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동안 1차성 면역결핍증을 가진 6개월 된 아기를 치료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냈다. 저번 주 유전자 검사 결과 나오고, 국내에서는 아직 보고된 적이 없는 희귀 면역결핍 질환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내일은 퇴원 후, 더 많은 경험을 가진 교수님께 진료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 한 달은 나에게 면역이라는 세계의 섬세함을 다시금 일깨워준 시간이었다. 면역체계의 스위치가 제때 켜지지 않으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감염에 노출될 수 있는지, 그리고 피부와 점막이라는 얇은 장벽이 얼마나 중요한 방어선인지를 절실히 느꼈다.
그 바쁜 나날 속에서도, 오랜만에 올라오신 부모님이 끓여주신 따뜻한 토마토 수프가 마음을 녹였다. 따뜻하게 먹으라며 건네시던 손길에, 어쩌면 그저 건강하게 태어나 이만큼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예전에 즐겨 읽던 책을 꺼내 들었다. 책 속 문장들이 한 장 한 장 마음에 다가오는 하루였다.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이런 면역계 구성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러나 산달을 다 채운 아기의 면역계는 불완전하지 않고, 덜 발달된 상태도 아니다. 면역학자들이 <순진하다>고 부르는 상태일 뿐이다. 그 면역계는 아직 감염에 반응하여 항체를 생산할 기회를 경험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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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은 아기의 면역계를 개인 지도하는 선생으로, 면역계로 하여금 아직 만나지 못한 병원체들을 기억하도록 가르친다. 백신을 맞든 안 맞든, 아기의 생후 첫 몇 년은 면역 속성 교육 기간이다. 그 몇 년 동안 아기가 흘리는 수많은 콧물과 아기가 겪는 수많은 열은 면역계가 세균 어휘집을 공부하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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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면역계의 세포들이 삶이 서로 키스하고, 순진해지고, 먹고, 배설하고, 표현하고, 켜지고, 지시받고, 제시하고, 성숙해지고, 기억하는 삶이라는 걸 알았다. [내 학생들하고 똑같네] 시를 가르치는 교수인 친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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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강의에서 떠오른 하나의 서사란 게 있다면, 그것은 면역계와 그것이 공진화하는 병원체들이 상호 작용을 벌이는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는 가끔 진행 중인 싸움으로 묘사되곤 하지만, 그렇더라도 아파치 헬리콥터와 무인드론이 동원되는 싸움은 아니다. 그것은 그보다 재치를 겨루는 싸움이다. [그러자 바이러스는 그보다 더 똑똑해져서, 천재적인 꾀를 냈습니다. 우리 전략을 가져다가 우리에게 맞선 겁니다] 교수는 이런 식으로 말했다. 그의 이야기에서, 우리 몸과 바이러스는 치명적인 체스 게임에 푹 빠져서 서로 겨루는 두 지성이었다.
<면역에 관하여> -율라비스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