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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하나 키우고 있나요

힘들고 지칠 때 꺼낼 수 있는 비밀통장

by 현동 김종남

“여기 와 보면 / 사람들이 하나씩 섬을 키우며 / 사는 까닭을 안다 / 사시사철 꽃이 피고 / 잎이 지고 눈이 내리는 섬 /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 별빛을 닦아 창에 내걸고 (---) ”

<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 / 이근배 >


몇 년 전 신안 12사도 순례길(섬티아고)을 걸었었다. 5번 필립의 집(행복의 집)이 있는 대기점도에서 6번 바오톨로메오의 집(감사의 집)이 있는 소기점도로 가려면 하루에 두 번씩 바닷물에 잠기는 노두길을 거쳐야 한다. 마침 썰물 때라 10여 분 기다리면 될 터인데 몇몇이 바지를 걷어 올리고, 바닷물이 다 걷히지 않은 노두길에 들어섰다. 섬, 바다와 하나 되는 경험이었다.


수평선으로 둘러싸인 섬은 지평선으로 둘러싸인 육지의 되풀이되는 일상을 단절한다. 섬은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기억으로 탈바꿈한다. ‘사시사철 꽃이 피고, 눈이 내리는’ 그런 신비의 섬을 마음속에 하나씩 키우고 있는가. 그 섬은 비밀스런 나만의 꿈을 간직한다. 힘들고 지칠 때 슬며시 꺼낼 수 있는 비밀 통장이다.

‘잠들지 않는 그 섬’을 향해 지금 흙길을 걷는다. 맨발로 흙을 밟으며, 새가 되는 꿈을 꾼다. “(---) / 꿈의 둥지를 틀고 / 노래를 물어 나르는 새 / 새가 되어 어느날 문득 / 잠들지 않는 섬에 이르러 / 풀꽃으로 날개를 접고 / 내리는 까닭을 안다 <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 / 이근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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