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
20살, 19살이라면 누구나 설레며 기다릴 나이. 20살이라 함은 자신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성인이라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운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고3들은 대입시험을 치르고 어디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할지 고민한다. 내가 학생일 때는 아버지께서 아침마다 자가용으로 우리 삼 남매를 등교시켜 주셨다. 어딜 가던지 아버지는 싫은 내색 없이 태워다 주셨고 급하면 대중교통이 있다 보니 나는 운전면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다. 막연하게 언젠가 차가 생기면 그때 따면 된다며 운전면허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유명 관광지의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 사고를 일으킨 사람이 뇌전증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매스컴에서 반짝 화제가 됐었다. 나는 당시 댓글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뇌전증을 가진 사람이 운전을 했으니 욕을 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했던가? 그 운전자는 뇌전증을 가졌음에도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고 기사에 나와 있었다. 문제의 요지는 약을 먹지 않고 발작이 조절되지 않으면서도 운전한 그의 선택이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물타기 되어 논점이 흐려졌고 결국 뇌전증이라는 위험한 병을 가진 사람들이 운전을 하고 다닌다며 대중의 공포심만 키웠다. 사람들은 생소한 뇌전증이라는 병에 대한 단편적 지식만으로 뇌전증을 가진 모든 사람을 예비 범죄자 취급하였다.
술을 진창 마신 사람이 운전대를 잡는다면 술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선택을 한 것에 책임을 묻는 것처럼 뇌전증을 가진 사람이 약을 먹지 않은 상태로 운전대를 잡은 것 또한 그의 잘못된 선택이 문제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기사의 댓글 중에는 뇌전증을 가진 사람이라면 운전하지 못하게 법으로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뇌전증과 관련된 법은 이미 존재한다. 뇌전증을 가진 경우 도로교통법 제82조에 의거하여 운전면허 결격사유이지만 수시적성검사를 통해 의료전문가와 교통전문가들의 판정에서 합격을 받고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수시적성검사 해제는 치료를 받던 병원 진단서를 받아 또 심의를 통해 결정된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뇌전증은 뇌질환 중 3번째로 많은 병이다. 그리고 약물로 조절, 치료 가능성이 높은 병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에도 약을 먹으면서부터는 발작을 일으킨 적이 없어 발작이 일어나기 전과 같이 일상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앞으로 몇 번 이야기하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병을 품고 살아갈 때의 나는 여러 골치 아픈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운전하기에 부적합한 질환을 가진 사람이라면 운전자격을 엄격히 검토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 사건은 뇌전증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닌, 복용하던 약이 있음에도 먹지 않고 운전을 한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발작을 조절할 수 없다고 생각해 약을 처방받았음에도 먹지 않은 것은 개인의 선택이었다.
나는 29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아직 운전면허가 없다. 아직까지 운전면허가 필요한 일을 하지 않았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딸 생각 없냐고? 글쎄,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데 아직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다들 한 번쯤 생각해본 적 있을법한 일인데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보다 내가 사람을 칠까 봐 무섭다. 그러니 진짜 필요로 할 때까지 미룰 수 있으면 미루고 싶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나는 병에 얽매이지 않고 나답게 선택하며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