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나무, 나무의 숲

대학원생의 성장일기 59

by 포텐조

벽돌시리즈 오십 구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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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숲을 좋아한다. 숲 속에서 느끼는 달큼한 향기와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이 현실에서 겪었던 묵은 때들을 씻겨주는 것만 같아서 바다보다는 숲을 좋아한다. 숲을 보는 사람과 나무를 보는 사람을 비유로 들어 크게 혹은 작게, 현실과 미래를 판단하는 자기 특성을 설명하기도 하는데 나는 아무래도 숲을 보는 사람이 맞는 거 같다. 너무 크게 보기 때문에 놓치는 부분들 그리고 채워나가야 할 부분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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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이상주의자인 나는 현실이라는 말하는 일상과 현재를 무시했던 게 아닌가 싶다. 상상을 해본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큰 꿈을 그린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들을. 술에 취한 듯 꿈에 취한 채 나는 머릿속 시뮬레이션을 즐기고 있었으나 정작 몸은 침대 위에 누워서 잠만 자고 있었다. 가끔은 생각했다. 지금 내 또래 내동갑들이 저렇게 치열하게 사는 것을 마치 스페셜한 나는 월급 200짜리 너희와는 다르게 크게 성공할 거라는 괘씸하고 오만한 마인드를 부려보기도 했었다. 학교폭력을 당하던 학창 시절, 대학교 생활을 즐기지 못했던 나에게 그런 생각이 최소한 나를 지키고 나를 보살피는 뒤틀린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의도든 간에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은 하나 움직이지 않으니 되레 월급 200짜리라고 생각한 그들에게 밀리는 것 같았다. 지금은 다행히 생각이 바뀌었지만, 차라리 그런 생각이라도 하면서 움직였으면 뭐라도 거두었을까라는 느낌은 있다. 다만 뒤틀린 엘리트의식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일평생(?) 나를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 탐구하고 내가 왜 이런지 알아내고자 했던 것 같다.


오늘은 이상주의자의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일단 이상주의자들은 반대로 생각하는 현실주의자들의 패턴을 더 이상 무시하지도 외면하지도 말고 잘 받아먹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현실주의자들은 말 그대로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과 도구들에게 집중한다. 그래서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려거나 기준으로 삼고 나아간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단점은 이상주의자들이 쉽게 만드는 파격적인 경로나 삶의 목적을 생각 내지는 상상을 못 하거나 혹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혹은 자기 현 상황에 만족하며 평생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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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현실주의자들은 이상주의자들을 보며 철없는 인간, 뜬구름 잡는 망상쟁이들 같은 생각을 하며 무시하기도 한다. 반대로 이상주의자들도 현실주의자들을 평생 저러고만 사는 사람, 편협한 인간들이라며 이 역시 무시한다. 대인관계적인 측면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입장을 이야기해 본 것이고, 또 사람을 이분화하는 것은 위험한 판단이기에 그냥 재미 내지는 반진지한 생각으로 작성해 본다.


개인적 일상에서는 두 가지 모두 혼용이 되어 나타나지만 자기 자신을 생각하다 보면 어느 한쪽의 입장이 더 큰 것을 볼 수가 있다. 내가 스스로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래서 나 같은 이상주의자들에게는 현실주의자들이 행하는 것을 따라 할 필요가 있다. 큰 꿈은 가졌으나 접근할 줄 모른다면 그들처럼 행동해야 한다. 단순히 거시적이냐 미시적이냐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숲이냐 나무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 시점에서 상호보완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만 그런지는 몰라도 누군가는 달성하기 위한 접근 방법에 대해 우직하게 밀어붙이거나 혹은 그것에 집중할 생각을 해야지 되레 다른 것에 시간을 빼앗긴다면 에너지가 분산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건 어느 정도 이루고 나서 할 소리지. 처음이거나 얼마 안 간 입장에서 이런 생각을 가진다면 틀릴 수도 있다고 본다. 내가 우물을 비유로 쓴 "삽 좀 가져와바"처럼 목적은 있되 여러 방면에서 탐구하거나 발을 담가봐야 이게 내게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이상주의자인 나에게 내린 처방전은 수많은 장기목표들을 위해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하는 방법으로 그동안 불씨조차 내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이제 두 손으로 막대기를 비비며 불을 만들려고 하는 셈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해를 못 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글솜씨가 아직 미약해서 제대로 전달이 안된 것일 수도 있는데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본인 삶에서 목적하는 바를 달성하려면 집중도 중요하지만 다른 것을 바라볼 줄 아는 균형적 접근 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사는 도시 특성상 공무원들이 많고 멤버들도 공무원 혹은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보니 직업적 문제들과 현실의 장벽들을 격파하려고 애쓰지만 힘들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고 하나하나 삶에서 이루어낸 것을 보노라면 나에겐 위인이 따로 없다. 하지만 그들은 현재의 삶에 갇혀 너무 문제에만 몰두한 나머지 가능성을 망각하거나 가끔 내가 멤버 중 "이 사람이 더 큰 비전만 가지고 있었더라면 지금 이 자리보다 더 많은 월급과 능력을 뽐낼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가진다.


이상만 몰두하는 이에게는 현실적 접근방법을, 현실만 몰두하는 이에게는 좀 더 넓은 목표와 연관된 과업들을 생각한다면 풀리지 않았던 끈이 조금씩 풀려나간다는 것을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연도 들어와서 느끼고 있다.

넓게 본다는 것은 축복이요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것은 삶의 주인의식을 가진 자에게는 무엇이든 이루어낼 수 있는 야망을 부여하거나 창조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너무나 좋다. 현실주의자들 역시 세밀한 것, 지금 당장 보이는 것에 집중하는 것도 축복이다. 놓치고 있는 무언가를 알아채고 어떻게 나아갈지 파악하며 행동하는 것이 무언가를 달성하는 방법임을 체득하고 달려 나가기에 에너지가 넘치며 본인 삶에 닥쳐오는 문제들을 기꺼이 엎어치기 하는 사람들이다.


두 입장 모두 너무나 좋은 특성이고 어느 하나 가치를 따지기가 힘들다. 그렇기에 각자의 장단점이 있으므로 현재 자신의 상황을 비추어볼 때 집중해야 할지 아니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할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자! 이제 나는 다시 막대기 비비러 자리를 비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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