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밥 먹는다는 것의 의미

둘 다 파워 F라 다행이야

by 다씽

MBTI 가 유행하기도 전에 나는 이런 말을 많이 했다. "우리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해"라는 얘기를 말이다. 이 말은 유라를 포함한 학창 시절 모임인 낙굴 멤버들과 내일로 기차여행을 갔을 때 많이 했었다. 이때가 유라랑 제일 오랜 기간 여행을 갔던 기간인데 무려 6박 7일에 내일로 기차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기차 여행을 떠나다 보니. 다양한 변수가 발생을 했다. 그때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었던 시절이라 모든 것을 사전에 검색한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계획이 틀어지는 것에 스트레스받아하던 친구들에게 내가 항상 말했던 말이 "장소보다 누구와 함께가 중요하다"는였던 거다. 지극히 P(유연함, 즉흥적)스럽고 F(감성적)스러운 이야기다. 그렇게 MBTI가 나오기 전부터 상당히 P, F영역을 가지고 있어서 검사를 통해서 확실해졌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 말을 왜 하냐면 제주도에 올 때도 아주 P스럽게 계획 없이 방문을 했다는 걸 일러두려는 것이다. 구조대 1팀인 유라의 가족이 온 다음 날 아침 나는 깜짝 놀랐다. 런던 베이글이 눈앞에 펼쳐진 거다. 아주 P인 나 조차도 제주도 런던베이글은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던 터였고 그래서 한번 기회가 되면 먹어보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유라 남편이 포장을 해온 거다.

2박 3일의 제주 일정에서 무엇을 할지 미리 계획해 왔고 시간에 맞춰 계획을 실행하는 모습에서 배울 점이 참 많았다. 가족들을 위해서 맛있는 것을 미리 확보하는 모습 오픈 시간에 맞춰 줄을 서서 베이글을 사 온 실행력을 아주 높이 산다. 베이글을 한 입 베어 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진짜 맛있는 건 런던베이글이 아니라 그 베이글을 사 온 사랑과 함께라는 양념이 더욱 이 베이글을 맛있게 만들었다. 제주도에 자주 왔지만 올 때마다 발이 닿는 곳만 가던 나였다. 일부 유명한 곳을 체크해 두긴 했지만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이슈들 배고픔이라던지 식사 때를 놓친다던지 하게 되면 그냥 근처에 있는 식당을 가곤 했다.


어딜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한 나였기 때문이다. 이번 제주 한 달 살이도 마찬가지다. 한 달 살이는 보통 가족이 함께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의 경우 두 가족이 함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대 가족은 오랜 지인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우정을 기반으로 형성이 된 가족이지만 더욱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거기에 상대의 가족이 함께한 시간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가족이기에 편안하게 대할 수만은 없던 한 달짜리 가족은 나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무언가를 계속 나눠 주었고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자세히 지켜봤다. 유라의 남편 입장에서는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함께한 여행이었다. 유라가 없이 비행기를 타고 장인내외를 모시고 왔었던 여행인 거다. 불편하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친부모님을 모시고 온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라 남편은 유라 부모님에게 맛있는 걸 대접했고 또 함께는 한 달짜리 가족인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대우를 해주었다. 아침에는 런던 베이글을 먹었고 점심에는 서귀포에 있는 해산물 전문 식당인 항해진미에서 대접을 받았다. 유라 남편이 부모님을 위해 준비한 식당이었는데 우리도 함께 가는 것을 이야기해 주셔서 덩달아 제주도의 멋진 해산물 요리를 즐길 수 있었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식당에서 해산물 요리를 즐기는 그 순간은 이게 바로 제주다. 제주가 내 입으로 들어온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또 그런 맛있는 음식을 잘 먹을 수 있도록 유라 부모님께서 아이들도 봐주셨다. 그동안 나는 제주를 맛있게 음미했다. 원체 회를 좋아라는 터라 회가 눈앞에 있는데, 아이들 때문에 못 먹을 생각에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다 사라졌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유라 가족은 따로 준비한 관광 코스로 떠났고 나와 아이들은 근처에 있는 소품샵에서 제주 소품을 골랐다.



맛있게 식사 대접을 해 준 마음이 너무 감사해서 소품샵에서 제주에 왔다! 하는 것을 보여줄 귀여운 아이템을 골랐다. 바로 감귤 모자. 서아와 호진이 커플로 써도 너무 귀여울 것 같아서 모자를 구입을 했고 효린이도 그동안 제주살이를 잘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감귤머리핀과 원하는 선물도 사줬다. 그렇게 우리도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 주차를 하고 내리는데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거다. 냄새에 이끌려가니 유라는 맛있는 김치찜을 해두고 있었다. 흑돼지가 들어간 푹 익은 김치에 장시간 끌어내어서 정말 맛있는 김치찜이었다. 국물 한 숟갈 떠먹는데 솔직히 이런 말하면 그렇지만, 우리 엄마가 끓여준 김치찌개보다 맛있었다.
낯선 섬에서 맞이한 집밥의 맛이 어떤 거다. 그걸 유라 엄마가 해준 게 아니라 유라가 한 거다. 나의 한 달짜리 가족의 아내(ㅋㅋ) 유라 말이다. 사실 유라는 10년 동안 근무한 영양사다. 아이 출산 전에 퇴직을 하고 현재는 전업주부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수년간의 영양사 활동이 각종 음식을 만드는데 스킬을 보여주었다. 역시 짬바는 무시 못하는구나 했다. 이거 안 어려워 '그냥 김치, 돼지고기 넣고 푹 익히면 땡이야'라고 말하는데 정말 쉽게 이야기했지만 요. 알. 못 들은 그렇게 해도 다 태워먹기 일쑤 아니겠는가? 아무튼 제주 살이를 하면서 유라를 통해서 얻어낸 음식 스킬은 지금도 집에서 활용할 정도다. 가족을 위해 시간, 정성을 쏟은 유라의 김치찜은 함께 맛있는 걸 먹고 함께 그 추억을 쌓는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술을 즐기지 않은 가족이다 보니 가볍게 맥주 1잔씩 했는데 살짝 알딸딸한 취기를 빌러 유라 가족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정말 맛있는 식사를 대접받았고 앞으로 유라와 잘 지내다가 안전하게 가겠다.', '지금 유라 아빠처럼 제가 지금 한 달짜리 가족이 아빠가 되어서 안전 운전하며 아이들을 보살피겠노라고 걱정하지 마셔라. 제 직업이 뭔지 아시지 않느냐? 용감한 군인으로서 우리 5명 제가 잘 지키겠노라'라고 말이다. 취기를 빌려 거창하면서도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했댔다. 하지만 부모님과 남편은 '그래 감사하다. 함께 와줘서 고맙다. 둘의 우정이 얼마나 좋으면 이렇게 한 달을 살겠느냐. 덕분에 우리도 제주도도 오게 되어서 너무 좋다.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서 다음에 또 보자고 하셨다.' 함께 둘러앉은 식탁에서 나는 유라의 가족이 된 듯한 기분을 선물 받았다. 유라네 가족이 함께 하면서 맛있는 식사, 아이들 돌봄 등의 챙김을 받으며 '나는 한 달 동안 유라에게 어떤 가족으로 기억되고 싶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 유라 가족이 나에게 건넨 건 음식일지 몰라도 내가 받은 건 배부름을 넘어서 부러움 사랑 그리고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제주를 만끽하기도 전에 이르게 방문한 구조대는 제주 자체보다 함께 살아갈 가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 감정이 남은 나의 한 달을 풍요롭게 만들 자양분이 된 것이다. 내가 추구했던 어디를 가느냐 보다 누구와 함께하느냐 말이다.

내가 제주에서 배운 것은 아주 분명했다. 가족은 혈연만이 아닌 함께한다는 믿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 서로를 자세히 지켜보고 24시간을 함께 나누겠다고 선택한 사람들이 생활을 함께 꾸리며 생존을 공유할 때 비로소 가족이라 얘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는 돌, 바람, 여자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이 섬에서 살아내기 위해 꼭 필요했던 건 밥, 사람, 그리고 바람(hope)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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