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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Nov 02. 2023

오베론

 


 이 도시에는 독특한 종교가 존재했다. 다 낡아빠져 곳곳이 산회되어 붉고, 윙윙 소리를 내는 기계를 숭배하는 신앙이였다. 아직 도시 사람들에게 세뇌되기 이른 초등학생 때, 친 구와 저 기계는 햄버거 패티를 굽는 기계였는지, 기능이 고장난 에어컨이었는지 싸운 적이 있었다. 우리의 대화를 엿들은 선생님은 곧장 그 날 반성문 열 장을 쓰게 하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날 나는 학교에서도 된통 혼나고, 집에 들어가서도 부모님께 호되게 혼났었다, 그때부터였다, 천천히 내가 세뇌되어 가던 것은. 온동 의문 투성이였음에도 타인 들이 모두 기계를 숭배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도 따라 기계를 향해 고개를 조아렀고, 현금을 냈다. 사당에 있는 모두가 이런 의문을 가졌을지 또한 의문이었다. 그러나 온갖 질 문들을 품은 입은 찬송가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 기계의 이름은 ‘오베론’이라 불린다.


소멸


  기계는 매일 오후 여섯 시가 되면 위잉,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스피커를 타고 도시 곳곳에 흘러 나왔다. 시민들은 그 소리가 들리면 하던 것을 멈추고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 가만히 묵념을 해야했다. 소리는 약 1분 가량 울렸다. 스피커가 꺼지면 다시 하던 일을 마저 시작했다.

  열쇠를 찾기 위해 아버지의 책상 서랍을 열었을 때였다. 그 안에는 처음 보는 물체가 있었다. 호기심에 물체를 향해 손을 뻗어보았다 아버지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 재빨리 서 람을 닫았다. 괜히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아버지는 방에 두고 간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뭘 그렇게 찾아? “

  “그냥 열쇠를 좀 찾고 있어요. “

  “열쇠? 무슨 열쇠? ”

  “C-4 번 캐비닛 열쇠요. “

  “그건 거기 없다. 열쇠함을 잘 찾아봐라. ”

  아버지의 말과는 달리 서랍을 뒤적거리는 손에 열쇠가 하나 잡혔다. 나는 열쇠를 들어 올려 아버지에게 보여주었다.

  “그럼 이건 무슨 열쇠예요? ”

  “너는 알 필요 없다. 네가 찾는 C 번대 열쇠도 아니니 다른 곳을 찾아봐.”

  아버지가 꽁꽁 숨겨놓은 듯하면서, 누군가 찾기를 바라는 듯한 저 물건. 나는 저 물건이 무엇인 지 알고 있었다. 지구에 살던 사람들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담았던 그릇.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그들은 그 그릇을 ‘책’이라 불렀다.


  포보스는 작은 콜로니였다. 주변엔 작은 범람체들이 둘러쌓여 있었고, 큰 행성에 태양이 가려져 늘 캄캄한 밤이 우리의 머리 위를 떠다녔다.

  우리 가족의 계급은 ‘카론’으로 돈을 받고 물건을 맡겨주는 일을 하는데 옛날 전당포와  비슷한 일이라고들 했다. 유일하게 포보스 내에 존재하는 전당포로 집 곳곳은 열쇠로 가득했고, 가족들의 손에는 쇠 냄새가 빠지질 않았다.

  “어이, 네 아버지는 어디 가시고 너만 있어? ”

  “지금 H열 사물함에 가셨어요.”

  “아이고…… 그 넓은 곳을 혼자? 네가 아버지 좀 도와드리지 그랬어.”

  “그럼 카운터는 누가 봐요.”

  “그건 그렇지. 도대체 너희 고물은 언제 고치냐? ”

  “몰라요. 돈이 있어야 고치던 말던 하죠.”

  리오의 작동이 멈춘 건 세 달 전이었다. 사실 이상한 증상이 보이던 건 일 년이 넘었다. 처음엔 가벼운 시스템 오류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리오의 상태는 이상해져만 갔다. 엉뚱한 캐비닛에서 길을 헤메거나, 열쇠를 깜빡하고 물건을 찾으러 가는 건 물론이고 주인인 가족들의 이름도 잘못 부른 적도 있었다. 과부하가 걸린 게 아닐까 짐작한 우리는 오랫동안 충전을 걸어 기다렸으나 상태는 점점 악화 될 뿐이었다.

  “이봐, 유 씨! 또 우리 딸 일 못 하게 방해하는 건가? ”

  “방해라니. 자네 기다린 거 아녀. 가서 한 잔 하는 거 어떤가? ”

  “사양하겠네. 할 일이 산더미야. 리오가 고장난 뒤로 하루도 못 쉬고 있어.”

  “문영이 네가 아님 저거라도 빨리 고쳐봐라. 그렇게 니네 아버지 쉬는 꼴이 보기 싫니? ”

  “돈이 없다구요.”

  “그놈의 돈, 돈. 돈을 벌려면 돈을 써야하는 겐가? 에응 쯧쯧…… 안 마실 테면 나는 가보겠네. 수고하게.”

  유 아저씨가 가자 아버지가 몸을 축 늘어트린 채 소파에 앉았다. 고개를 젖히니 며칠 면도를 하지 못해 까무잡잡한 턱이 유난히 돋보이는 듯했다. 리오를 고치든지, 새 안드로이드를 사든지 해야 할 텐데 가족은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리오는 여전히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언니는 며칠 내내 방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고 있었다. 밤 여섯 시가 되어 위잉, 소리가 들려도 기도를 드리러 나오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언니 방 문을 세게 두드려도, 언니의 이름을 크게 외쳐도 그녀는 묵묵부답이었다. 기절했거나 죽은 게 아닐까 싶었지만 허기를 못 참고 새벽에 주방을 드나드는 걸 보면 아직 식욕이란 욕구가 사라질 정도로 심각한 병은 아닌 듯했다. 그렇다고 사춘기가 올 나이는 훌쩍 지났기에 그녀가 왜 그러는 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야, 서일영, 너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거야? 너 기도 안 하면 정말 잡혀간다.”

  화를 참지 못 한 어머니가 크게 외쳤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언니, 기도 안 해도 되니까 나와서 아버지 일이라도 좀 거들어봐. 이러다 정말 쓰러지실 지 몰라.”

  보다 못 한 나도 한 마디 거들었다.

  “냅 둬. 저러다 때 되면 알아서 나오겠지. ”

  아버지가 무덤덤하게 말하더니 다시 서랍을 열어 열쇠를 집어들었다.

  “이따 여섯 시 반에 특별 손님이 오시기로 했으니, 모두 그 전에 카운터 앞으로 와야 해.”

  “특별 손님이라뇨? 누가 오시기로 했는데요? ”

  ”레아 사람이야. 그 분이 우리 캐비닛에 중요한 물건을 맡기고 싶대.“

  레아는 포보스 최고층 계급이다. 레아는 대부분 정치인이나 오베론 관리자와 집도인들이 속해 있었다. 그들은 족히 오 키로는 되어 보이는 장식을 옷에 달고 걸어다녔다. 그 장식이 없으면 평지를 걸을 수 없었다. 그것이 레아를 상징하는 의미였다. 장식이 아닌, 그들이 느끼는 포보스의 중력. 즉, 각자의 발걸음이 권력을 상징했다. 카론과 같은 하층 계급은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건 곧 법규 위반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의 머리 위에 있었고, 우리가 필요로 할 때만 옷에 장식을 달아 눈높이를 낮추었다.

   “어떤 중요한 물건이길래 그 귀하신 양반들이 여기까지 온대.”

  “그야, 나도 모르지. 의뢰인의 물건은 절대적으로 비밀을 보장해주니까.”

  아버지의 신념은 가족에게 조차 예외란 없었다. 큰 값을 지불하고 물건을 맡기는 손님이나 높은 계급의 손님이 오면 가족이 다 같이 카운터에 모이는 것도 그의 신념 중 하나였다. 여기서 하나 호기심이 생겼다. 지금 저 방에 틀어박힌 언니는 예외가 될까.


  오베론이 위잉, 하고 우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차렷 자세를 취해 고개를 숙였다. 저 멀리 보이는 레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거추장스러운 장식 옷을 걸치곤 스피커를 향해 몸을 돌려 고개를 숙였다.

  소리가 멈추자 그가 다시 우리 집을 향해 다가왔다. 중력 탓에 어정쩡한 걸음이 어째서인지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일영아, 어서 나와라. 귀한 손님 오시잖니.”

  “……”

  “서일영. 어서 안 나와? ”

  아버지의 목소리게 한껏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그녀의 방 문 너머로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됐어. 직접 나오지 마. 내가 직접 문을 따고 들어 갈 테니까 말이야.”

  아버지는 미리 준비를 한 듯 바지 뒷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구멍에 맞춰 열쇠를 넣었다. 달칵, 소리가 나자 벌컥, 문을 열어 젖혔다. 나도 아버지 뒤를 따라 슬쩍 언니의 방 문 앞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언니의 방 안에는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숨어있는 게냐? 그 나이 먹고 숨바꼭질이 하고 싶어? 어서 나와.”

  아버지가 입술을 꽉 깨문 채 말했다. 그리곤 언니를 찾아 이불을 들추고, 옷장 문을 벌컥, 열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방 안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자각했는지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뭐야. 어디 간 거야. 일영아, 일영아! ”

  “여보, 손님이 오고 계셔요! ”

  “일영이가 사라졌어! ”

  이젠 그의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레아는 언니를 찾을 여유를 주지 않고 곧장 차임벨을 눌렀다.

  “여보. 빨리요! ”

  “젠장. 이럴 때 왜 레오가 없는 거야.”

  “아까 전화로 말씀드린 사람입니다. 안 계십니까? ”

  “네, 네, 지금 갑니다. 가요! “

  레오의 외침에 아버지는 자기도 모르게 반응을 해버린 것 같았다.

  “문영아, 너는 안 내려와도 좋으니 어서 네 언니를 찾아봐라.”

  처음이었다. 특별한 손님이 왔음에도 내려오지 말라고 한 건. 나는 아버지의 말을 따라 언니의 방 곳곳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카운터 앞으로 모습을 비친 레아는 장식품 안에  정갈한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천장에 머리를 찧지 않기 위해 장식품을 벗지 않았다.

  “이곳이 포보스에서 가장 넓은 캐비닛이라면서요? ”

  “네, 네. 맞습니다. 그 만큼 크던, 무겁던 물건이란 물건은 모두 집어 넣으실 수 있습니다. ”

  “멋지군요. ”

  “감사합니다.  그럼 맡기실 물건과, 보관 기한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

  아버지는 애써 침착하게 메뉴얼을 읊었으나 떨리는 목소리마저 숨길 순 없던 모양이었다. 아마 그의 머릿속엔 사라진 언니로만 가득했을 테였다.

  ”물건이 무엇인 진 알려드릴 수 없네요. 국가 기밀이라. 기한은 제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해주십시오. 돈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레아 사제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온갖 포장지로 덕지덕지 감추어진 물건을 꺼내 들었다.

  “가장 보안이 철저한 캐비닛에 넣어주세요.“

  “A 번대 중 가장 보안이 철저한 A-1에 넣어드리겠습니다.”

  “아니요. B-52번에 넣어주세요. ”

  “거기보단 A번대가 가장  보안이 철저하고, 넓습니다. 튼튼한 금속으로 되어있어 불에 타지도, 녹지도 않아요.“

  “전 그곳에 넣고 싶어요. 아, 비용 문제라면 A번대 금액대보다 훨씬 더 얹어서 드릴게요.”

  “아, 손님께서 원하신다면 당연히 해드려야죠.“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곤 집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거추장스럽던 장식을 벗어 던지곤 우리보다 훨씬 높은 곳을 사뿐사뿐 걸었다.



  포보스


  일영은 어디에도 없었다. 창문이 열려있지도 않았고, 신발장에 그녀의 신발이 사라져 있지도 않았다.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표현이 적절한 상황이었다. B-52 캐비닛에 다녀온 아버지는 곧장 집 안과 캐비닛 구석구석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분명 이틀 전, 새벽에도 방을 나와 냉장고를 뒤적거리는 걸 보았었다. 사라진 게 아니라면 집 안은 마땅이 숨을 곳은 없다. 그러나 캐비닛으로 향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냉장고 크기부터 대형 마트 크기의 캐비닛이 약 500개나 있는 A 번대 캐비닛은 물론이고, 각각 A 부터 L 번대 캐비닛까지 합한다면 몇 년을 뒤져도 말짱이도룩묵이었다. 아버지는 홀로 엘리베이터를 타 A 번대로 향하는 버튼을 눌렀다.

  “A 번대는 내가 가 볼 테니, 당신이랑 문영이는 L 번대부터 찾아보아라. 혹시라도 일영이를 찾는다면 곧장 말 하도록.“

  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쩌죠. 어머니. 저희도 가서 찾아봐야겠죠? ”

  레아 사제가 가자마자 어머니의 표정은 한껏 어두워져 있었다. 아직 진정을 하지 못 한 듯했다. 나는 한참동안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입술을 보며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묵직하게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캐비닛 안을 가득 채운 소음에 어머니도 몸을 움직였다.


  소리가 들린 건 B 번대 캐비닛이었다. 나와 어머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B 캐비닛을 향했다. 입구는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왠지 모르게 겁이 나 등골이 시려왔다. 천천히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어보려는데, 익숙한 소리가 문 너머로 흘러 나왔다. 어머니는 내 팔을 쳐내고 벌컥 문을 열었다.

  B 번대 캐비닛 바닥에 누워 소리를 낸 건 레오였다. 나는 레오를 향해 달려가 레오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레오는 창고에 넣어두었던 세 달 전보다 훨씬 부식되어 있었고, 부품 군데군데가 움푹 페여 있었으며 오른쪽 팔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나는 레오를 어루만지며 세어 흐르는 기름을 애써 막아보았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작동이 멈춘 게 아니었어? ”

  “유타…… 사라…… 일영님이 지금……“

  레오의 작동이 완전히 멈추었다. 어머니는 레오의 유언에서 일영의 이름이 언급되자 다시 그의 전원을 켜기위해 연신 레오의 몸을 두드렸다. 그러나 레오의 눈에 불은 들어오지 않았고, 그녀의 손만 붉게 달아 오를 뿐이었다. 나는 레오가 어디서 캐비닛 바닥으로 떨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캐비닛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저 위에, 문이 활짝 열린 캐비닛이 눈에 들어왔다. B-52번 캐비닛이었다. 레오가 들어가기엔 턱없이 작은 크기였지만 조금 전, 아버지가 레아 사제의 물건을 맡기면서 절대 문을 잠갔을 리가 없었기에 확인을 해야만 했다. 절대 그의 신념에 있어 의뢰인의 물건이 담긴 캐비닛을 활짝 열어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어머니와 레오를 뒤로 하고, 승강기에 올라 타 B-52 캐비닛 내부를 확인해보았다. 그러나 그 안은 텅 비어있었다. 레오의 떨어져 나간 팔, 부품 조각 심지어 레아 사제가 맡긴 의문의 물건조차 없었다.

  “우리 일영이 어디갔어? 넌 알잖아. 너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말 좀 해봐……”

  레오의 몸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물방울은 레오의 몸을 타고 흘러 바닥을 적신 기름 위로 떨어졌다. 레오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오자 집 안에는 소름 끼치는 정적이 일었다. 일영과 의뢰인이 맡긴 물건의 행방, 갑작스레 나타나 엉뚱한 말을 한 레오. 사건의 실마리를 거머쥘 수 없어 머리만 싸메었다.

  “그런데 그 사제는 왜 굳이 B-52 캐비닛을 원한 거죠? ”

  “……”

  아버지는 들은 척 하지 않고 턱을 괸 채 허공만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게. A 만큼 보안이 좋은 것도 아닌데.”

  “이만 들어가서 자지. 시간이 늦었어.”

  소파에 앉아있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유독 등을 돌린 그의 어깨가 축 늘어져 보였다.

  “같이 가요.”

  “아냐. 먼저 안방에 가 있어. 나는 잠시 내 방에서 생각을 좀 해야겠어.”

  그렇게 아버지의 방 문이 굳게 닫혔다. 나와 어머니는 영문도 모른 채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날이 밝으니 아버지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카운터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의 모습에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달아 올랐다.

  “당신 미쳤어? 지금 딸이 사라졌어요. 지금 당장 실종 신고를 해도 모자란데 이게 눈에 들어와요? ”

  어머니가 티브이를 끄자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어머니 손에 있던 리모컨을 낚아챘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뭘 그렇게 목소리를 키워! 일영이는 이제 영영 못 찾아. ”

  “정말 미친 게 분명해.”

  “차라리…… 일영이가 죽기를 바라는 게 나을 거야. 그러니까 이제 잊자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짝, 소리가 났다. 질끈 감았던 눈을 뜨니 아버지의 뺨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흥분을 못 가라앉혀 어깨를 들썩이는 어머니와 반대로 아버지는 침착했다. 그 침착함이 오히려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어머니는 안방 문을 굳게 잠갔다. 언니의 방처럼. 아버지는 아랑곳 않고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아버지도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지금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 생긴 벽은 보이지 않지만 저 방 문보다 두꺼웠다. 그 벽은 나도, 일영도, 그 위대하다는 오베론도 허물 수 없었다.


  왜 하필 B-52 캐비닛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아직 의뢰인이 맡긴 물건의 행방을 찾지 못 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분명 아버지는 알고 있을 테였다. 모든 캐비닛의 열쇠는 구분하기 편하도록 가지런하게 정렬된 열쇠함에 있었다. 하지만 B-52 만큼은 열쇠함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 열쇠가 있는 자리는 아버지의 서랍이었다.

  아버지가 하릴없이 티브이에 집중하는 틈을 타 아버지의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B-52 열쇠가 있는 서랍을 열었다. 내가 꺼낸 건 열쇠가 아닌 그가 꽁꽁 숨겨둔 책이었다. 나는 책을 옷자락 안에 숨겨 내 방으로 재빠르게 올라가 문을 걸어 잠갔다. 과거 사람들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옮겨 담은 그릇. 그것을 통해 선명하게 직감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음을.   

  손톱으로 딱 달라붙은 첫 페이지를 문질거려 펼쳐냈다. 처음 펼쳐진 종이엔 푸른 색 행성 사진이 붙여져 있었다.



  이 사진 속 행성의 이름은 ‘지구’다. 우리들의 조상이 이 콜로니에 오기 전, 살았던 행성이다. 지구는 아름답다. 물이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 초록 빛깔로 우직하게 솟은 산, 그 사이사이 지어진 마천루들. 그곳에 태어나고 자란 우리의 조상들은 모두가 공평하게 평지를 걸었다. 즉, 공평하게 모두 중력을 받았다. 조상들은 그런 아름다운 지구를 야금야금 갉아 먹었다. 광활했던 바다는 점점 검게 물들어 갔고, 초록 빛으로 반짝이던 산은 전부 깍여 흙갈색을 보였다. 반대로 마천루들은 하나 둘씩 늘어나기 바빴다. 결국 지구는 소멸하기 직전까지 왔다. 그들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수많은 탐사선을 우주로 쏘아 올렸고, 마침내 인간이 살 수 있는 콜로니, 이 포보스를 찾게 되었다.

  사람들은 아직 살아갈 수 있음에 기뻐했으나, 그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포보스로 향하는 우주선에 연료와 수용 인원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가능한 왕복 횟수는 3회. 한 번에 수용 인원은 만 명. 즉, 삼 만 명밖에 포보스로 오지 못 하는 거였다. 전 세계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이웃 주민끼리는 물론이고, 국가끼리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각 국가 대통령이 모여 평화 조약 회의를 열었고, 그 결론은 이러하다.

 1. 새로운 행성을 유치하기 위한 정치인 5%

 2. 건물을 짓기 위해 필요한 건설직 직원들과 인부들 10%

 3. 의사 등 의료계 종사자와 소방관 20%

 4. 경찰, 판사 등 법률에 종사하는 사람 15%

 5. 종교 유치를 위한 사제 3%

 6. 음식을 만들기 위한 요리사와 농부 10%

 7. 기술 개발을 위한 과학자와 공학자 5%

 8. 대학생을 포함한 학생들 10%

 9. 그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선생과 교수 5%

 10. 은행직 종사자와 가수/배우 포함 5%

 11. 군인 10%

 12. 그 나머지 기타 2%  

  그 외는 지구에 남고, 다른 행성을 찾는대로 이동한다.

  최종안은 나왔으나 각 번호에 맞는 퍼센트에 들기 위해 2차 포보스 전쟁을 일으켰다. 가장 치열하게 전쟁을 일으킨 건 당연히 12번, ‘그 나머지 기타’ 였다. 우주선은 그들에게 구애받지 않고 출발 준비를 했고 덕분에 인간들의 전쟁은 생존을 위한 절규로 전환될 수 있었다. 포보스로 향하는 우주선 탑승에 성공했어도 희극은 아니었다.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한 정치인이 각자 직업에 맞는 계급제도를 제안한 것이었다. 당연히 민주주의 국가에 살던 사람들은 그의 제안에 거세게 반항했다.

  ”정신 차리세요.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은 건물도, 식당도, 자동차도 아무 것도 없어요. 모두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요. “ 말도 안 되는 주장이었으나 저울은 정치인 쪽으로 기울었다. 그렇게 현재 포보스는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으니 유화된 상태로 구조가 나뉜 거다.


  한 편의 영화 같았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이번엔 지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행성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 행성은 지구처럼 둥근 모양이 아닌, 모래시계 모양이었다. 우측은 주변에 범람체들이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자그마했으나, 그 반대 편의 좌측은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이 책을 펼쳤다면 한 번 상기시켜 보아라. 너는 포보스란 행성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거다. 그 모든 사진과 정보들은 가장 상위층 계급들에게 있을 테니. 포보스는 전 페이지에 있던 행성 사진 중 가장 작은 부분이다. 그 반대편은 ‘데이모스’라고 한다. 이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 이야기를 마저 이어가겠다. 최종안대로 삼 만 명이 모두 지구를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굶어 죽기를 기다리며 공포에 떨었다. 한 편으로는 억울해 하기도 했다. 전쟁과 무력으로 우주선에 탄 건 공평한 게 아니니까. 가족들을, 친구들을, 나를 죽이거나 헤치고 떠난 포보스 사람들을 증오해하고, 저주했다. 그런데 인간이란 동물은 참 신기하게도 남에 대한 증오로 마음이 모여 뭉쳐졌다. 며칠 전만 해도 서로에게 총과 칼을 겨누고, 주먹을 휘날린 그들이 모두 공감하는 공통점이 생기자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전쟁으로 흐트러진 정신을 부여잡고 대체 방안을 찾으려 애썼다.

  십 년간 연구 끝에 학자들은 포보스를 대체하는, 아니 그보다 더 획기적인 걸 가져왔다. 삼각형인 포보스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큰 인공 행성을 만든 것이었다. 그 이름은 데이모스. 그 끝에는 기다란 원통이 있었는데 포보스의 핵과 연결해 자원들을 추출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십 년 전, 증오감을 다시 떠올리며 다 쓰러져가는 지구를 떠나 데이모스에 올라탔다. 주변에 범람체들이 가득 떠다녀 빛이 없는 포보스엔 당연히 데이모스의 존재를 볼 수 없었다. 포보스와 연결에 성공하자 데이모스에도 숨을 쉴 수 있는 산소와 온도, 그리고 물이 주입되었다. 그렇게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데이모스 안에서 포보스에 기생하며 살 수 있었다.

  그러나 학자들의 모든 계산이 딱 맞아 떨어진 건 아니었다. 기생을 위한 원통 일부가 포보스 표면을 뚫고 나온 것이다. 갑작스레 솟아오른 기계에 당연히 포보스 사람에게 의심을 샀고 포보스로 향한 정치인과 학자들은 근원지를 찾기 위해 포보스 주변을 순찰했다. 결국 데이모스는 발각되었다. 며칠 뒤 조사를 위해 군인과 학자들이 데이모스로 들어왔고, 위협 사격과 몇 번의 총격전 끝에 우리 데이모스 사람들은 그들을 생포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십 년 전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오른 데이모스의 기술력에 감탄했으나, 우리의 살기를 뼛속 깊이 느꼈다.

  “돌아가면 또 다시 우리와 전쟁을 준비할 것인가? ”

  데이모스 대표가 손과 발이 꽁꽁 묶인 포보스 정치인에게 물었다. 그는 데이모스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우리는 제대로 된 건물도 못 지었습니다. 그나마 지구에서 가져왔던 우주선과 그 구조선이 유일한 기술입니다. 전쟁은 커녕 농사도 제대로 못 지어 굶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은 사람만 수두룩 한 걸요. “

 “우리는 여전히 너희가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을 죽여가면서 도망친 것을 용서하지 못 한다. ”

 정치인은 푹 숙인 고개를 들지 못 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번뜩인 게 있는지 입술을 꿈틀거렸다.

  “이 행성 사람들도 우리의 자원이 없다면 그저 큰 쇳덩어리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저와 거래를 합시다.“

  ”너희가 아니고 너와? “

  ”네, 저와. 절대 여기 사람들에게 해가 되진 않는 거래입니다. “

  “어처구니 없는 말을 지껄이면 너를 포함한 포보스의 삼 만 명을 모두 몰살시킬 거다.“ “우리 포보스의 자원을 더 증폭적으로 데이모스에 지원해드리겠습니다. 그 대가로 데이모스의 기술력을 포보스에게 나누어주십시오.”

  “그 기술로 작당모의를 할 걸 모를 줄 아나? ”

  “아직 말을 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 부분을 우려하실까 신뢰를 드리기 위해 지금까지 포보스에 남은 지식을 모조리 수거해가겠습니다. 책, 사진 그리고 지식인들도요. “

  “증거들을 모두 소멸시키겠다는 건가? 그럼 표면에 솟아오른 원통은 어떻게 할 거지? “

  “이곳 포보스엔 사제들이 있습니다. ”

  “참 교활하구나. 그래. 거래를 받아들이지. “

  그렇게 데이모스는 기술을, 포보스는 자원을 주지만 암암리에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있었다. 최상위 계층에 있던 정치인은 각 계급에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그리고 같은 층에 사제를 불러들였다. 안정적인 기술과 평화. 레아 계층들은 그 두 가지를 위해 포보스 사람들을 더 강하게 세뇌시키려 했고, 곳곳에 스피커를 설치해 매일 오후 여섯 시마다 최면 소리를 틀었다. 이를 듣고 데이모스 대표는 포보스에게 추가적으로 농작물을 나눠주기로 했다. 덕분에 포보스에 굶어 죽거나, 병에 걸려 죽는 사람은 줄어들었으나,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도, 한때 이웃이었던 존재들도 모른 채 살아야만 했다.


  이 사실을 책에 옮겨적은 건 간호사로 쉽게 포보스행 우주선에 탈 수 있었던 딸을 찾기 위해서다. 이 책이 우리 데이모스에게도, 포보스의 레아에게도 알려지면 안 된다. 그 둘이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다. 표면을 뚫고 나온 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아주 얕고 희미하지만 작은 통로가 하나 더 있다. 이걸 발견한 카론이나 닉스, 스틱스는 절대로 이 책을 발설하지 마라. 그리고 여섯 시가 되면 절대 그 소리를 듣지 마라.

  우리는 서로에게 외계인이 아니다. 총구를 겨눠야 할 적도 아니다.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함께 어울린 이웃이고 친구이다. 언젠가 서로 다시 얼굴을 마주할 날을 기다리겠다.


  책을 덮고 곰곰히 생각했다. 책에 적힌 의문의 남자가 쓴 이야기, 오베론과 레아의 정체, 데이모스와 이어진 통로 그리고 ‘책’이란 존재에 대해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 아버지는 이 책을 읽었을 거다. 그럼 아버지는 왜 일영 언니가 죽었을 거라 확신하는 걸까.

  이게 얼마나 오래 전에 쓰인 건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눈에 볼 수 있는 건 군데군데 뿌옇게 바랜 종잇장이었다.


  통로


  레오의 전원은 완전히 꺼져버렸다. 만약 데이모스에서 기술을 못 받았다면 레오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였다.

  언니의 방에 들어가 B-52에 대한 단서가 될 만 한 것을 찾아보았다. 언니의 서랍, 노트북, 침대 밑 구석구석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그리고 책상 밑에 테이프로 붙여둔, 수상한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수상한 물건을 향해 손을 길게 뻗어보았다. 그녀가 책상 밑에 붙여둔 건 작은 메모리였다. 노트북이나 다른 기기 따위와 호환되지 않는 오직 레오의 메모리 칩. 나는 메모리를 들고 레오가 있는 창고로 향했다.

  칩을 레오에게 꽂았으나, 완전히 꺼진 전원 탓에 어떠한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만 둬라.”

  등골이 서늘해지는 차가운 말투에 몸이 얼어붙었다.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네가 내 서랍에서 책을 가져간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

  식은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지금 아버지의 목소리는 일영이 사라졌을 때보다 훨씬 차분했고, 우울했다.

  “언니는 데이모스에 있을 거예요. 그러니 어서 언니를 구하러 가야죠.”

  “데이모스는 멸망했어.”

  아버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그곳은 완전히 멸망했어. 그곳에 가 보았자 전염병과 최면 가스에 미친 사람들만 있을 뿐이야. ”

  “아버지가 어떻게 그걸 확신하세요. ”

  “내가 네 나이 때 그곳을 가봤으니까. ”

  차분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어느세 흥분이 잔뜩 오른 게 느껴졌다. 나와 아버지는 어떠한 말도 이어갈 수 없었다. 터질 것 같은 침묵만이 이어지던 그때, 칩이 꽂힌 레오의 눈에서 영상이 틀어졌다. 그의 눈에서 나온 영상 안은 평화로웠다. 포보스엔 없는 초록색 땅과, 네 발로 걸어다니는 생물체, 짹짹 거리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생물체들이 레오의 빛에 반사되어 드러났다. 그 위에 떠오른 하늘 군데군데엔 범람체들이 그러져 있었다. 그것을 보고 분명 확신할 수 있었다. 영상 속 저 곳은 분명 데이모스라는 사실을.

  아버지는 영상이 나오는 내내 등을 돌리고 있었다. 아니, 흐느껴 울고 있었다. 영상이 끝마치고 나서야 몸을 진정하곤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지금 저 곳은 존재하지 않아. 족히 이 십 년은 지났어. ”

  묘한 분위기 속, 끝난 줄 알았던 영상에서 작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윤! 안 돌아가면 안 돼? “

  “미안. 우리는 함께일 수 없어. 나는 너희를 몰살시켜야 하는 존재라고.”

  ”도대체 왜……“

  “그건 나도 알 수 없어. 대대로 내려온 우리 가문의 임무니까. ”

  “왜 네가 모든 걸 짊어지려고 하는 거야.“

  “더 이상 이어나가고 싶지 않거든. ”


  재윤,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카랑카랑한 소년의 목소리도 단번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나의 아버지라는 것을.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몸을 파르르 떨면서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재윤아, 너의 잘못도, 우리의 잘못도 아니잖아. ”

  “하지만 선조 대대로 우리는 전쟁을 일삼던 사이였어. ”

  “…… 정 너의 결심이 그렇다면 더 이상 말리지 않을게. 그런데 하나만 부탁할게. ”

  “뭔데.”

  “포보스로 복귀하면 곧장 오베론으로 나에 대한 기억을 전부 지워줘. ”

  “……”

  “나와 추억은, 나의 존재는 모두 잊어도 널 사랑했다는 사실만큼은…… 잊지 말아줘. ”

  “약속할게.”

  “사랑해. 재윤.”  


  이번엔 완전히 영상이 끝났다.

  “데이모스를 멸망시킨 건 나다. ”

  “…… 그러면 왜 과거에 대한 기록을 폐기하지 않고 서랍에 넣어둔 건가요? ”

  “그걸 볼 때마다 유코츠를 기억하고 싶었다. ”

  “살아있을까요? ”

  “모르지. 레아들과 함께 B-52 통로에 대량의 최면음을 보내고 전쟁을 일으켰으니.”

  “그곳에 다시 한 번 가보았나요? ”

  “……”

  내 질문에 아버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나 굳이 말 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데이모스의 처참한 현재를.


  “데이모스는 어떻게 가죠? ”

  “알려줄 수 없다. 문영이 너까지 잃고 싶지는 않다. ”

  “언니를 찾을 수도 있잖아요. 어제 레오가 언니와 이름 모를 두 명의 이름을 언급했어요. 그러니까…… 아직 살아있을 지 모르잖아요.“

  아버지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티브이를 켜고 열쇠함에 열쇠를 하나 꺼내 연신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레아가 통로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면 소리소문없이 처형당할 거다. ”  

  그가 한참을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왜죠? ”

  “그게 그들이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이니까. ”

  가슴에서 부터 도무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 올랐다. 나는 카운터에 앉은 아버지를 뒤로하고, 레오와 열쇠를 챙겨 B-52로 향했다.

  승강기가 캐비닛 앞에 멈추자 나도 모르게 덜컥, 겁이 났다.

  “레오, 분명 돌아올 수 있겠지? ”

  전원이 꺼진 레오는 묵묵부답이었다.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캐비닛을 열었다. 여전히 언니는 물론, 레아의 사제가 맡긴 의문의 물건도 없이 텅텅 비어있었다. 나는 그 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캐비닛 안은 춥고 어두웠다. 그리고 소름 끼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레오…… 무서워.”

  그때, 레오의 눈에 희미하게 불빛이 들어왔다.

  “저희 행성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


  캐비닛으로 향하는 승강기보다 훨씬 빠른 속도에 질끈 눈을 감았다. 몸이 움직이는 동안 우주의 온도가 몸 곳곳에 파고드는 기분이었다. 감았던 눈을 떠보니 또 다른 캐비닛 내부였다. 레오의 눈에 아직 희미하게 불빛이 남아 내부를 흐릿하게 밝히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오니 작은 방 안이었다. 여자 아이의 방 같았지만 족히 몇 년은 빈 듯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나는 방 안을 두리번거리다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말 한 것보다 더 데이모스의 하늘은 처참했다. 건물마다 불에 타 그을린 자국이 있었고, 부식되어 철근이 드러나 있었으며 곳곳에 소리를 지르며 소름 끼치게 웃는 사람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원천…… 마스 연구실로 가야 합니다……”

  레오가 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힙겹게 말했다.

  “연구실? 거기에 뭐가 있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데? ”

  “……”

  레오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우리가 나온 캐비닛 문이 닫혔다. 그리고 그 아래, 종이 조각으로 꽁꽁 싸메인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레아의 사제가 맡긴 그 물건이었다. 포장지를 벅벅 벗겨 안에 담긴 물건을 꺼내보았다. 딱딱한 촉감과 꽤 나가는 무게는 마치 돌덩어리 같았다. 마지막 한 겹을 모두 벗기자 돌덩어리가 드러났다. 그 사이사이엔 보석이라도 박힌 듯 빛이 났다. 그걸 레오 가까지 가져다 대 보여주었다.

  “레오, 이게 뭔지 알아? ”

  ”…… 원천…… 포보스의 원천…… 문영 주인님, 그 일부를…… 제 배터리에 넣어주세요.“

  레오의 말대로 돌덩어리의 일부를 조각내 레오의 등 뒤를 열어 넣었다. 그러자 희미했던 레오의 눈빛이 다시 환하게 점등되었다.

  “시스템 재가동. 최근 메모리 동기화. 일영 주인님은 유타와 사라가 있는 마스 연구실로 향했습니다.”

  “마스 연구실 그곳은 어디지? ”

  “데이모스의 중심부, 그곳에 있습니다. “


   데이모스


  데이모스엔 안개가 잔뜩 끼어 있었다. 아마 우주로부터 나오는 차가운 기온과 데이모스 내부의 뜨거운 기온이 섞여 안개가 생기는 듯했다. 레오는 힙겹게 내 등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레오, 너는 여길 어떻게 아는 거야? ”

  “저의 모든 부속들은 데이모스에서 수입한 것입니다. 심지어 프로그램마저도 데이모스에서 가져온 거죠. ”

  “그런데 왜 다른 안드로이드들과 달리 레오, 너만 아는 거야.”

  “저의 추측으론 포보스와 데이모스가 이어지는 통로와 가장 가까이 존재해 전파로 이어지는 잔여 데이터들이 제 메인 프로그램으로도 들어온 모양입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유타와 사라는 유나의 자식입니다.”

  “그래? 그 세 명 모두 누군진 모르겠지만 언니는 왜 이 데이모스로 온 걸까.“

  “유타가 구조 신호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데이모스는 이미 멸망했다며. “

  “아직 생존자들이 존재합니다. 점점 포보스의 자원이 고갈되어가자 레아는 데이모스에 남은 자원이라도 챙기고자 데이모스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남은 생존자들이 그들을 향해 최후의 반격을 시도했고, 결과는 당연히 데이모스의 완패였습니다. 그들은 포보스에게 남은 자원을 절대 줄 수 없다며 이곳, 마스 연구실에서 포보스와의 도킹을 해제하려 했습니다. 이 사실이 들통나자 포보스인들은 내부인들을 세뇌시킨 것처럼 데이모스인들도 세뇌시키려 했습니다. 그런데 포보스의 생각 외로 데이모스인들의 세뇌는 단 번에 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포보스는 여러 차례를 걸쳐 데이모스로 와 생존자들을 찾아 집중 세뇌를 시키고, 안 되면 곧장 처형에 처했습니다. ”

  “...... 그럼 언니가 구하려고 하는 애들은......”

  “맞습니다. 면역이 있어 포보스의 제거 대상입니다. ”

  “이 모든 게 아버지가 시작한 일일 수도 있겠네. ”

  “일영 주인님은 재윤 주인님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발 벗고 이곳, 데이모스로 달려온 것입니다. ”

  “언니가 무슨 말을 하면서 떠났니? ”

  “재윤 주인님이 그렇게까지 증오스러웠던 적은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

  아버지는 데이모스인들을 몰살시킨 장본인이다. 나도 그가 이렇게까지 혐오스러운데 언니는 오죽할까 싶었다.


  우선,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왔다. 식탁 위에 식기와 그릇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집 안을 두리번거리는 내내 그런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처음 아버지가 이곳을 왔을 땐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

  “저 높은 건물이 쥬피터 연구실입니다.”

  지구인들과 데이모스인들이 ‘산’ 이라고 불렀던 녹색 봉우리 두 개 너머 희미하게 건물이 우뚝 솟아 있었다. 나는 레오를 뒤로 하고 연구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문영 주인님.”

  레오가 불렀다.

  “원천은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

  “그 무거운 걸 뭐 하러 챙겨.”  

  “이건 저의 배터리가 될 수 있는 동시에 데이모스의 자원을 제외하곤 모두 소멸시킬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 그래. ”

  

  연구실로 향하는 길은 그렇게 순탄하진 않었다. 바닥 곳곳에 총알이 박혀 있거나, 원자 미사일을 맞아 싱크홀이 뚫려 있었고, 나무와 콘크리트들이 쓰러져 길을 막기도 했다. 그리고 나무와 건물 벽 따위엔 포보스를 욕하는 말도 간간히 볼 수 았었다.

  “산다는 게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서로를 죽여야만 했을까? ”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프로그래밍 되어있지 않습니다. ”

  포보스를 발견하기 전, 인간들은 모두 지구라는 같은 행성에 공존했다. 서로에게 외계인이 아니었다. 포보스행 우주선에 올라타기 전, 그들은 포보스인, 데이모스인 할 것 없이 서로를 죽이고 다치게 했다. 가족을 잃은 건 데이모스 뿐만이 아닐 것이었다. 그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 속, 편이 갈라지며 자연스럽게 반대 편 사람들에게 증오감이 생길 뿐이었다.

  데이모스인도, 포보스인도 시작은 그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 그저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 하나만으로 악착같이 버틴 게 전부였다. 서로의 증오는 결국...... 시발점은 없었다. 단지, 그 때의 감정이 후손 대대로 애려질 뿐이었다.


  귀를 찌르는 굉음이 머리 위를 지나쳤다. 포보스의 비행선이었다. 왠지 모를 적대감에 나도 모르게 콘크리트 밑으로 몸을 숨겼다.

  “포보스는 데이모스를 완전히 집어 삼킬 계획입니다. 지구에서 가져온 자원이 풍부하게 남은 데이모스를 차지하기 위해. 남은 데이모스인들은 스스로 자멸을 원하고 있습니다. 모두 함께 자멸하길 바라죠. 즉, 이 전쟁은 포보스와 데이모스 모두가 죽어야 끝날 겁니다.”

  레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정말 모든 데이모스인들이 자멸하길 바래? 그럼 유타와 사라라는 아이는 왜 구조 신호를 보낸 언니를 이곳에 끌어들인 건데? “

  “언제나 계산엔  표쥰 오차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

  처음엔 이 모든 이야기가 아버지가 시작한 이야기라고 의심했다. 그러나 아버지도 분명 누군가에게 세뇌를 받았고, 그 뜻을 따랐을 뿐이다. 그것이 우리 포보스인들에게 옳은 일이니까.

  “우선 언니를 찾으러 가자. ”

  비행선 굉음이 잇따라 들려왔다.

  “모두가 사이좋게 공존할 순 없었던 걸까요. 포보스에 오기 전, 지구에서 처럼 말입니다.”

  “그러게말이야. ”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곳곳에 묻어 나왔다. 당장 처음 통로를 통해 나온 곳도 아버지가 말 한 이 십 년까지 빈 집은 아닌 듯했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깡통을 주워 들었다. 깡통에 기재된 제조일자와 유통기한은 지금으로부터 일 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데이모스는 이십 년 전에 멸망했다고 했다. 지금 데이모스는 아수라장에 가까웠으나, 생존자도 있었다. 언니는 아버지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데이모스의 중심부, 마스 연구실로 향했다. 그곳엔 그녀에게 구조 신호를 보낸 유타와 사라가 있다고 했고 그들은 유나의 자식이라고 했다. 지금 레오 손에 쥐어진 저 돌은 포보스의 원천으로 데이모스의 남은 생존자들을 모두 세뇌시킬 수 있는 열쇠라고 했다. 그것이 내 머릿속에 정리된 모든 것이었다.

  레아의 사제는 B-52 캐비닛에 데이모스와 통로가 있음을 알고 그 열쇠를 맡겼다. 그럼 당연히 열쇠는 포보스가 아닌 데이모스로 보내질 테였다. 그때, 무언가가 뒷통수를 세게 후려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포보스 레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열쇠를 데이모스로 보내는 것으로 4차 전쟁은 선포된 것이었다. 원천이 데이모스 내부에 존재하는 이상, 데이모스는 세뇌받고 있다.

  “레오, 그 원천을 없애야 해. ”

  “안 됩니다. 이 원천을 마스 연구실에 가져다 놓아야 합니다. ”

  “이게 데이모스에 있는 이상, 전부 세뇌되어 버릴 거야. “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안해야 합니다. 포보스의 원천을 데이모스 내부 깊숙한 곳에 넣어야지만 둘은 완전히 분리될 겁니다. ”

  레오의 모든 부속과 프로그램은 데이모스에서 왔다. 그는 데이모스의 뜻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나는 차마 레오의 뜻을 따를 수 없었다.

  “포보스와 데이모스가 분리되고 그 다음은? ”

  “지구에서 가져온 자원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가는 대신, 더 빠르게 포보스가 멸망하겠죠. ”

  “그럼 그곳에 있는 내 가족들은? ”

  “……”

  “결국 너의 방안도 두 행성 모두가 멸종하는 그런 결말이잖아. ”

  “감안해야 할 대가입니다.”

  “서로 자기의 가족을, 친구를, 이웃을 죽여가면서 살아간다면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데 ? ”

  “저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지 않습니다. ”

   레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등 뚜껑을 열어 원천의 일부를 빼내었다. 그리고 원천을 빼앗아 들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허함에 발걸음이 멈추었다. 만약, 이 모든 사실을 언니도 알고 있다면……. 언니는 가족을 희생시키는 대신 아버지의 죗값을 치르를 걸 선택한 게 되는 거였다. 결국은 언니를 찾아야만 했다. 언니를 찾아 그녀의 계획을 물어야만 했다. 그리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면…… 누군가는 져버려야 했다. 다시 우뚝 솟은 건물, 마스 연구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마스 연구소는 우뚝 솟은 마천루와는 달리 엘리베이터도, 내부에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텅 비어 먼지들과 검게 코팅된 창문만이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어지는 길을 묻고 싶었으나 레오는 옆에 없었다.

  언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바깥에서 들리던 비행선 굉음이 갑자기 뚝, 끊겼다. 이윽고 우웅, 하는 기계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피해! ”

  누군가가 나를 세게 밀쳤다. 그 힘에 밀려 땅 깊숙한 곳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니, 미끄러지고 있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

  그녀의 목소리에 질끈 감았던 눈을 번뜩 뜰 수 있었다. 일영, 언니의 목소리였다.

  “언니! 우리가 얼마나 찾은 줄 알아? ”

  “그래, 그랬겠지. ”

  미끄럼틀은 끝없이 지하로 향했다. 그리고 꽤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내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개를 들자 붉은 빛을 내뿜는 거대한 구체와 그와 비슷한 크기의 구멍이 보였다. 그리고 바깥과는 달리 소리나 웃음을 짓는 사람이 아닌 멀쩡한 사람들이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누구야? 포보스인인가? ”

  초록색 옷을 입은 남자들이 내게 총구를 들이밀었다.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손을 들고 몸을 떨었다.

 “제 동생입니다. 총구를 거둬주세요.”

  언니가 손짓하자 남자들이 총을 거두었다. 그러나 아직 의심을 버리진 못 했는지, 여전히 방아쇠에 손가락이 걸려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언니를 찾으러 왔어.”

  “근데 왜 포보스의 원천을 들고 온 거지? 솔직히 말 해. 아빠가 시켰지? ”

  “아니야. 이건 레오가 들고 온 거야. 레아의 사제가 통로에 이걸 둔 거라고.”

  “정말이야? ”

  “응. 정말로.”

  “며칠 전부터 계속 비행선을 보낸다 했더니, 이제 전쟁을 선포했구만.”

  언니가 엄지 손톱을 잘근잘근 씹어 뜯었다. 그리곤 학자 한 명을 부르더니 내게서 포보스의 원천을 가져오라 손짓했다.

  “이게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 알지? ”

  “그런데 레오가 이걸 데이모스의 원천과 결합하면 둘이 분리될 수 있다고 했어. 그리고 데이모스인들이 그걸 원한다고.”

  “맞아. 그러나 아직은 아니야. 원천에서 나오는 최면에 면역자들을 찾았거든.“

  “면역자? ”

  “응. ”

  “혹시 그게 언니가 구하러 갔다던 유타와 사라야? ”

  “맞아. 동시에 아빠가 사랑했던 여자의 자식이기도 하지.”

  “……”

  영상에서 봤던 여자. 아마 그 여자가 유나였던 듯했다.

  “아버지는 큰 실수를 하나 했어. 아니, 여기 초창기 데이모스인들도, 포보스인들도 몰랐을 테지. 데이모스 원천에 한 번 접촉한 포보스인은 최면에 면역이 생긴다는 걸. 그리고 그 일부는 전달이 가능해. 그게 어떤 걸 촉매로 하는 진 모르지만“

  언니의 말에 실마리가 모두 맞추어졌다. 내가 ‘책’이라는 존재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이유. 아버지였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책을 일부로 티가 나는 곳에 숨겨둔 것이 된다. 누군가 이 데이모스를, 그가 사랑했던 유나를 구하기 위해.


  자매


  데이모스는 포보스의 공격을 받고 대비책으로 만든 지하 세계로 거처지를 모두 옮겨두었다. 이미 생존이 어려운 이들과 복구가 어려운 건물을 제외하곤 전부 승강기를 통해 지하세계로 내려왔다. 그러나 유타와 사라는 끊임없이 데이모스의 밖으로 향했다.

  “엄마가 저희를 기다리고 있어요. ”

  유타는 매번 메뉴얼을 읊듯 말했다. 그러나 군인들은 매번 그들의 탐험을 말렸다.

  그들의 엄마, 유나는 전구체였다. 포보스인과의 접촉 사실이 들통나자 데이모스 정부는 그녀에게서 흐르는 면역을 조사하기 위해 매일같이 생화학 실험을 진행했다.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어. 도대체 어떤 원인으로 이 여자는 면역이 생긴 거지? ”

  “이봐, 솔직하게 말해주게. 포보스인과 어떤 일이 있던 거야? 이건 우리 데이모스 전부를 위한 일이라고.”

  그러나 매번 유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재윤이 데이모스를 공격하기 위한 정보와 무기를 가지고 포보스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기 위해.

  “이건 인류의 미래가 달린 일이라고. 우리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이해해주게.”

  마스 연구실은 유나의 비명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결국 원인을 규명하지 못 한채 유나는 귀가 조치 되었다. 남은 거라곤 몸에 잔뜩 남은 수술자국 뿐이었다. 귀가 조치가 되었음에도 돌아갈 곳은 없었다. 그녀가 지하 연구실에 생체 실험을 당하는 동안 포보스의 비행선이 그녀의 집을 부수어버린 거였다. 이제 남은 것도, 갈 수 있는 곳도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유나? ”

  유나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등을 돌렸다.

  “유나 맞구나. “

  “왜 다시 여기로 온 거야? ”

  “네가 보고 싶어서. ”

  “다시 너의 고향, 포보스로 돌아가.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돼.”

  “한 번만이라도 너를 다시 안고 싶어.”

  “미안. 그럴 순 없어. 분명 후발대가 나를 감시하러 올 거야.”

  “나는 죽어도 상관 없는걸.”

  “아니, 살아. 죽지말고 살아. 그게 내가 간절히 바라는 일이니까.”  

  데이모스는 잊혀져야만 했다. 포보스와 데이모스 둘은 서로의 존재에 대해 몰라야만 했다. 그러나 탐구라는 욕심은 끝없이 서로를 갉아먹었다.

  유나는 재윤이 돌아간 통로에 큰 콘크리트 잔해를 막아 세웠다. 앞으로도 평생, 그를 만나지 못 하도록.


  유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감시자들의 눈을 피해 아주 평범하게. 사랑했던 재윤과 가정을 꾸리고, 둘을 똑 닮은 아이도 낳고. 그러나 그녀의 바램은 그 누구도 들어줄 수 없었다. 결국 평범했던 남자와 결혼을 해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두 아이를 낳았다. 이렇게라도 평범하고 싶었다. 그러나 유타와 사라가 세 살이 되던 무렵, 둘은 포보스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유나의 전구체에 존재하던 포보스의 원천이 둘에게도 물려진 것이었다.

  데이모스 정부는 여전히 포보스의 자원을 받는 대신 기술과 농업을 수출했다. 이제 어느덧 포보스도 안드로이드를 생산하고, 중력을 적응하는 기술도 완성했다고 했다. 유나는 암시장에서 들리는 포보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재윤을 떠올렸다.


  포보스의 기술은 무섭도록 빠르게 발전했다. 그들은 재빠르게 데이모스의 생존자들을 파악했고, 숨겨진 몇몇 거처지를 확인해 폭격을 퍼부었다. 그들이 공격을 멈추면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시 지하 공간으로 숨어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유나는 B-52로 통하는 통로를 버릴 수 없었다.

  “여보, 언제까지 이 낡은 집을 고집할 거야. 더군다나 여기 오래 있으면 너무 위험해.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지하로 가자. ”

  “그럴 순 없어. 나는 여기 있어야만 해. ”

  “…… 언제까지 당신 고집을 들어줄 순 없어. 나와 아이들만이라도 지하로 가겠어.”

  유나의 남편은 유타와 사라를 양 옆구리에 벌쩍 들어 엎고, 지하 통로인 마스 연구실로 향하려 문을 벌컥, 열었다. 그러나 그는 차마 바깥의 인기척마저 느낄 수 없었다. 문을 열자마자 순찰중이던 포보스 군인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군인들은 무전으러 무어라 주고받더니 곧장 유나의 집을 향해 총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는 머리와 목, 가슴을 포함해 총 열 네 군데의 구멍이 뚫렸다.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유나가 있는 안방으로 달려갔다.

  “얘들아, 어서 숨어. 가서 엄마가 잘 말 하고 올게. 그때까지 기다려야 해.”

  유나는 유타와 사라를 침대 밑에 숨기고는 콧잔등에 검지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유타와 사라의 울음이 그치자 유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이며 계단을 내려왔다.

  “제가 포보스와 접촉했던 모든 원천의 면역인입니다. 그러니 사격을……”

  군인은 그녀의 말을 듣지도 않고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목에 구멍이 뚫린 유나는 그대로 고꾸라져 계단을 구르며 떨어졌다.

  “이제 그런 거 필요 없다고. ”  

  아이들이 울 것 같았다. 그들이 숨은 곳을 군인이 찾을 것 같았다. 유나는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싶었지만 축 처진 팔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서서히 유나의 눈이 감겨갔다. 시야가 희미하게 흐려졌고…… 그리고 편안했다.

  유나가 숨을 거두자 그녀의 입에서 초록색 빛깔이 반짝였다. 불빛이 군인 살갗에 닿자 그들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다 천천히 집 밖을 빠져 나갔다.


  “언니, 이 원천이 데이모스 내부로 들어가면 데이모스와 포보스는 분리될 거야.”

  “알아.”

  “그럼 자원이 부족해진 포보스는 결국 멸망할 거야.”

  “그들이, 우리가, 아버지가 자초한 일이야.”

  “분명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거야. 둘이 분리되면 두 쪽 모두 소멸될 거라고.”

  “아니, 데이모스의 원통, 오베론은 어떤 행성이든 연결해서 자원을 끌어당길 수 있어. 즉, 다시 우리가 살 수 있는 행성만 찾는다면 언제든지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거지. 문영아, 너도 우리와 함께 가자. “  

  “……”

  “포보스인들은 선조부터 더럽고, 이기적이었어. 매번 전쟁을 일삼고,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살인따위 아무렇지 않아 한다고.“

  “그럼 데이모스인들은? ”

  “뭐? ”

  “지구를 떠나기 전, 포보스가 일방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게 아니잖아. 그저 서로 살기 위해 서로를 죽여온 거고, 그 중 선택받은 자들이 포보스인일 뿐이잖아.”

  “대화가 통하질 않네. 우리가 사실 자매가 아닌 건지, 아버지에게 완전히 세뇌당한 건지 모르겠구나.”

  “그 누구도 세뇌받지 않았어. 그저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을 뿐이야.”

   “누나……”

  나와 언니의 대화를 끊은  건 유타였다. 유타는 언니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베론에서 우웅, 소리가 났다. 이윽고 기계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포보스의 카론과 히드라, 닉스, 스틱스, 케르베로스들은 저 소리에 세뇌를 받고있을 거였다. 아무 것도 모르는 채. 레아와 원천과 접촉한 포보스인들을 제외하곤 과거도, 그들의 존재 이유도 알 수 없었다. 거대한 인공 행성이 포보스 내부에 원통을 꽂아 자원을 빼앗고 있음마저 알 길이 없었다.

  모든 생존자들이 몰살되어야만 끝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작가는 아버지가 아니다. 포보스인도, 데이모스인도 아니다. 그저 살고 싶다는 욕망만이 이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결말은 해피앤딩일까. 되짚어 생각해보다 한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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