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726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칠백 이십 육번째
???, 마른 하늘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아~ 모임끝나고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귀가하게되었다. 피부에 적셔진 수분은 먹지 않고 피부에 양보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만족하고 글을 써본다. 오늘 주제는 대의를 위한 희생에 관한 발제가 나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게 되었다. 도중에 독립운동가들처럼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면 과연 비슷한 선택들을 할 수 있을 까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대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던 사람들로 이루어진 역사. 그런데 한편으로는 다른 의견도 나왔다. 대의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 생각을 해보면 일본 사람들은 그들의 대의는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국가에 헌신하는 것이 대의였을 것이며 그런 점에서 볼 때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보는 그들만의 관점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자살돌격이 억지로 하는 것일 수 있지만, 다른 근왕주의자는 천황을 위해 옥쇄한다 여겼을 수도 있다.
이는 우리 입장에서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지만 더 넓게 본다면 대의라는 것은 결국 절대적인게 아닐 수 있으며 누군가나 집단에 의해 정해진 정치적 문화적 요소가 함유된 그 무엇일 수 있단 소리가 된다. 이는 마치 선과 악의 기준처럼, 어디까지나 자의적이며 주관적 요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 공동체의 위해를 가하면 안된다는 기준은 지배계층에게는 질서 유지를 위한 절대적인 장치인 동시에 선이자 모두가 추구해야 할 대의일 것이다.
반면 부조리가 넘치는 공동체를 뒤짚어 엎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핍박받는 대중을 위한 대의이며 자신들이 선의 세력임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각자가 생각하는 바는 현재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아니 그러면 대체 공통된 대의란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선이란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회의적인 물음에는 우리가 아프리카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5천만 국민이 나서서 도울 수 없듯이 그 한계가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며 어디까지나 자기가 서있는 위치, 속해있는 공동체와 공유되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선 그리고 대의의 출발점은 바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역지사지의 마음에서 비롯되지 않나 싶다. 오랜 역사에서 눈에는 눈, 코에는 코의 복수혈전들도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에서 시작된 것, 오늘날 방대한 윤리와 법률, 가치관들에 이르기까지 피와 땀의 역사. 누군가의 희생, 누군가의 헌신으로 추상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대의는 그럼에도 공통의 목적과 이타심의 확장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