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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 ChoHeun Mar 16. 2023

[06] 꼭 예뻐야 했던 이유


 고백건데 20대를 잠식한 나의 목표는 할 수 있는 만큼 예쁘고 날씬하고 잘나서 남들의 인정과 부러움을 사는 일이었다. 화려하지 않되 본디 가진 매력처럼. 아주 특별하진 않되 분명히 우월한 정도까지. 분수를 지키며 자만의 경계를 넘지 않는 기준에서. 다수의 보통으로부터 한 계단 구별되고픈 욕구가 미숙한 내면에 존재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평가에 집착하게 된 것은 당연한 연결고리였다. 깊숙한 관계는 맺지 못해도 타고나기를 사람 사이 모나는 법은 없었다. 남일이라 생각하면 무엇이든 이해되고 웬만한 건 상대에 맞추었다. 대화를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고 밥과 커피를 사는 일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염치없는 행동은 절대적으로 조심했다. 그렇게 대체로 좋은 평판을 유지했지만 밀착감은 늘 조금씩 부족했고 서로 간에 불편한 틈이 존재했다. 진심을 기울인 만남이 외롭고 헐겁게 느껴진 날이면, ‘너는 친구 많지, 나는 왜 진짜 친구가 없어?’ 정반대 성향을 지닌 우리 집 인기인을 붙들고 엉엉 울었다. 맥주 한 잔 생각날 때 아무 때고 부를 수 있는 친구이고 싶었던 속마음은 외적인 완벽함을 부술 용기가 없는 벽 앞에 자꾸 뒷켠으로 밀려났다. 하필이면 꼭 예뻐야 했을까.      


 모임 전날 아이스크림 한 통을 다 먹어버리곤 약속을 취소했다. 대학가를 구경 다니며 아기자기한 음식점, 카페에 앉아 목이 쉬도록 웃고 연애 고민을 나누던 스무 살 시절이었다. 막상 만나면 즐거웠지만 며칠 전부터 신경 쓸 거리도 늘어갔다. 어떤 브랜드의 어떤 스타일로 옷을 입을지, 붓기 관리를 위해 이틀 정도 저녁을 참아야 할지. 그 사이 남들 눈엔 띄지도 않을 뾰루지라도 생길까 걱정을 보탰다. ‘어떠니. 난 이 정도야. 못 본 동안 이렇게 예뻐지고 달라졌어.’ 고작 서너 명의 오랜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 그런 과시를 해야 했을까. 완벽하지 않으면 차라리 내보이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 완벽의 기준이 높고 오점이 용납되지 않아 동굴로 숨어들었다. 때로 폭식이 찾아왔다. 갇힌 채 주머니에 구멍이라도 난 듯 청춘이 새었다. 왜 꼭 예뻐야만 했을까. 스스로 가치 있게 여길만한 다른 무엇은 없었을까. 사람 간에 진실로 다가서는 법을, 온전히 다 보여도 괜찮은 모습을, 고유한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음을. 그런 것의 의미를 모른 채 서툴고 힘들었던 나를. 완벽함만이 세상 속의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라 믿었던 안타까운 그때. 그때의 나를 만나야 했다.     



*

 집착이 정점을 달해가던 어느 순간, 나는 단숨에 그것을 내려놓자고 결심했다. 어렴풋하지만 직감적으로 그래야 했다. 더 중요한 것이 반드시 있기 때문.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진짜 중요한 것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안색이 칙칙하다고 해서 내가 아닌 날은 없다. 당장 환하게 미소 짓는 편이 사람들에게는 훨씬 좋은 이미지로 비칠 것이다. 얼마쯤 불은 체중은 오히려 일상에 힘을 실어 주었다. 감정과 대화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에너지가 담겼다. 편안하고도 멋스러운 나만의 옷차림, 고유한 취향, 생각과 경험의 깊이, 삶에 대한 태도, 그럼에도 겸손함과 같은. 관계 안에서 충분히 나를 빛나게 할 그런 것들을 알아 갔다.


 나는 여전히 예쁘고 싶다. 지금도 건강 관리를 빙자한 체중 유지에 힘쓰며 몸매와 피부 상태를 종종 체크한다. 회사와 육아에 단단히 얽혀있는 처지를 탓하며 잠시도 개인 생활에 쓰지 못했던 날 동안, 중독적으로 쇼핑을 했다. 신상이라서 사고 핫딜이라 샀다. 돈을 쓰고 허영을 샀다. 그렇게 사 모아도 진짜 중요한 것을 담지 못한 마음은 채울 수가 없었다. 어떤 충격 요법으로도 끊지 못한 신들린 손가락질(=인터넷 쇼핑)은 명품 대신 책을 넣을 수 있는 에코백을 더 많이 들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브레이크가 걸렸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을 간다더니 몇 년쯤 꾸밈비를 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멋질 수 있는 아이템이 옷장에 그득하다.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좋은 옷과 신발, 가방 등을 남기고 중고 거래와 기부를 통해 정리를 계속 중이다. 나는 여전히 패션을 사랑한다. 소비를 완전히 멈춘 것도 아니다. 관심과 욕구의 축을 내면의 성장과 안정으로 옮겨가는 유의미한 시간 안에 있다. 따뜻하고 우아한 사람이 되기를 새롭게 열망한다. 미소와 여유로움. 충만함과 너그러움. 품어야 할 가치들에 대해 찬찬히 생각한다. 진짜로 중요한 것. 아무리 완벽하게 세팅된 모습도 머리와 가슴에서 우러난 것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담아내지 못한 얼굴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힘겹게 지키는 아름다움을 비워내고 온전한 나다움을 메워가는 연습. 나는 부단히 그런 노력을 하는 중이다. 열렬함에 빠질 때 상대의 결점이 눈에 보이던가. 사랑하면 된다. 누구보다 나를, 있는 그대로의 나를. 꼭 예쁘지 않아도 꽤 괜찮은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 부터가 변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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