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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집 Oct 17. 2022

이웃에는 누가 살고 있나요

마을 이야기 3

 앞집도 옆집도 건넛집도 할머니들이 계십니다. 


 잘은 모르지만 요즘 시골에는 할머니들이 혼자 사시는 집이 많은가요. 가끔 텔레비전을 보면 할아버지들이 많이 계시는 마을도 있긴 하던데 우리 동네는 아무래도 할머니들이 휘어잡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처음 우리 마을에 갔을 때 이 폐가를 누가 샀나 하고 두리번두리번하시던 어르신들 모두가 할머니였다는 사실이 떠오릅니다. 비슷한 옷차림에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하신 할머니들을 한눈에 구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그저 길에서 만나면 무조건 소리 높여 인사하기 바빴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길에 잠시 세워둔 유모차나 지팡이만 봐도 누구네 할머니 것인지 다 아는 경지에 이르렀지요. 다들 부지런하시니 집 안에 계신 시간보다 마당으로 밭으로 혹은 경로당에 모여 계실 때가 더 많으니 마당에만 나가면 할머니들을 뵐 수 있거든요. 

이젠 뒷모습만 봐도 누구인지 단번에 알지요

 그중에도 앞집 할머니는 여장부입니다. 우리 집을 기준으로 동서남북 할머니들이 항상 같이 다니시는데, 앞집 할머니는 연세도 가장 많으신 데다가 가장 부지런하셔서 다른 할머니들이 ‘보통이 아니다’라고들 말씀하십니다. 마을 청소에 가장 앞장 서시는 건 물론이고, 풀 한 포기 그냥 지나치시는 법이 없습니다. 빗질이라도 시원찮게 하는 날에는 짱짱한 목소리로 누구든 혼이 납니다. 열심히 안 할 수가 없는 일이지요. 이번 추석 땐 앞집 할머니께 청소 잘한다고 칭찬받아 괜히 으쓱했답니다. 고수에게 인정받은 느낌이랄까요.


 골목 맞은 편엔 ‘살랑이 할머니’가 계십니다. 할머니 댁에서 처음 본 강아지 이름이 ‘살랑이’어서 그때부터 우리끼린 ‘살랑이 할머니’라고 부릅니다. 이전 글에 썼었던 ‘단정하고 정갈한 밭고랑’의 주인공이기도 하지요. 사실 이웃 어르신들의 밭농사는 모두 훌륭하지만 살랑이 할머니네 텃밭에는 유난히 눈길이 자주 갑니다. 심어 놓은 작물 말고는 작은 풀 하나 없고, (새벽에 하나씩 뽑으시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나란히 쭉 뻗은 밭고랑은 한번 더 말하면 입만 아프고 , 같은 배추며 양파며 고추인데도 왠지 할머니네 작물들은 더 예쁘고 탐스러운지요. 엄마랑 말하길 농사도 할머니랑 똑 닮게 하신다고 했답니다. 가끔 지나가시는 길에 우리 밭을 보시고는 참하게 잘 했다며 칭찬해주시는데 아직 할머니 따라 가려면 한참 멀었지요. 


 옆집 할머니랑은 아마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습니다.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둔 말동무지요. 저는 담에 붙어 서서 할머니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서서 한참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담에서는 할머니가 직접 캐다가 만든 쑥떡도 넘어오고 수박이랑 옥수수도 넘어오고 엄마가 말린 곶감이나 군고구마도 넘어갑니다. ‘언니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나가 보면 할머니 이야기도 해주시고 동네 이야기도 해주시고 가끔은 여기저기 아프다고 속상하다는 이야기도 하십니다. 언젠가 할머니와 저의 산책길이 같았던 날에 들려주신 옛날 이야기도 문득 떠오릅니다. 

매일 같이 산책하는 나래(강아지)랑 나래할머니도 계십니다

 이제는 제가 이 마을에서 무얼 하며 지내는지 대부분 아시는데요, 처음에 여기서 책방을 한다고 했을 땐 여기서 책을 판다는 것인지 빌려준다는 것인지 구경만 하는 곳인지 심지어 입장료(?)를 내야 하는 곳인지 물으시며 의아해하셨지요. 그런데 요즘에는 택시를 타고 동네에 들어오는 새로운 사람들은 왠지 책방을 찾아온 것 같다며 “책방에 왔는교, 저쪽으로 가보소.” 하고 길을 알려주시는 귀여운 할머니들입니다. (이 이야기는 손님들께 직접 전해 들었답니다.) 


 다른 어르신들 이야기도 아직 한 보따리입니다. 사실 좋은 이야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이웃만 있는 것도 아니지요. 사람 사는 곳이 다들 그러하니까요. 그래서 어르신들이 어려울 때도 있고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상황에도 맞닥뜨리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할머니들과의 시간은 웃을 때가 더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구요. 모두들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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