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그 날이 왔다.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728

by 포텐조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칠백 이십 팔번째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25권을 시작합니다!


"그 날 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심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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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통치 35년간 한반도는 착취의 텃밭으로 몰락했다. 중국 대만, 동남아시아등 누가 더 잔인하게 당했느냐의 인적, 물적인 계량적 숫자싸움은 모두 다 부질없다. 중국에서 대학살이 일어났으니 한국에서의 착취는 그나마 낫다라는 평가는 공개적으로 상대방에게 이야기하기에는 대단히 실례되는, 생각이 짧은 판단일 수 밖에 없다. 아무튼 전 방위로 아시아는 하나라 외쳤던 일본의 지배는 동북, 동남아시아에 크나큰 상처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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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나간 방법으로 끝까지 항거를 유지 할 생각이었던 대본영의 "의지"는 쓰라는 곳에는 안 쓰고 자국민 다죽어나가는 데 써 버리는 바람에 기어이 인류 최초로 원폭을 두 방이나 맞고서야 항복해버린다. 맥아더와 미국정이 들어와 사실상 일본의 상황으로 군림하고, 옥음방송으로 천황 스스로 자기는 인간일 뿐이라고 국민에게 알리는 것으로 일본 제국은 해체되어 버렸다.


우리나라는 어느 영화에서 배우 이정재가 대사로 외쳤던 "해방 될 줄 몰랐으니까"라는 멘트처럼 35년간 조선 사람들은 그 기나긴 세월, 한 세대가 넘는 세월에 2세나 3세들은 자기 자신이 조선인이라기보다는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이 점차 더 무르익었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 일상에서 보거나 느끼는 건 맨날 똑같고, 학교에서 가르침도 일제를 중심으로 돌아가며, 곳곳에는 일본사람과 일본문화, 일본건물들이 있는 것을 보면서 독립에 대한 필요성, 한민족 정체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거나 아예 갖지 않았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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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일제 말기에 더이상 한반도에서 활동하기 힘들었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외국으로 떠나, 혹은 만주에서 활동했다. 어떤 식으로 독립 운동을 이루고 행 할지의 각자만의 생각하는 바가 달랐다. 여운형, 신익희 등의 선생들은 공산주의 노선으로 지향했으나 그들은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대한민국 수립에 앞장섰던 거물이었다. 당시의 사상적 차이로 빨갱이니 파쇼니 매도하는 것은 점차 내부에서 정치적 헤게모니 다툼으로 변질되때나 써먹었던 것이고 되레 민족 분열을 알아서들 잘 하고 있는 게 일본 입장에서 미소가 빵긋했을 것이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조선 해방과 독립"이라는 기치는 모두 다 동일한 목적이자 한민족이라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라는 공동의식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활동지역이 다르고 단체명이 달라도 자신의 목숨마저 위험한 상황에선 민족과 나라를 위해 희생한 것은 변함이 없다. 몇 년전의 생각은 독립 운동가들이 아무리 열심히 활동해봤자 일제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던 것 같아서 무기력감을 느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독립 운동가들이 이렇게라도 했기 때문에 한반도가 비록 나중엔 두쪽이 났어도, 코빼기도 신경을 안쓰던 열강들이 점차 자결권을 요구하는 조그만 나라가 있구나를 인식했던 것이다란 생각으로 바뀌었다.


해외 사례는 자주성, 자결권을 요구하지 않거나 투쟁하지 않으며 뜨뜨 미지근한 상황을 보이게 되면 식민 열강의 통치기간이 더 오래 갔다. 마침 40년대부터 창씨개명이자 일본어 완전교육 등으로 일본인과의 동화를 추진하는 시대였던 지라 독립 필요성은 차츰 흐릿해지고 자신이 그냥 일본인이란 정체성을 시간이 지나면서 가졌을 확률이 높다. 그러면서 한반도는 일본의 지역으로 편입되었을 확률도 높다. 마치 지금의 오키나와의 류큐왕국처럼.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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