 외부는 철저히 차단하고 있으니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본다.
컴퓨터 본체처럼 수많은 회로와 선들이 꼬인 기계를 보노라면 본체를 씌워놓은 철판떼기를 두드리며 나아지길 바라는 나는 그 복잡한 기계를 어설프게 만지다간 새로 사야 할 수도 있는 컴퓨터 그리고 터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 조언을 구하거나 본인이 해결법을 탐구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무엇이든 본인으로부터 액션이 나와야 꼬인 것을 풀어나간다. 근데 오묘한 것이 뭔가 조언을 구한다는 것이 내가 약해 보인다거나 누군가 내 삶에 개입되는 것을 귀찮거나 내지는 독립성을 침해받는다는 느낌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옹고집을 부리고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데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보면 도무지 답이 나오질 않는 것이다.
나를 보니 그런 것 같다. 괜히 쓸데없이 똥고집 부리며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데 지는 정작 아무것도 안 하고 도와준다고 하면 "제멋대로 세팅한 생활"에 개입하길 싫어하는 나를 보면 누군가는 혀를 찰 수도 있을 거 같다. 자존심이 "자기만이 존재해야할 심보"가 아니다. 외유내강이란 말이 있듯이 때에 따라 독립심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외부적인 요소를 삶에 깊이 개입시키기도 하고 어쩔 때는 철저히 외부정보를 차단해서 자기 존재를 뚜렷이 하는 사람들은 융통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쓸데없는 자존심인 것 같다. 아무래도. 자존심을 세우려면 나의 장점에서 찾을 생각을 해야지. 널리고 널린 본인 단점이나 약한 부분에서 자존심을 세우려고 해 봤자 늪지에 세운 기둥처럼 철저히 가라앉거나 얼마 못 간다는 것을 깨달아본다. 이제 형한테 전화를...."여보세요? 컴퓨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