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 전 헤드헌터의 제안이 와서 아주 오랜만? 에 들여다 본 나의 이력을 보아하니 7년의 경력을 쌓는 동안 총 7개의 회사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치로만 보자면 1년에 1번씩 이직을 한 셈인데 사실 제일 오래다녔던 나의 첫 회사의 근속연수는 3년 8개월이고 그 외에는 3개월, 6개월 그리고 두 번째로 오래다닌 1년 8개월이 쌓여 지금의 나의 커리어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액셀러레이터의 매니저로서 어느 한 기업의 담당자로서 어느 한 용역사의 담당자로서 느낀 ’체계‘ 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시스템, 체계,
과연 그 시스템과 체계는 무엇일까?
내 첫 회사는 시스템 자체가 없었다. 물론 그 시스템을 구축할 사람도 없었다. 직원이 온전히 나 혼자였으니 시스템은 나와 팀장님이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 곧 팀장님 혹은 대표님의 말이 시스템이였고 회사의 규율이었다. 사회초년생이라서 좋은 점은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에 ‘그냥’ 생각없이 쭉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에는 ‘그냥’ 이 아니라 조금만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것이 나를 챙기는 방법이었다면 나는 그 방법조차 모른채로 그냥 직장을 다녔다. 그래서 좋은 점은 연차를 쌓았다는 점이고 그래서안 좋은 점은 너무 빨리 좋지 않은 것들을 많이 배웠다는 점이다.
그 다음 옮긴 직장은 꽤 괜찮았다. 사무실 환경도 그리고 처음으로 ‘동료’ 그리고 ‘사수’가 있었다. 그 때 ‘사수’의 든든함과 매서움 그리고 서러움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든든했다. (그 때 나의 사수는 지금의 내 절친한 언니가 되었다) 그 다음의 회사에서는 .. 말도 못하게 힘들었다. 체계도 없었지만 그 체계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회 초년생들이 90% 나 차지하는 회사 구성원과 사회경험이 전혀 없는 대표님 아래에서 결국 갈려지는 건 ‘경력직’ 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주는 회사였다. 그리고 중견기업으로 이직했을 땐 나름 행복했다. ‘드디어 내 경력이 인정을 받는구나’ 싶은 마음과 고액 연봉에 ‘열심히 하자’ 는 사회 초년생 같은 마음을 다잡았지만 결국 ‘신사업’ 이라는 명명하에 나는 또 다시 체계없는 곳에서 체계를 만들어가는 상황에 놓였다.
체계, 즉 시스템. 그 시스템이 있다면 오히려 편할까?
아이러니 한 사실은 내가 공공기관에서 근무를 할 적에도 이 체계에 대한 부조리함을 느꼈는데 오히려 ‘체계가 너무 잘되어 있어서’ 부당함을 느꼈다. 그 체계 안에서 무조건적인 수치와 성과로 인턴도 개인의 ‘업무량’ 을 입증해야 했고, 절차에 따라서 상대 기업 혹은 고객에게 욕먹기가 참 좋은 체계이자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그 체계가 없거나 자유로운 스타트업의 세계로 오니 이마저도 ‘체계가 너무 없어서’ 힘듦과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히려 체계가 없어야 할 곳에 체계가 있고, 체계가 있어야 할 곳에는 체계가 없다.
보통 일을 함에 있어서 체계와 시스템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혼란을 방지’ 하기 위함이고 효율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새로운 신입사원이 올 때마다 매 번 다른 온보딩을 해줘야하고 인수인계 내용이 달라진다면 그마저도 품이 많이 드는 하나의 ‘일’ 이 될 것이다. 그래서 체계를 만들기 위해 OJT 교육 자료를 만들고 온보딩 담당자를 지정하고 온보딩 일정 기간을 정해놓는 것이다. 그것이 체계를 만드는 일이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그래야 정해진 메뉴얼대로 그 일은 일대로 내 일을 내 일대로 처리하기가 한 결 쉬워질테니.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단어가 있다. 바로 ‘주먹구구’ ( 어림잡아 대충 하는 계산을 이르는 말) 이다. 생각보다 기업의 규모를 가릴 것 없이 많은 직장인들은 자신의 회사에 체계가 없음에 불만을 갖고 힘듦을 터놓는다. 생각보다 많은 직장인들이 ‘주먹구구식’ 업무에 대한 고충을 토로한다.
결국, 체계라는 건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 말이 적당할지 모르겠다. ‘이래도 지X, 저래도 지X’
아무리 좋은 학벌을 가진 대표님의 스타트업이라도 체계가 없을 수 있고, 학벌은 낮지만 크리에이티브한 대표님의 스타트업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하지만 효율성이 극대화 된 체계가 마련되어 있을 수 있다. 체계가 있는 곳에서 누군가는 체계가 없다고 하고, 체계가 없는 곳에서 누군가는 체계가 있다고 하니 결국 그 환경에서 체계에 대한 불만과 주먹구구식 업무처리에 고됨을 느끼는 것은 개인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다만, 정말 체계가 1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헤쳐나가는 회사라면 진심으로 추천해본다. 경력직이라면 이직을 신입이라면 1년 정도를 버텨보기를 권유한다. 그런 곳에서 스스로 체계를 만들어가는 고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 이후에 마주하는 다음 스텝의 회사에서는 어떤 업무와 상황이 닥치더라도 초연해짐과 단단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을 위해 1년을 버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아직도 체계가 있는 회사를 내 스스로는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어느 곳에 있어도 내가 내 체계를 만들고,내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 회사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효율성을 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만약 지금의 회사에 애정도 없는데 체계도 없이 고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면 스스로 자신의 업무 바운더리 내에서 자신만의 체계를 잡아보는 게 어떨까 싶다.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의업무 효율성과 칼퇴근을 위해서 말이다. 부정적인 판단을 하기 전에 주어진 상황을 타개하거나 수용하는 것이 때로는 밥벌이 직장인의 제일 중요한 필수 덕목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