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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운 Nov 14. 2022

런던 도착. 이번엔 충전 어댑터를 잘못 들고 왔다.

이 두근거림의 이름은 낭만인가요, 스릴인가요?



3. 런던에 있으면 모든게 낭만인 줄 알았다.

런던. 그리고 나의 첫 유럽. 이보다 더 낭만적인 말이 있을까? 아니다. 낭만은 안정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란 걸 알게 됐다. 나의 런던은 낭만적이지 않았지만, 주저하지 않은 미소들을 참 많이 볼 수 있었다.



13. JUNE. 2022


 런던에 도착했다. 

이제 우리가 한국에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한 대형사건을 마주해야 할 때가 왔다.. 이 감정을 낭만이라 치부하기엔 생각보다 너무 크게 뛰었다. 당시 영국 히드로 공항에선 파업 문제로 인해 꽤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다. 그중, 많은 사람들이 걱정한 문제는 바로 ‘수하물 분실 문제’였고 그 많은 사람들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를 대비해 만발의 준비를 해왔다. 먼저 위탁수하물용 캐리어는 단 1개, 중요한 물품은 모두 기내용 캐리어에 넣어 들고 왔다. (그리고 이 기내용 캐리어는 비행기 탑승구에서 지퍼가 터졌다 *2편 참고) 그리고 여행자보험을 비싼 것으로 2개씩이나 들었으니 여기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때부턴 보험 친구가 알아서 처리해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캐리어가 무사히 나오기를 빌며 한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탑승한 비행기의 캐리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캐리어는 우리가 베트남에서 경유하고 있을 때, 먼저 영국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초조함과 함께 15분이 흘렀다. 서서히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한다. 우리 주변에 점점 한국 사람들이 많아진다.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 보여 곰곰이 생각해보니, 베트남 공항버스를 함께 30분이나 기다린 사람들이다. 저희는 여기에서도 불안해하고 있네요.


그렇게 시간이 20분쯤 흘렀을 때인가, 저 멀리서 익숙한 캐리어가 보인다. 이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루 4000개가량의 짐들이 분실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기에) 잃어버릴 확률이 더 크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안전하게 우리의 품으로 돌아오다니!캐리어를 찾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여행이 성공적으로 느껴졌다. 사실 캐리어를 잃어버릴 수 있단 생각에 대처방법을 생각해두긴 했지만, 막상 잃어버렸다면 곧바로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캐리어를 찾고 마음이 그제야 놓였는지 뒤늦게 영상을 남기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부는 영국에서는 야외 공간이 최고의 공간인 셈이다 ©오운



유심을 아주 어렵사리 바꾸고, 영국 지하철에 탑승했다. 아침 8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던 터라, 출근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한 손에 신문이나 책을 들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절로 여유가 생긴 것 같았지만 기둥에 캐리어를 고정시켜 꽉 잡고 있는 나의 모습에서 여유를 찾기엔 어려워 보였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순간 중 하나는 유럽 지상(땅)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의 감정이었다. 이는 나보다 유럽을 먼저 찾았던 지인이 했던 말 때문이다.



‘나는 지하철에서 나와 지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야말로, 여행을 가장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해’.



맞다. 여행은 익숙지 않은 곳을 활보하는 것 아닌가. 여행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결국 ‘여행’이란 순간을 가장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은 처음으로 여행지를 오감으로 접한 순간일 것이다. 지퍼가 열린 캐리어를 소중히 안고 수많은 계단을 올라, 마침내 지상에 발을 디뎠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7월의 시원한 바람은 27년 동안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건물들은 한국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드라마 셜록에서 보던 풍경이다. 사람들의 머리색이 우리와 다르다. 너무 많은 정보들이 한 번에 머릿속에 입력되는 기분이다. 나는 왜 더 일찍 이곳을 와보지 못했던 것일까.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어서 나의 세포들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마침내 지상에 발을 디뎠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7월의 시원한 바람은 27년 동안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건물들은 한국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드라마 셜록에서 보던 풍경이다. 사람들의 머리색도 우리와 다르다. 너무 많은 정보들이 한 번에 머릿속에 입력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왜 더 일찍 이곳을 와보지 못했던 것일까.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어서 나의 세포들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위기를 겪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조금 이상하게 일이 풀리긴 했다.




인테리어광인 나에겐 이 모든 것이 영감이었다 ©오운




숙소도 조금 힘겹게 도착했다. 길을 헤매고 헤매다, 창문으로 우리를 맞이한 호스트 덕분에 이 에어비앤비에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우리가 묵을 집은 참 멋졌는데, 색감이 다양했지만 과하지 않은 인테리어가 인상깊었다. 바깥 나무들은 창문이 액자처럼 보이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호스트는 우리가 들어오자마자, 규칙을 전달하고 필요한 것들을 세심히 챙겨주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관광지와 정말 가까워. 버킹엄 궁전이랑 빅벤도 가까우니까 꼭 가봐’.

- 그럼요. (그거 보러 17시간을 날아온걸요.)



1)

(참, 전편을 보신 분들은 이 숫자의 의미를 아실 겁니다. 바로 위기라는 뜻이죠)

기분 좋게 씻은 후, 보조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 콘센트와 어댑터를 캐리어에서 꺼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다. 아무리 시도해도 어댑터가 꽂히지 않는다. 쌍둥이가 주문하여 들고 온 거라 실물을 본 건 처음이었는데, 모양이 이상하여 찾아보니 한국에서 외국 물건을 쓸 때 쓰는 용도인 어댑터였다. 완전히 반대로 들고 온 어댑터였던 것이다. 내 충전기.. 보통 충전을 못하게 되면 다들 휴대폰을 가장 먼저 걱정할 텐데, 카메라 충전을 걱정하는 나.. 혹시 유명한 포토그래퍼나 유튜버가 될 재목이 아닐까..

아무튼 결과적으론 오늘 우리가 영국에서 해야 할 일은 정해졌다. ‘캐리어’와 ‘어댑터’ 구매하기. 그리고 관광지 구경이 가장 하위 순서다.



* List to do
1) 캐리어 구매
2) 어댑터 구매
3) 관광지 돌아다니기




많은 사람들이 버킹엄 궁전 앞에서 각자의 기억을 남기고 갔겠지 ©오운




숙소에서 나와 15분쯤 걸으니, 버킹엄 궁전이 보였다. 나는 궁을 참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얼마나 좋아했던지, 대학교 1학년 때 시나리오를 쓰는 수업에서 궁궐을 배경으로 한 글을 썼다. 오랫동안 관심을 가졌던 만큼, 글이 줄줄 써졌던 것은 당연했다. 초등학생 때 봤던 만화 원작 드라마 ‘궁’의 영향이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궁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궐에 사는 자신을 꿈꿔본 적이 있지 않은가. 나 또한 그랬다. 그때부터 항상 실존하는 왕실에 대한 낭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궁전을 두 눈으로 담다니, 감정이 이상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모든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길, 비행기에서 영화 ‘스펜서’를 감상한 것을 시작으로 최근 넷플릭스 ‘더 크라운’, ‘천일의 스캔들’ 등 영국 왕실과 관련된 영화들을 찾아봤다. 버킹엄 궁전에서의 기억 때문이었다. 영화는 대체로 모두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항상 긴장감이 영화 내내 감돌았다. 권력과 명예, 그리고 자신의 삶을 모두 건 사람들이 궁전에 참 많은 탓이다. 그렇다고 안쓰럽게만 보인 것은 아니다. 모두가 영국, 자신의 나라에 대한 자부심은 커 보였으니. 조금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 ‘queen(여왕)’이란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몇 있다. 대표적으로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은 피겨여왕 ‘김연아’인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녀를 떠올릴 때 그 엄청난 자부심과 웅장함이 동시에 느껴지지 않는가. 영국 사람들도 왕과 여왕을 떠올렸을 때, 그런 감정이 들지 않을까 지레짐작해보았다. (물론 성군이었을 경우에 한정될 수 있지만)


버킹엄 궁전에서 나오니, 점점 배가 고파온다. 사실 배고프단 소식을 전한 배는 내 것이 아니라 쌍둥이의 배였다. 여행 내내 우리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는데, 나는 별로 먹지 않지만 많이 움직이는 타입이고 쌍둥이는 많이 먹지만 체력이 좋지 않은 편이었다. 어쩌면 쌍둥이가 정상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하루에 한 끼를 먹어도 괜찮은 수준이었으니. 기름진 기내식 때문에 고생한 쌍둥이는 한식 식당을 찾고 있었는데, 나는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한식을 먹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고 결국 말싸움으로 번졌다. 우린 그 무엇도 정하지 못하고, 서로 떨어져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멋진 꽃들과 예쁜 나무들을 사랑한다 ©오운




2)


바로 앞에 있던 세인트 제임스 공원에 들어섰다. 혼자 길을 찾고 걷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새들이었다. 나는 조류 공포증이 있다. 영국 공원에는 참 많은 새들이 있었다. 그들의 종류는 다양했고, 대체로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겁이 없었다. 결국 물러서야 하는 쪽은 새가 아니라, 나였다.


너희 비둘기를 위해 내 기꺼이 뛰어드리리다. (쓸데없이 비장)


이 멋진 풍경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저 뛰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시선들이 점점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감상을 방해하기 싫어 입에서 나는 소리는 어찌어찌 잘 막았으나, 화들짝 놀라는 반사신경이나 열심히 뛰고 있는 다리는 막지 못한 탓이다. 외국은 공원에 워낙 많은 비둘기나 오리들이 있는 경우가 흔해서인지 다들 새들과 함께 있는 이 상황이 익숙한 듯 보였지만, 혼자 열심히 뛰어다니는 20대 여자를 본건 처음인가 보다. 그래도 다행히 ‘쟤 왜 저래’라는 표정보다는 내가 제법 귀엽다는 표정을 다들 짓고 있었다. (오해 아닙니다. 아닐.. 겁니다)


“You don't have to be too scared. You're bigger than them!”

(너무 겁먹지 않아도 돼. 네가 걔네들보다 크다고!)


그걸 몰라서 뛰고 있겠냐고요 엉엉. 하지만 그들도 내가 조류 공포증이 생긴 이유를 안다면 뭐라 하지 못할 거다. 때는 중학교 2학년, 일주일에 2번이나 비둘기 똥에 맞았다. 한 번은 야외에서 진행된 과학 실험시간, 그리고 다른 한 번은 공원이었을 거다. 그때부터 비둘기가 날아다니면 ‘아유 더러워!’하고 고개를 반사적으로 숙이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비둘기와 같은 새는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또 한 번은 작년 회사 출근길에 큰 까마귀들이 길을 막아섰던 적이 있었다. 까마귀는 정말 큰 거 아시나요? 주변이 갈대숲이라 더욱 새들이 많았는데 비둘기와 까마귀들이 구역 싸움을 하고 있던 찰나, 내가 딱 등장했었던 것 같다. 싸움에 잘못 꼈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러곤 한참을 제자리에 있었다. 지각이 임박한 것을 인지하고 나서야 다른 길을 선택하여 돌아갔더랬다. 뭐지, 왜 새랑 관련된 에피소드 이야기하는데 신난 거지? 아무튼 그랬다.


다시 영국 공원으로 돌아와,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있어 조금 머쓱하긴 했지만 전혀 악의적인 미소가 아니었기에 나 또한 ‘허허’하고 사람 좋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한편으로 기분이 이상했다. 관심을 받아서라기보단, 이상하게도 사람들을 통해서 영국을 제대로 느끼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세인트제임스공원에서 적어도 20분은 머무르며, 잘 알지도 못하는 모네 이야기를 한참 떠들었다. 아마 이런 공간을 보며 그런 멋진 그림을 그렸으리라고 ©오운



공원 중간에 있는 다리에서 쌍둥이와 드디어 조우했다. 다행히 서로 화가 좀 식은 상태였다. 하긴 이 멋진 풍경을 보면서 악한 감정이 여전하기는 누구라도 쉽지 않았을거다. 무엇보다 둘 다 조류 공포증이 있는 탓에 열심히 뛰어다니며 체력을 뺀 게 신의 한 수였다. 새와는 무관하게 공원은 참 멋졌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런던 아이는 이 감격을 격하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얼마나 좋았는지 브이로그를 찍겠다는 사람(=나)이 이곳에서 영상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한국에 돌아와서 영상을 돌아보니, 내가 정말 좋았거나 당황한 일들을 겪고 있을 때는 영상을 찍지 않았더라. 하지만 전화위복이란 생각도 든다. 영상에 담기지 않은 재밌는 에피소드를 글로 풀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


 왜 ‘공원은 유럽과 미국이 진짜다!’라고 말하는지 이제야 알겠다. 역시 경험이 가장 큰 배움이다.

공원에는 휴대폰을 만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했을 뿐. 책을 읽고, 사람들과 둥글게 자리를 만들어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다. 심지어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까지. 한강공원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뭐 둘 다 각자의 매력이 있는 법이지만. 그래도 이 곳의 모습이 나는 꽤나 마음에 들었나보다. 나도 ‘평소에 책을 들고 다녀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던 첫 번째 순간이 되었다. 내일은 이곳에서 아침 피크닉을 즐겨봐야겠다.


갈증이 난다. 주변에 있는 카페에 잠시 들어가야겠다. 그리고 그렇게 우연히 만났다. 나의 인생 바닐라라떼를!




* 위 사진들은 모두 오운 (@daa_wooon) 개인 권한 저작물이며, 개인/상업적 이용을 금하고 있습니다.

© 2022. 오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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