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오 Aug 14. 2023

8.14



  며칠 동안 내린 장맛비가 음산하게 거리를 적셨다. 모두가 우산을 손에 쥐고 바쁜 하루를 보내기 바빴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늘 오늘이 되면 하루종일 가만히 서서 한 곳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한 번은 호기심에 그녀가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곳은 내가 보기엔 그저 작은 도서관에 불과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무언가라도 잃어버린 사람처럼 한참 동안 멍하니 도서관을 바라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녀를 보면 혀를 끌끌 차거나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에게 어떤 사연이 담겼는지는 아는 사람은 몇 명 없어 보였다. 혀를 끌끌 차는 남자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50대 중후반은 되어 보였기에 그러면 이유를 알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남자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미친 사람일 거라고만 대답했다. 가장 간단하고 합리적인 이유였지만 전혀 확신은 들지 않았다. 분명 오늘이 지나면 그녀는 평범한 노인처럼 장바구니를 손에 쥔 채  마트에 가고, 산책을 하고, 노인회관에 갈 테니까.


  다시 빗방울이 세차게 떨어졌다. 비를 피하려 황급히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 한 잔 주문하곤 창밖이 훤히 보이는 자리를 잡았다. 옆 테이블엔 짝퉁 명품 가방과 펑퍼짐 한 옷 따위를 입은 아주머니들이 앉아 함부로 떠들고 있었다. 비릿한 비냄새와 바깥에서 흘러 들어오는 빗소리가 이야기를 부풀어 오르게 하는데 일조했다. 나는 눈으론 비를 맞으며 서 있는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귀는 옆 테이블 아주머니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저 할머니는 작년에도 그러더니 올해도 저러네. ”

  “매년 저런대잖아. 딱 오늘만 되면. “

  “가끔 무서워. 저 사람, 평소에는 멀쩡하게 있는데 말이야. 저런 모습을 보면 좀 미친 사람 같다고 해여하나? ”

  “아님 치매에 걸렸나 보지. 처자식이 없으니 간병을 해줄 사람도 없고. 좀 안타까워.”

  심각하다는 듯한 말투였지만 그들의 입가엔 재미난 이야기라도 하는 듯 입꼬리가 잔뜩 올라와 있었다. 마침 커피가 준비되었다는 벨이 울렸다. 커피를 가지러 가면서 그들이 앉은 테이블을 힐긋 쳐다보았다. 좁은 테이블 위에는 명품 가방이나 지갑 따위가 올려져 있었다. 명품에 대해 잘 알지는 못 해 진짜인지, 짝퉁인지 구분은 할 수 없었지만 대충 가운데 그려진 로고만 보면 어떤 브랜드인지는 알 수 있었다.

  비가 점점 더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빗소리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그들의 목청도 높아져갔다. 비가 오는 날이면, 냄새 등을 더 짙고 넓게 확산시킨다고 하던데 이런 소리도 함께 확장시키는 것 같았다.

  “아님 저 도서관에 뭐가 있을까? ”

  “뭐가 있기엔 그냥 평범한 동네 도서관인데? ”

  “아니, 뭐 저기에 숨겨진 처자식이 있을 수도 있고… 땅을 샀었는데 사기를 당한 거일 수도 있고……”

  “에이, 설마. “

  “그럼 저 여자가 왜 저러는데. 이유를 모르겠잖아.”

  그들은 마치 어떻게든 오늘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점점 목청이 높아질수록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이 늘어지고 있었다. 그 땅에 남편 시체가 묻혀 있다는 둥, 첫사랑과의 데이트 장소라는 둥 그들은 막장 소설 작가로 빙의해 온갖 근거들을 떠들어댔다.


  그들의 목소리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높아져버렸다. 이제 주변 손님들이 그 테이블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거나 손차양으로 입을 막고 서로 웅성이 곤 했다. 노인은 타인이 자기 흉을 본다는 사실 따위는 전혀 모른 채 똑같은 곳에 똑같은 자세로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빗방울도 여전히 굵게 창문을 두드렸다. 더 이상 그들의 대화를 엿듣자니 역겨움만 쌓일 것 같아 자리를 정리했다. 남은 커피를 입 안으로 전부 털어 넣을 즈음, 카페 사장처럼 보이는 남자가 그들 테이블에 케이크 한 조각을 올려놓았다. 백발이었지만 키가 훤칠했고 적당히 진 주름이 오히려 관리가 잘 된 중년이라고 해도 믿을 법했다. 그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입을 열었다.

  “말씀 중에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이건 대화에 끼어들어 죄송하다는 사과의 의미입니다. 그럼 손님들께 한 가지만 여쭈어보아도 되겠습니까? ”

  “에이, 이렇게 써비쓰도 주셨는데 당연히 되죠.”

  그들은 언제 목청 높여 언쟁을 벌였냐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 도서관이 언제 생겼는지 아십니까? ”

  “글쎄요. 제가 책이랑 멀어진 지 좀 돼서요.”

  “저 도서관은 올해로 설립 5년째입니다.”

  “그래요? 나름 신식이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신 거죠? ”

  “그럼 5년 전, 저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도 모르시겠네요? ”

  “음…… 알 것 같기도 하고… 이봐 형진 엄마, 저기 뭐 있었는지 알아? ”

  “뭐였지? 분명 뭐가 있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그들은 이번에도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리를 정리하던 나도 남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듣다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떠오르지 않아 볼멘소리만 내었다.

  “오늘 한 번 저 도서관에 가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카페 사장은 신사답게 고개를 꾸벅이곤 다시 사무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저 도서관에 간다면 적어도 대답하지 못한 질문의 답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도서관은 생각보다 많이 협소했다. 아이들이 수업을 할 만한 작은 교실 두 개와 늘어선 서적들. 책 종류는 평범한 학교 도서관보다 없어 보였다. 출입문 바로 옆, 1반 교실엔 초등학교 저학년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빙 둘러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무얼 하는지 까치발을 들어 교실 안을 들여다보려 했지만 선생님의 등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았다. 이번엔 어떤 책들이 있는지 서재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우리가 대출을 할 법한 베스트셀러나 자기 게발 책은 한 권도 보이지 않고 전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소설이나 역사 서적 따위가 전부였다. 그때, 도서관 중앙에 황금색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제서 도서관이 지어지기 전, 무엇이 있었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이곳은 원래 위안부 동상이 세워진 곳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늘 동상 앞에서 위안부를 기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서관이 지어지고 눈앞에 동상이 사라졌지만 늘 해왔던 것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묵묵히 그들을 기리고 있었을지도.

  여전히 도서관 밖에선 그녀가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상이 무너진 게 아니고 이 안에 그대로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까. 보다 못해 그녀에게 가기 위해 다시 출구로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1반 문이 벌컥, 열리더니 그 안에서 아이 하나가 밖으로 쪼르르 달려 나갔다.

  “할머니 드리려고 만들었어요. ”

  아이는 그녀에게 작은 나비가 달린 팔찌를 건넸다.

  “우리가 할머니를 잊지 않을게요. 절대로. 매일매일 할머니를 생각할 순 없더라도 오늘만큼은 할머니를 꼭 기억할게요. “

  8월 14일. 잊고 있었다. 방긋 웃은 아이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때마침 카페 옆 테이블에 앉았던 이들이 도서관 앞을 지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혀를 끌끌 차기만 할 뿐, 도서관을 향해 몸 한 번 돌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두려웠던 걸지도 몰랐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잊혀지는 과정이 보인다는 게, 겪었던 수모가 희미해져 간다는 게. 나는 말없이 그녀가 서 있는 방향과 동상이 있던 자리를 번갈아 고개를 돌렸다.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하나둘씩 도서관에서 나오고 있었다. 적어도 저 아이들이 그들의 후손에게도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라면…… 우리가 무언가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잊혀지는 건 잔인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당연하게 잊혀져버린다. 다시 내일이 되면 새까맣게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결국 바쁜 하루를 핑계로 오늘 다짐한 결심은 희미해지겠지. 그러나 적어도 오늘만큼은 부끄러운 하루를 만들지 말아야지. 오늘 하루는 절대 잊지 말고 기억해야지. 날개가 찢어진 나비를.

 

  







 

매거진의 이전글 ALZ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