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났다’는 말 속 진짜 감정

부서 이동 통보를 받았을 때의 심정과 변화의 첫 충격.

by 소소연

“쫓겨났다.”


내가 스스로에게 붙인 이 단어는 참 묘했다. 회사에서 정식으로 퇴사한 것도 아닌데, 부서 이동을 통보받았을 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표현이었다. 누가 내게 그렇게 말한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스스로를 ‘쫓겨난 사람’으로 느꼈을까.


아마도 25년 동안 쌓아온 자리에서 밀려난다는 사실이 내 자존심을 건드린 것 같다. 미디어전략팀은 나에게 단순한 직장이 아니었다. 내 커리어와 정체성이 모두 그 안에 있었다. ‘홈페이지와 SNS라면 누구보다 잘한다’는 자신감,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책임지고 마무리했던 프로젝트들. 그 모든 것이 내 존재 이유 같았다. 그런데 그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느낌이 들자, 나는 ‘내가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휩싸였다.


부서 이동을 통보받은 날, 집에 돌아와 혁짱에게 “나… 쫓겨난 것 같아”라고 말했다. 혁짱는 피식 웃으며 “당신은 원래 봉사하고,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거 좋아하고, 새로운 걸 배우는 데 능숙하잖아. 이건 기회야”라고 말했지만, 그 말이 오히려 더 서운했다. 나는 기회를 원한 게 아니었다. 내가 그동안 만든 성과와 경력, 노력이 한순간에 무시당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은 자존심과 두려움이 뒤섞여 마음이 어지러웠다.

‘왜 나여야 하지?’ ‘내가 부족해서?’ '팀장에게 의견을 달아서?' ‘아니면 나이가 많아서?’ 스스로를 괴롭히며 의미 없는 질문만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더 오래, 다양히 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보고, 잘 되면 퇴사하고 나서는 관련된 다른 일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그때부터 조금씩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건 새로운 환경에서 내 방식대로 다시 성장하는 것.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새 부서인 ‘글로벌사회혁신단/사회봉사단’에 발을 들였다. 새로 발령받은 부서는, 심지어 2개 부서를 겸직해야 한다. 솔직히 말해 인수인계받은 업무는 자잘하게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멘붕이었다. “학생 사회봉사 교과목 성적 행정처리, 사회봉사 기관 발굴, 교수 지원?”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용어들이 쏟아졌다. 내 머릿속은 ‘404 Not Found’ 오류창이 뜬 듯 새하얗게 비어버렸다.


처음 부셔 워크숍에 참석했을 때, “SDG 목표와 연계된 사회봉사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말로만 듣고, 체험으로만 하던 것들을 내가 직접해야 한다고? 속으로 엄청 당황했다. 30년 동안 미디어와 콘텐츠로 승부해 왔던 내가, 이제는 전혀 다른 언어를 배워야 했다.


그 낯섦이 조금씩 흥미로 변했다. 학생들이 사회봉사 활동을 통해 경험하는 이야기, 지역사회와 협력해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와 닮아 있었다. 미디어전략에서 이야기(콘텐츠)로 사람을 움직였듯, 여기서는 ‘행동’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쫓겨났다”는 말 속엔 억울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쫓겨난 게 아니라, 나를 이세계로 던져진 것뿐이다.”
그 세상은 낯설지만, 그 낯섦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 의외로 이세계 각성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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