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 나는 바쁜 부모님 때문에 주말만 되면 외할머니댁에 자주 갔었다. 그리고 방학 시즌이 되면 외할머니댁이 나의 놀이터가 되었다.
나의 친구는 작은 외삼촌, 이모들, 사촌 오빠, 어린 여동생들이었다. 이렇게 모두 어린 나를 살뜰히 보살펴 주시고 사랑해 주셨다.
식사 시간이 될 때마다 작은 식탁에서 외할아버지와 나 그리고 삼촌이 먼저 밥을 먹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식사하시기 전에 항상 투박하지만 온정이 담긴 한마디로 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셨다.
“지민이도 같이 밥 먹자.”
외할머니께서는 내가 갈 때마다 삼시세끼 손수 음식을 만들어 먹여주셨다. 식탁 위에 올라오는 나물과 전 그리고 생선, 육류 등의 반찬은 깔끔하고 정돈되게 그릇에 담겼다. 특히 동그랑땡은 500원 동전 크기와 같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부드러운 곡선을 유지했다. 음식이 예뻤다.
그리고 지금도 선명한 할머니의 예쁜 음식이 또 있다. 바로 만두이다. 외할머니의 손으로 빗어진 만두 역시 만두 속 터짐이란 찾아볼 수 없고 일정한 동그라미 모양을 유지했다. 만두 속에는 다진 돼지고기, 당면, 부추, 숙주, 참기름, 마늘, 두부 김치 등이 들어갔다. 그리고 할머니만의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다. 바로 들깻가루이다. 얇은 만두피도 할머니의 손끝에서 일정한 모양과 크기 그리고 환상적인 맛의 작품으로 탄생했다.
완성된 만두는 먹는 방법에 따라 맛의 차이가 있다. 찜기에 쪄서 먹으면 그냥 밋밋하다. 그런데 달궈진 기름에 튀기듯 구워 먹으면 기름과 돼지고기의 풍미, 바삭해진 만두피 그리고 칼칼한 신김치 맛이 절정에 올라 진정한 김치만두 맛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내가 성인이 되어 대학교 졸업과 취업 등으로 삶이 바빠지면서 외갓집 방문이 서서히 뜸해졌다. 그리고 자연스레 할머니의 음식도 나의 기억에서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삼십 대 후반이 되고 두 아이 엄마가 된 후 어느 날 갑자기 잊고 지냈던 외할머니표 김치만두가 생각나 친정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바로 외할머니께 전화해서 김치만두를 만들어 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옆에서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외할머니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할머니, 이제는 몸이 많이 힘들어서 만두 못 만드시겠데...”
순간 나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내가 잊고 지냈던 시간만큼 할머니는 연세가 드셔서 이제는 거동이 불편해지셨다는 현실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며칠 후 엄마는 외할머니를 대신해 만두를 만들어주셨다. 그래도 외할머니의 손맛을 제일 많이 닮은 딸이기에 나름 기대를 품고 찐만두를 한 입 베어 물었는데... 그때의 외할머니표 김치만두와 맛이 달랐다.
‘이상하다... 분명 외할머니 요리 레시피로 똑같이 만들었는데 왜 맛이 다르지?’
이제는 외할머니께서 만두가 드시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딸인 이모들이 직접 만두를 만든다. 할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이모들은 정성스레 만두를 빚어 할머니에게 드린다.
그래도 그 시절 외할머니표 김치만두와 맛이 다르다.
문득, 유년 시절 자주 먹었던 외할머니의 음식들이 떠오르면서 나의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버린 지금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