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오 Dec 15. 2023

네가 없는 밤

고독의 의미



  내게 목걸이를 건네준 건 너였다.

  너는 두꺼운 겉옷 주머니 안에 손을 비집어 넣고 있었다. 숨을 내뱉을 때마다 새햐얗게 너의 숨결의 자취가 그려졌다. 고개를 푹 숙인 너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도 너의 움찔거리는 입술을 그저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시간은 그때 그대로 멈추었다. 그리고 아직 난 그 시간 속을 헤매고 있었다. 유난히 빛나던 그날의 가로등이 너와 날 기억해 준다.


  고독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물끄러미 선 채 저무는 해를 보고, 웅크리고 앉은 채 밤을 맞이해도 돌아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는 것. 하릴없이 흘러가는 시간, 야속하게도 나를 에워싸는 밤바람은 겉옷이 되어주지 못했다. 따듯하게 안아주던 너의 온기가 사라지는 걸 느끼며 하염없이 기다렸던 너를, 철석같이 믿었던 너를 보내며 내겐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을 때, 나의 존재 자체는 바스러졌다. 고독이란 새하얗게 얼어붙은 나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정의 내릴 수 없는 차가움이었다.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던 손끝에 밴 쇠 냄새가 익숙해질 즈음 콧잔등 위로 차가운 무언가가 떨어졌다. 이내 차가운 무언가는 어두웠던 골목을 밝히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은 와, 하는 감탄사와 함께 고개를 들었다. 하나둘씩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면서 그 위를 뛰어다녔고, 어른들은 주머니 속에 넣은 손을 빼내 옆 사람의 손을 붙잡았다. 도시는 한순간에 밝아졌다. 12월 마지막 눈은 새카맣던 아스팔트 바닥도, 낙엽이 모두 떨어진 나무도, 심지어 어두웠던 사람들의 표정까지도 모두 밝게 비추었다.

  나도 따라 웃어야 할까? 너만 다시 내 옆에 돌아온다면 마음껏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고개를 들면 마천루들 사이 높은 쇼핑몰이 우뚝 서 있었다. 그 꼭대기에 달린 시계는 도시의 흐름을 알려주었다. 시침과 분침은 완전히 수평을 이루고 있었다. 9시 3분. 해가 저문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너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네가 남긴 흔적마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네가 서 있던 자리, 네가 남긴 발자국 위엔 눈이 잔뜩 쌓여버렸고, 산란된 빛이 오랜 시간 전 네가 남긴 숨결을 지웠다. 그나저나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나는 여전히 네가 등을 돌린 그곳을 바라보고 있다. 네가 자취를 감춘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 이곳까지 너와 왔던 길을 돌아서 가야 할까? 헤맨다는 건 적어도 목적지가 존재하다는 것. 내게 목적지는 없다. 그러므로 헤매는 게 아니다. 다시 고독이 나를 얼린다. 9시 9분. 그냥 빨리 돌아와 줘,라는 버거운 무기력한 생각만을 곱씹는다.


  짧은 시곗바늘이 숫자 10을 가리켰다. 이제야 행복에 취했던 사람들이 내게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의아한 눈빛, 동정의 눈빛 수 십 개의 눈동자가 나를 힐끗거렸다. 그러나 나를 향해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배가 고파 웅크려 앉았다. 바짝바짝 타오르는 갈증도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높은 빌딩 위에 켜진 불빛이 하나둘씩 소등되고 있었다. 10시 6분이 되고 나서는 쇼핑몰 불빛이 모두 꺼졌다. 도시를 밝히는 건 새하얗게 쌓인 눈과, 도로 위를 지나는 자동차들의 불빛 그리고 가로등뿐이었다. 어두워진 도시의 차가운 공기는 번지고, 나는 그 고요함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점점 너와의 기억은 엉켜갔다. 나는 밝은 곳을 향해 움직이기로 했다가, 네가 날 찾지 못할까 다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저 멀리 희미한 네온사인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내게 오라 손짓하는 듯했다. 그곳엔 기름진 튀김 냄새와, 노릇노릇한 고기 냄새 등이 일렁이는 네온사인들과 함께 흐르고 있었다. 은빛 환상에 취해버린 탓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떼어냈다.


  이곳은 도시의 일부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사람들이 비틀거리는 도시. 은빛 환상은 이른 아침 안개처럼 거리를 잔뜩 채우고 있었다. 윤슬 같다. 그 위를 춤을 추듯 일렁이는 네온사인들, 그리고 우아했던 이들을 모두 부수는 알코올 냄새. 저들은 뭐가 좋다고 이 역겨운 냄새가 나는 물을 마시는 걸까. 도시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사람들의 언성은 높아져갔다. 처음 들어보는 욕설과 곳곳을 돌아다니는 경찰차. 이곳은 도시가 아니다. 아니, 아니길 바란다. 너와 함께한 도시는 이러지 않았다. 가끔 네가 얼굴을 붉힌 채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나는 눈을 찌푸리며 너를 피해 다니느라 바빴지만 너는 아량곳 않고 나를 쫓아다녔다. 만약 너를 그렇게 만든 게 이 도시라면, 나는 받아들일게. 너도 이 도시의 일부이니까.

  목적지 없는 산보가 계속되면 결국 너는 나를 찾을 수 없을 거야. 그런데 사람들은 왜 자꾸 나를 쳐다보는 걸까. 마치 나는 이런 곳에 있음 안 된다는 것처럼 나를 쳐다봐.

  다시 너의 자취가 남은 곳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처음으로 목적지가 생겼다. 그곳이 점점 가까워질 때마다 이따금씩 목소리가 아른거렸다. 마지막 네가 한 말은 미안하다는 사과였다. 고개를 푹 숙인 탓에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나는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 사과는 어떤 의미였을까, 곱씹어보다 금세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전히 그곳엔 네가 없었다. 너를 만나 덥석 끌어안는 상상을 마치 일어난 일인 듯처럼 했기에…… 나는 송두리째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똑같이 그곳에 물끄러미 웅크려 앉아 네가 사라진 곳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네가 건네주었던 목걸이를 만지작거린다. 내 이름과 없는 번호라 떠오르는 너의 전화번호가 적인 목걸이를.

  내게 목걸이를 건네준 건 너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 여름 그리고 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