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를 기리며

대학원생의 성장일기 58

by 포텐조

벽돌시리즈 오십 팔 번째

앨버트 엘리스는 2007년에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2003년 미국 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는 엘리스를 20세기 칼 로저스에 이은 두번째로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로 선정했다. 뭐 연간 선정순위는 뒤바뀌기도 하고 다른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도 조사를 하겠지만 엘리스의 업적은 상담의 기초를 닦은 로저스와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나의 방에는 두 명의 어르신이 계신다(?). 저번에 서술했던 죽음의 수용소 저자인 빅터 프랭클과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 누군가는 우상숭배(?) 운운할 수 있고, 누군가는 존경하는 인물이나 영감을 주는 사진을 걸어놀수 있다는 다양한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마치 아이돌 사진을 벽면에 붙여놓듯 나는 어르신 두 명을 모시고 있다. 일상에서 거대한 내적파도가 두 번 휘몰아쳤는데 한 번은 프랭클이고 한 번은 엘리스였기에 이들처럼 되고 싶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있다.


프랭클에 대해선 죽음의 수용소 내용을 다루었으니, 이번에는 엘리스를 말해본다. 작가였다가 한때는 사업도 관심 있어했으나 대공황으로 쉽지 않은 상태이기에 글로써 성공하고자 했지만, 또 가족과 성에 대한 관심으로 본인 스스로 급진적인 자유주의자로써 글을 써나갔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관련 관심분야를 연구하다가 사람들에게 야매로 상담을 해주면서 스스로 아무래도 심리학과를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28살에 컬럼비아 대학원에 들어가 심리치료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원래는 민감한 문제이기도 한 성관련 상담을 하며, 당시에는 정신분석상담이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고 그다음은 보상과 처벌을 기반으로 한 행동주의 치료가 흥행하는 시기에 엘리스는 정신분석에 회의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자기가 그동안 읽었던 실용철학서들을 통해 심리치료를 만들었는데 이때 REBT(합리정서행동치료)가 탄생하게 되었다. 인지치료의 시작이라 불리는 이 치료법이 당시에는 세미나에서 혹은 다른 정신분석, 행동주의 학자와 연구자들에게 사이비취급을 받거나 비판을 감당해야 했는데 또 한 명의 거두인 인지치료 그 자체인 아론벡이라는 정신과의사가 등장하면서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각자의 심리치료법을 개발해 나갔다.


그래서 REBT나 CBT(인지행동치료)는 결국 정신분석에 회의를 느꼈던 상담사와 의사에 의해 탄생하게 되었다. 상담하면 소파에 누워 최면에 걸린 내담자의 스토리에 집중하며 풀어나가거나 들어주던 상담에서 벗어나 혹은 교육적인 방식이나 현재의 문제나 보여지는 행동으로 진단하고 해결해 주는 행동주의 상담을 절충하여 내담자의 생각과 신념을 공략하여 치료해 나가는 목적을 지닌 "인지"를 중점으로 하는 치료가 발전하게 되었다. 인지치료는 오늘날 가장 연구가 활발하며 가장 공신력 있는 심리치료로 거듭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엘리스에 대한 소개이고 사실 엘리스 스토리 중 가장 인상이 깊었던 브롱크스 식물원 연습을 말하고 싶었다. 바야흐로 19살 대학교 1학년때 뉴욕 브롱크스 식물원에서 엘리스는 100여 명의 여자에게 말을 걸거나 데이트 신청을 하는 또라이(?)가 되어 본인이 그동안 수줍음이 많고 여자를 무서워하고 부끄러워하던 과거를 이겨내고자 도전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거부하고 데이트 신청을 받아준 극소수의 여자들도 결국 당일날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은 참담한 결과물이 나왔지만 엘리스는 이때의 경험으로 수줍음과 부끄러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가장 중요한 건 그때의 경험으로 "숱한 거부로 아쉽게 되었지만 결국 세상이 무너지지 않고 나는 형편없는 사람도 아니고 무엇보다 이는 하나의 사건이라 생각하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는 것을 그는 말한다.


나는 이 글을 접했을 때 나도 도전한다라는 픽업아티스트적인 마인드가 아니었다. 엘리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가 나중에 주장하는 수치심 공격연습의 기반이 되었다. 그때 당시의 거절을 본인의 생각으로 컨트롤해서 거절이 곧 실패요 본인은 실패자라는 과대해석을 하나의 사건으로만 생각하는 극복 경험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엘리스를 보고 그동안 나에 대한 생각을, 그리고 하루에 수십 가지 하는 생각들을 그냥 설정되어 있으며 바꾸지 못하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느꼈는데 생각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게 된 교훈이었다.


결국 내가 심리학을 들어오게 된 원인이자 이유는 REBT와 CBT를 공부하고 싶고 철학이나 생각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는 나에게 인지치료가 해갈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학창 시절 엘리스가 철학책을 읽고 심리학에 들어선 것 그리고 작가였던 그를 보면 나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스가 REBT를 만들기 전에 가장 영향을 받은 철학은 스토아학파와 로마황제였던 철학왕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었다.


지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명언이자 엘리스가 큰 영감을 받았다던 문구가 하나 있는데 절름발이 노예출신 로마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남긴 교훈이다.

"사람이 고통받는 것은 일어난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 때문이다"

keyword
이전 27화무적의 MB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