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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초 Aug 27. 2024

<슬픔의 방문>

장일호

 - 물을 다 마셨으면 새 물을 냉장고에 넣어놔야 할 거 아냐?  

 톡 쏘아보며 한마디 내뱉었더니, 남편 또한 질세라 한마디 한다.

 - 피곤하면 가서 자던가, 어디서 또 큰소리야?

  

5시에 일어나서 책과 장난감으로 엉망인 거실을 치우고 음식쓰레기와 분리수거를 버린다. 생수를 다 마신 걸 알고 주말에 장 봐온 생수 6묶음을 차에서 꺼내 왔다. 냉장고에 정리하고 된장찌개를 끓인다. 이웃이 주신 호박과 가지, 감자를 넣고 어제 먹다 남은 소고기를 넣고 보글보글 끓인다.

 


3-2학기가 된 둘째가 수학을 버거워했다. 두 자릿수 곱셈을 어려워했다. 내가 집에 있을 땐 첫째는 어려워하지 않았던 수학을 둘째가 어려워하니 나의 부재로 아이들 학습이 뒤쳐지는 건 아닌가 걱정되었다.  


회사에서는 일로 인정도 못 받고 집에서는 아이들 학업이나 집안일이 엉망이고, 남편과도 하숙집 동거인일 뿐이고.

뭐 하려고 아등바등 살고 있나. 회의가 들었다.



장 보는 것도  요리하는 것도 엄마인 내 몫이다. 아이들 학업을 걱정하는 것도 나만의 일이다.

아이 셋 워킹맘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아느냐고 남편에게 한마디 하면, 워킹맘이 벼슬이냐고 비웃는다. 힘들면 언제든 관두라고.  우리 집 경제사정은 생각지도 않고 무조건 아껴살면 된단다. 아이들은 고기 한 팩을 사면 앉은자리에서 다 먹고 콜라 한 박스를 사도 이틀이면 절반을 먹는데, 쥐꼬리만 한 남편 월급으로는 학교만 보내야 하는 형편이다. 그러고서는 힘들면 관두던가, 라니.


수많은 '엄마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박탈당한 기회를 생각한다
                               -슬픔의 방문, 장일호


 아이들을 낳지 않았다면, 아니, 낳았더라도 휴직하지 않고 누군가의 도움을 빌어 꾸역꾸역 회사를 다녔더라면 나도 지금쯤 차장이 되었을까.

 회사에서 보내주는 해외 유학도 갈 수 있었을까.

 

 올해 승진대상이 못되면 내년에도 어려울 게 뻔한데. 승진에 목매다는 후배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저기요 내 자리는?이라고 외칠 뻔뻔함도 없지 않은가.


 나는 '엄마'여서 행복하다.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은 아이들을 낳은 일이다. 아이들을 내 일에 있어 장애물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회사일은 회사일일 뿐이다. 회사일과 가정일이 버거우면 회사일을 관두라는 남편의 말은 무책임하다. 회사일을 하느라 아이 학업이 엉망이 되었다고 나에게 손가락질했던 남편은 그러면 안 되는 거다.


 나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고 회사일에도 열심히 임하고 있다.

 결과는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엄마라는 이유로 나에게 주어진 사회인으로서의 역할과 기회를 박탈당하진 않을 것이다.

 

 괜히 슬픔의 방문을 읽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 또한 예전의 우리 엄마처럼 육아와 회사일 병행의 어려움으로 회사를 관두진 않을 거다. 꿋꿋이 버틸 거다. 승진 따위 못하면 어떠냐라고 되뇌지만 아직 내 마음은 체념이 덜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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