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603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육백 삼 번째
프로 오지라퍼들이 많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특징 중 하나다. 이는 장점과 단점이 혼재되어 있는 데, 장점은 타인에 대한 우월감이든 단순 호의든 타인에게 개입한다는 것은 관심과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보다 소극적인 타인간섭 태도를 보이는 일본에서,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고 사망한 유학생 이수현 씨의 사례도 있다. 단점으론.. 말해 뭐 해? 입 아파서 살겠나 이거? 하루 종일 떠들어도 훈수 내지는 잔소리와 간섭의 파도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지랖이 나쁜 것만은 반드시 아니다. 다만 이 오지랖에 대한 근본적인 정의 자체가 상대에 대한 간섭이이 나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대다수 이므로, 내가 외계인이 아니고서야 상대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은 그래도 타인은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고, 암묵적으로 개입을 원치 않거나 다른 방향으로 공감이나 조언을 구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나의 개입이 오히려 나의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도 프로 오지라퍼인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반성 아닌 반성이 있자면 어떤 고민이나 이야기를 듣고 굳이 그것에 대해 끝을 보려 하는 태도, 즉 해결책을 반드시 제시해 주고 기승전결이 확실하게끔 도와주려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했던 기억도 난다. 내가 보기엔 껄쩍지근(?)해도 그것에 대해 내가 듣고 있으며 감정을 공유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도 상대에겐 충분하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상대방이 원하는 신호가 확실할 때만 해결책을 제시해야 효과가 더욱 큰 편이다. 말을 살짝 듣자마자 해결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앵무새처럼 제시하면 오히려 설득력도 없고 듣는 입장에서 하고 싶지도 않다. 남발하게 되면 도리어 힘을 잃게 되므로 아껴 두었다가 가끔씩 하나씩 치는 게 울림이 더 큰 편이다. 아무튼 조언 내지는 잔소리에 대한 나의 지론은 그렇고 더 중요한 한 가지가 남았다.
"자기가 열광하고 있었기에 남들도 열광시킬 줄 알았다"라는 어느 표현처럼, 모든 조언이나 오지랖들에 대해서 상대와 나의 똑같은 문제로 내가 먼저 겪어봤기에 내가 이렇게 말해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래도 상대 말고 나를 바라보는 입장에서라면, 나 또한 그런 해결책에 대한 경험과 나도 그런 감정을 겪으며 통찰을 얻게 된 과정을 보내야만 말에 힘이 생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생각한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