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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 ChoHeun May 03. 2023

책방에서 만난 사이 - 우리들 이해와 공존의 방식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책 모임의 위용을 몸소 느끼는 중이다. 함께 읽은 것을 대화 나누고 각자의 언어로 적어 내려간다. 누군가의 몰랐던 삶을 듣고 말할 수 없었던 내 이야기를 한다. 우리의 만남이 네 번째가 되었을 때, 봄 소풍과도 같은 원정 모임이 인천 장수동의 노란 책방에서 반가움을 ‘건져’ 올렸을 때. 이 계절에 피는 꽃처럼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만개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한 달을 기약하며 각자의 일상에 같은 책 한 권을 슬며시 얹는다.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는지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서로의 삶 속에, 때로 부엌에 식탁에 책상에 사무실에 우리의 생각을 이어주는 책을 두고 그것을 아껴 읽는다.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을 것 같아서 미소를 띄우다 눈물을 참다가 우리는 책방에서 만난다. 아무 사이도 아니면서 이해하고 공존할 수 있게 된 우리.




 이 책을 읽은 여러분이 일상에서 나와 다른 누군가를 만났을 때 또는 내 가치관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기 힘들 때, 그 사람을 판단하기에 앞서 잠시라도 그의 이야기를 궁금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 … 다른 사람의 삶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노력으로 그 간극을 좁힐 수 있음을 알기에.     


 책에서는 정신질환과 함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따뜻한 환자들’을 소개한다. 뉴욕의 유명 로펌에서 일하며 어린 딸을 보살피는 슈퍼 워킹맘으로 승승장구했던 변호사는 중증 조현병을 앓는 노숙자로 전락하고,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지속적 애도 장애의 강렬한 슬픔에 고립된 70대 노인은 마약 중독 치료를 받는다. 어릴 적 삼촌에게 당한 학대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정신병동을 전전하게 된 20대 청년과 심각한 간질 증상 때문에 편도체 절제술을 받고 분노와 공포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 아몬드 할머니도 있다.


 위태로운 자살 충동으로 인해 혹은 자살 시도 후에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을 그렇게 마주한다. ‘나와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사람에게 공감’하고, ‘놀랐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법’을 배우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인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곳의 소수 인종으로 살아가는 저자의 시선으로 목도한다. 차라리 모르고 싶었던 불편함들을 담담하게 읽어 내린다. 책을 통해서나마 누군가의 커다란 아픔과 작고도 소중한 희망 같은 것을 만나고 아주 다른 삶에 공명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좀 더 낫게 되리란 간절함을 담아.

지난해 한국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었다.     




 나는 반 고흐의 작품 <신발>을 좋아한다.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Walk a mile in one’s shoes)’는 격언을 떠올리게 해서다. 물론 누구도 (모든)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볼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구는 나에게 타인의 경험과 관점,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는 자경문과 같다.     



 곧장 찾아본 고흐의 ‘신발’은 첫눈에 그만 슬펐다. 알고 싶지 않은 타인의 슬픔과도 같은 것. 실은 세상을 향해 가로막혀 있는 나의 편견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 모두가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저자는 알려주고 싶었으리라. 그 간극을 좁히는 노력에 대해. 그 쉽지 않은 몫에 대하여.




*

 친구와 가족, 연인 사이 궁극에는 어떠한 관계 맺음 안에서든 모두가 자신만의 책 모임 하나쯤 소유하면 좋겠다. 때가 되면 얼굴 보고 비슷한 대화를 반복하며 일상을 복기하는 사사로운 만남을 넘어, 서로 다른 삶 속에 같은 책을 읽고 마지막 주에 모여 지금껏 한 적 없는 생각을 듣고 나의 이야기를 확장해 가는 일련의 행위를 경험해보길 바란다. 함께가 아니라면 결코 인연 닿지 않았을 책들을 운명처럼 만나며 단지 독서를 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같은 공감과 치유의 시간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고 기품있게 하는지에 대해 느껴보길 바란다. 우리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것을 하기로 꽃피는 봄 책방결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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