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할머니에게
새해의 첫날이 밝았다. 내가 일하는 곳은 연말 연초가 대목이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출근 준비를 막 마치고 집을 나서려는 순간 어머니의 핸드폰으로 전화 한 통이 온다. 통화를 마친 어머니가 길을 나서려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말했다.
“외할머니 돌아가셨단다.”
“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믿을 수 없다, 믿기 싫었다. 하루, 단 하루 차이였다. 당장 내일이면 휴일이었고 병문안을 갈 생각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벌게진 눈에 고인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썼지만 나는 그냥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다는 어머니의 말에 더 슬펐던 것 같다.
장례식장을 가는 길, 나는 남동생의 차를 타고 아버지의 차를 뒤쫓아 갔다. 다른 차들 때문에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는 아버지의 차를 보며 우리는 울다가도 웃고 또 울었다. 엉덩이에 뿔이 날게 분명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벌써 북적북적하다. 9남매는 서로를 쓰다듬는다. 1월 1일 새해 첫날부터 온 가족이 모였다.
어르신들이 말하기를 슬프지만 오랜만에 멀리 있어 보기 힘든 조카들까지 모두 모인 것이 보기 좋다고 말한다. 10년 전에 본 사촌이 어엿한 사회인이 다 된 모습에 나도 놀라고 기특한데 어른들은 어떻겠나.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할머니 덕분에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이, 슬픔, 그리움, 후회, 반가움, 감사, 사랑의 감정이 한 공간에 모였다.
둘째 날,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인사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나의 남동생은 며칠 전 병문안을 다녀와 얼굴을 봤으니 괜찮다며 홀로 장례식장을 지켰다.
생전, 본인이 죽으면 삼베 말고 한복을 입혀 달라하신 뜻에 따라 한복을 입은 그 모습이 희고 고와 또다시 눈물이 북받쳤다. 금방이라도 끔뻑끔뻑 습관처럼 눈을 깜빡이실 것만 같다.
외삼촌과 이모들이 돌아가며 할머니와 인사를 나눈다.
“어무이 잘 가이소.”
“우리 엄마 천사같이 누워있네.”
나는 할머니의 왼쪽 팔을 쓰다듬으며 ‘할머니 사랑해요.’를 속으로 되뇌었다.
“보여이”
“착하다”
“왔나”
떨리면서도 강한 그 음성이 아직도 선명히 떠올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때때로 갑자기 내 손을 끌어다 손등에 입 맞춰 주실 때면 넘어갈 듯 웃으며 엄마에게 말했었지.
“엄마, 할머니가 내 손등에 뽀뽀했어!”
그게 간지럽고 좋아서 호들갑을 떨었더랬다. 할머니의 뽀뽀는 모든 가족에게 공평했다. 다 큰 자식들에게도 스스럼이 없다. 주고받는 사랑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스럽기만 하다.
발인하는 셋째 날 아침, 준비하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우리를 무척이나 사랑하시는구나. 그래서 새해 첫날부터 가족들을 한 자리에 모으셨구나. 할머니를 하늘로 떠나보내며 모순적이게도 사랑을 느낀다.
할머니 위로 흙 한 줌 뿌리며 나의 어머니가 말했다.
“엄마 감사해요.”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진심으로 하고자 하던 말이 더 있었노라 뒤늦게 고백한다.
“나의 엄마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을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알기에 별다른 말 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목구멍 밖으로 내뱉는 순간 버티고 있을 자신이 없었을 것임으로.
무사히 장례를 끝낸 9남매와 가족들은 늦은 점심으로 어탕집을 찾았다. 식사를 하며 할머니가 살아계실 적 재밌었던 일화를 이야기하며 함께 웃었다. 죽음으로써 끝나는 게 아니라 여전히 우리 안에 함께였다.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할 뿐이다.
할머니 나의 할머니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