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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 ChoHeun Apr 08. 2023

[10] 불안과 우울은 단숨에 끊어버리자





  “지금 이러는 거 원래 너 아니야. 약 때문에 힘든 거 같아. 그냥 먹지 말까?”     


 결정적 계기는 호르몬제를 복용하게 된 시점으로 돌아간다.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며 양방 한방을 동원하여도 생리불순이 개선되지 않자 산부인과에서는 3개월 치 약을 처방받아 호르몬부터 균형 잡고 체중을 늘릴 것을 권유했다. 자궁과 난소에 특별한 이상은 없는데 몸의 전반적인 기능이 몹시 저하되어 있다는 경고성 소견이었다. 사실상 폐경에 가까운 상태였다. 30대 젊은 나이에 토끼 같은 딸들도 한참 어린데 이대로 두어선 안 될 일이었다. 약을 먹자 임신 중 경험했던 극한의 입덧을 연상케 하듯 속이 메스껍고 싫은 음식이 많아졌다. 치명적인 문제는 한 달 내내 생리전증후군 상태의 감정 널뛰기를 하는 부작용까지 함께 달고 온 것이다. 괜히 우울하고 예민해서 기분대로 구는 정도의 기복이 아니었다. 인과가 뒤섞인 위험이 감지되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강력하게.               




*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죽고 싶었다’. 약 기운이 절정에 달한 밤, 아이들 옆에 누워 마를 새 없는 눈물을 그렇게 쏟았다. 세상에 다녀간들 무수한 지구 역사에 점 하나 찍지 못하였구나. 진심을 담았다고 믿었던 인간관계란 허망한 것이어서, 스스로 방어벽을 쌓아 올린 세월 동안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안부조차 겨우 묻고, 힘들 때 제 일처럼 나서줄 친구 하나 곁에 없구나. 이대로 나의 삶이 사라진들 주위에 충격 그 이상의 그리움과 슬픔이 남긴 할까. 차마 두고 갈 수 없다면 우리 엄마와 금쪽같은 딸들. 한심한 생각이 파도처럼 몰아치며 그렇게도 주륵주륵 눈물이 흘렀다.     


 다음 날 밤 역시 처연한 파도타기 의식을 준비하려다 문득 그 같은 망상 속에 일부러 나 자신을 떠밀고 있음을 발견했다. 오히려 ‘울고 싶어서’였을까. 존재하는 어떤 현실로 인한 슬픔이 아닌, 애써 슬프려고 처량하게 만든 현실 같았다. 배우가 감정 몰입을 위해 슬픈 경험을 떠올리듯 마치 가련한 눈물을 쏟으려 안달 난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우울증에 가깝다는 확신으로 더욱 불안해졌다. 왜 불쌍한 내가 되기를 자처하는가. 너무도 힘든 나머지 ‘이런 마음’까지 먹기 이르렀음을 가족들에게 꼭 좀 알리고 싶었던 걸까.      

 심지어 무의식중에 그 감정선을 깨지 않으려 억지로 밝은 에너지를 거두는 것 같았다. 필요 이상의 고압전선을 두르고 ‘아무도 건들지 마시오’ 하는 살벌한 기운을 마구 뿜었다. 나의 불안을 제발 좀 알아 달라고, 이제껏 잘 살아온(줄로만 알았던) 인생이 심각한 우울 속에 나를 떠밀려 한다고. 진드기처럼 붙어서 매달리고 싶은 걸지도 몰랐다.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부정적인 감정은 전염시키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기분 나쁜 티 정돈 내지만 우울이 들어찬 적나라한 상태까지 보이고 싶진 않았다. 오해가 생겨났다. 서로 도울 일을 찾기 위해라도 부부 사이만큼은 솔직해져야 했다. 동트는 새벽, 가능한 담담하게 남편과 대화를 시도했다. 지금껏 눌러 담은 불안과 고통의 정체성에 대해.

 착하고 자상한 남편은 잠시 약 때문에 힘든 것 같다며 대수롭지 않게 들어주었다. 모로 누워 귓구멍까지 흘러든 눈물이 무색해졌다. 남편은 이 중대한 이야기를 oo 사는 ooo씨의 라디오 사연처럼 틀어두고 잠이 덜 깬 손짓으로 나를 토닥였다. 죽고 사는 마음의 문제는 남편의 졸린 눈꺼풀보다 가벼운 것이었나. 텅 빈 위로만 남았다.     


 실컷 울고 일어나 분주한 현실로 전환했다. 아침을 차려 먹고 아이들을 배웅한 후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본다. 분신 같은 남이다. 내가 아닌 다음에야 ‘타’인은 결국 남이다. 어느 전능한 남도 나를 대신 살아줄 순 없다. (나름대로) 열렬히 사랑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었지만 결국 ‘각자의 삶’부터 지탱할 수 있어야 ‘우리’도 존립할 수 있는 것이다. 지하철역으로 바삐 사라져 들어간 남편의 그림자마저 냉정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부부의 덕목은 곧 일심이고 동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서로를 동일시하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었단 걸. 그렇게 깨달았다. 우리는 앞으로도 가계의 고민을 나누고 아이를 양육하며 가족의 행복, 건강 같은 것을 위해 공동의 영역을 조화롭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배우자 아닌 누구에게도 속을 뒤집어 보이면서까지 문제 해결을 바라고 의지할 수 없는 일. 속을 보이고자 억지로 까뒤집는 것부터가 ‘불통과 표현과 이해’ 같은 새로운 갈등을 몰고 올 것이다.


 그래, ‘내’가 하자. 나는 내가 살린다. 이 순간부터 불안과 우울은 이유도 묻지 말고 단숨에 끊어버리자. 


 자구책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더 이상 구조를 기다리며 울고 있지 말자고. 눈앞에 세상이 바뀐 듯한 결심을 해냈다. 어깨를 펴고 입꼬리를 힘껏 올려 보았다. 웃는 얼굴 어렵지 않구나. 표정을 바꾼 것만으로 해볼 만하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일부터 시작했다. 시간의 쓸모에 대해 평점 매기지 않기. 적당히 가까운 친구와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매몰된 일상을 환기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깊고 힘든 사정을 굳이 털어놓지 않아도 편안한 대화에 집중하는 사이 활력이 생겨났다. 우울감이 스물스물 뻗치려 할 때 재빨리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초기에 실행하는 것이 도움 되었다. 문제의 본질을 깊숙이 파고들며 고뇌하지 말고, 즐겁고 단순하게 기분을 바꿀 수 있는 수단을 곳곳에 배치했다.      


 서둘지 않고 애쓰지 말기로 했다. 문득 멈춰서 들여다본 풀꽃 한 송이, 무심결에 바라본 새파란 하늘 같은 것이, 어느 날의 무너질 듯한 마음을 지탱하고 있음을. 때 되면 몽우리 맺는 계절이 돌아오고 언제든 고개 들어 올려 보면 눈부신 하늘이 받치고 있음을. 그런 평온함과 변함없는 것들을 떠올렸다. 작고 행복한 생각을 자주 할수록 불안은 저만치 달아났다.

 배고프면 먹고, 먹고 싶으면 먹고, 힘들면 그냥 좀 누워도 괜찮은 연습을 했다. 빼곡히 정한 기준에 맞춰 스스로를 압박해 온 완벽주의 역시 삶을 불안으로 이끈 치명적 병인이었다. 망설여지면 일단 해보고 고민되는 것은 바로 실행하며 ‘시작’ 자체를 실패하는 사람으로 살지 말자고. 핵심은 그렇게 나를 구하는 것이었다.


 이유도 모른 채 온몸을 비틀어 짜며 버텨 낸 고난의 밤을 지나 변곡점에 선 것이다. 내가 살아야 아이들이 살고 우리 가족이 산다는 결연함까지 서렸다. 불안의 뿌리를 파고든 시간을 단숨에 끊어내고 우울의 감정을 빠져나왔다. 빠져나오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이미 빠져나왔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좋은 사람과 대화 나누며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새롭고 소소한 것들에 몰입하며 치유를 경험하고 건강한 세계로 나아갔다. 뭉근하게 미소 띄는 일이 많아졌다. 모든 세월에 각각의 의미가 들었음을 깨닫는다. 지나와야 했던 날들. 퍼즐판을 완성해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죽을 만큼 아팠던 조각도 제자리가 있다. 각자 삶이라는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할쯤이면 무엇 하나 버릴 수 없는 조각 중 어느 것이 아팠던 조각인지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찬찬히 열중해서 끝까지 그것을 맞추고 살아가는 것을 지금 한다. 아프고 힘들고 이겨내는 정성을 모두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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