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오늘이 기쁠 수 있나?
기쁜 날이냐, 고톹스러운 날이냐만 있을 뿐이다
“지금 어렵다고 해서 / 오늘 알지 못한다고 해서 / 주눅들 필요는 없다는 것 // 그리고 / 기다림 뒤에 알게 되는 일상의 풍요가 / 진정한 기쁨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 깨닫곤 한다 ”
< 내 나이를 사랑한다 / 신달자 >
<나이야 가라>라는 노래가 있다. 여고생 가수 김소연은 ‘나이야 가라, 나이가 대수냐, 오늘 이 순간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라고 상큼하게 노래한다. 그렇다. 내일 (앞으로 살아갈 미래) 쪽에서 보면 ‘오늘’은 틀림없이 ‘가장 젊은 날’이다. 그런데, 어제(살아온 날, 과거) 쪽에서 보면 오늘은 동시에 ‘가장 늙은 날’이기도 하다.
‘내 나이’도 오늘처럼 ‘가장 젊은 나이’이자 동시에 ‘가장 늙은 나이’이다. 늙음, 젊음이 무슨 대수냐? 그냥 오늘이 기쁜 날이냐 아니면 고통스러운 날이냐만 있을 뿐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 강은 “세계는 왜 이렇게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고 질문했다.
시인 신달자는 “오늘 알지 못한다고 해서 / 주눅들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다. 어느 모임 뒷자리였다. 술 한 잔씩 마시며, 모두 한마디씩 하기로 했다. 여러 한마디가 쏟아지는 중에, 한 친구는 시를 한 수 읊었다. 꽃에 관한 시였다. 모두 조용해졌다. ‘그렇구나! 시 한 수가 이렇게 기쁨을 준다!’
“ (---) // 나는 현재의 / 내 나이를 사랑한다 / 인생의 어둠과 빛이 녹아들어 / 내 나이의 빛깔로 떠오르는 / 내 나이를 사랑한다. < 내 나이를 사랑한다. / 신달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